요즘 들어 불교계 최고의 화두는 ‘교육 개혁’이다. 제33대 집행부가 출범한 이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교육개혁이 본격화되면서, 일각에서는 “스님들 세 명만 모이면 교육에 대한 논의로 분분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7월초 교육과정 및 교육기관 조정안이 발표되면서, 조계종 교육개혁의 윤곽이 드러났다. 300년만에 바뀌는 한국불교의 교육 내용은 실로 파격적이라 할 만큼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치문』, 『서장』 등 한문교재 8권이 전부였던 승가대학의 커리큘럼은 불교사, 불교철학과 함께 참선지도법, 종교학, 생태학 등 다양한 사회적 학문들이 채워지게 되었다. 한마디로 300년간 유지돼오던 서당식 교육이 하루아침에 대학 체제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같은 조계종의 변혁 한가운데는 바로 현응 스님이 있다.
교육원장 현응 스님의 이력을 살펴보면 지금의 교육개혁안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현응 스님은 94년 종단개혁 당시 조계종의 틀을 짠 이론가이자 조계종을 대표하는 ‘씽크탱크(Think Tank)’로 알려져 있다. 조계종의 3원 체제 즉 총무원, 교육원, 포교원으로 구성되는 시스템이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고, 현재 조계종 종헌종법의 기본안이 현응 스님을 비롯한 몇몇 스님들에 의해 구축되었다.
1994년까지만 해도 조계종에는 ‘교육원’이라는 별도의 부서가 없었다. 아니, 아예 교육을 관장하는 부서 자체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현응 스님을 비롯한 조계종 개혁회의 주축들은 총무원장 1인 독주를 막기 위해 3원 체제를 고안했고, 그 가운데 하나로 교육원을 만들었다. 그 이전에 교육부가 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교육원이 독립된 기관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상당히 센세이션한 시도였다. 당시 개혁세력들은 ‘역사와 사회에 부응에 새로운 종단’을 구현해내길 갈망했고, 이를 위한 궁극적인 열쇠가 교육의 개혁에 있다고 믿었다.
이후 조계종 교육원은 행자교육원을 통해 조계종 승려가 되기 위한 기본교육제도를 만들어냈고, 통일계단을 통해 승려가 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종단본 교재들을 편찬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시스템의 현대화, 강원체제의 통일화는 이루어낼 수 없었다. 300년간 이어져 내려온 강원교육체제는 너무도 견고한 틀을 갖고 있었고,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기에는 교육원의 힘이 너무 미약했다.
그런데 33대 집행부가 ‘교육을 통한 불교중흥’을 기치로 내걸면서 승가교육의 현대화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33대 총무원장으로 선출된 자승 스님은 이를 성공시키기 위한 최적임자로 현응 스님을 선택했다. 이는 94년 개혁의 핵심에 현응 스님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한편으로는 33대 집행부가 교육을 통해 ‘94년 종단개혁의 완성’을 이루겠다는 천명이기도 했다.
교육원을 별도의 원(院)으로 만들었던 인물이 ‘교육원장’으로 취임한다고 했을 때, 종단 주변의 눈밝은 사람들은 이미 ‘엄청난 변혁’을 예측했다. 아니나 다를까, 현응 스님이 취임한지 5개월만에 조계종 교육체계는 300년전의 껍질을 벗기 시작했고, 1년도 채 안된 시점에서 승가교육의 틀은 완전히 환골탈태를 했다.
요즘 최고의 뉴스메이커이자 교육개혁의 핵심 주자인 현응 스님을 만나 교육개혁의 추진 목표와 향후 계획을 들어보았다.

현응 스님이 밝힌 교육 목표는 매우 간단명료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승가상을 구현해내는 곳, 사찰이 바로 그곳이어야 한다.”
‘이 시대에 필요한 승가상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현응 스님은 “그것을 굳이 몇몇 문장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올바른 역사인식, 시대에 맞는 전법교화, 시대에 맞는 불교교리와 응용 등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것도 제대로 된 설명은 아니다. 나는 그것이 이미 구체화된 것들이 아니라 스님들이 부단히 노력해서 만들어가야 할 것들이라 생각한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 교육이 되어야 하고, ‘강원교육의 현대화’라는 변화를 통해 승가 구성원들이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계기를 주고자 하는 것이다.”
현응 스님은 그동안 2차례의 공청회와 5차례의 세미나를 통해 사부대중과 ‘교육의 틀’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논의해왔다. 첫 번째 공청회 때는 강원 교직자들이 세미나장을 점거하고 단상에서 성명서를 발표할 정도로 반발이 거셌다. 이후 네 번째 세미나가 열릴 무렵에는 강원 교직자 대표가 ‘교육원의 강원체제 변화 구상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합의점이 도출될 때까지 논의를 계속하는 ‘현응식 끝장토론’의 성과였다.
현응 스님의 이같은 파워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 또한 전통적인 서당식 교육을 받아온 세대이다. 책 제목이 곧 교과목이 되는 교육을 받았고, 이후 민족문화추진위원회를 다니면서 한문 공부를 했다. 서양철학이나 심리학, 교육학, 역사학 등 여타 학문은 거의 독학으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조계종 교육 시스템의 문제를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꼈다. 나의 문제의식이 더욱 절실해진 것은 내가 직접 후배들을 가르치면서였다. 79년부터 85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해인사 승가대학에서 강사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후배들에게 한문경전을 가르치면서, 이같은 시스템으로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승가를 배출할 수 없음을 깨달았고, 승가교육의 틀이 완전히 변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왜 지금 시대에 1000년전 혹은 2000년전 수행자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답습해야 하나. 그 시대의 언어로, 그 시대의 문제의식을 다루는 불교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스님의 이야기는 ‘수보살행(修菩薩行) 교육’으로 이어졌다.
“조계종의 교육은 보살행을 닦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보통 승려를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일컫는다. 수행이란 곧 보살행을 닦는 것이다. 대승불교에서의 수행은 수보살행 즉 10바라밀을 닦는 것이고, 선정은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수보살행은 사회적 원을 닦는 수 바라밀로 완성된다. 우리가 추구하는 불도(佛道)는 보디사트바(보살)가 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완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존재가 돼야 한다. 개인적인 영역에서 만족하고 머무는 것은 결코 불교의 본래 목적이 아니다. 현대의 삶과는 단절된 채 수백년전 혹은 2500년전 문제의식을 답습하는 것 또한 불교의 방식이 아니다. 물론 어떤 승려가 되느냐는 개개인에게 달려있다. 하지만 승려에게 요구되는 현대적 가치가 무엇인가, 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불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사회적 의제에 대한 불교적 해답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은 종단의 몫이다. 나는 그것을 교육체제에 담고 싶은 것이다.”
현응 스님은 이미 한 차례 교육개혁을 시도한 바가 있다. 해인사 주지 시절, 해인사 승가대학의 개혁을 통해서다. 2007년 해인사 승가대학은 치문-사집-사교-대교 과정으로 이뤄져있던 기존의 학제를 1년-2년-3년-4년으로 변경하는 한편, 전통적인 교과과목들 일부를 현대식 과목으로 교체한 바 있다.
이때 전국의 강원교직자 대표들은 해인사의 독자적인 강원 학제 개편에 대해 거센 반발의사를 표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응 스님은 해인사 강원의 변혁을 꿋꿋하게 밀어붙였다. 이같은 해인사 강원의 변화가 ‘예고’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현응 스님이 교육원장으로 취임하면서 드러났다.
교육개혁에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이들 중 일부는 “교육원이 원안을 다 만들어놓고 우리에게는 설득만 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위로부터의 개혁이지,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응 스님은 이번에 추진되는 교육개혁이 결코 ‘위로부터의 개혁’이 아님을 강조했다.
“지금 조계종이 추진하고 있는 교육체제 개편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수많은 스님들이 30여년 전부터, 아니 일제 때부터 논의되었던 내용이다. 이미 만해, 용성 등 수많은 선각자들이 현대화된 강원교육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정화운동을 거치고 수차례 분규를 겪으면서 교육개혁을 추진할 만한 여력이 없었다. 종단의 교육개혁은 ‘안정된 합의체제’ 속에서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33대 집행부가 교육개혁을 단행할 수 있는 것은 이전에 없었던 안정된 구도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교육개혁에 대한 대중의 요구는 그동안 넘치고 넘쳤다. 그 요구들이 이번에 한꺼번에 이루어지다 보니까 교육원이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현응 스님은 이같은 노력을 ‘대승불교운동의 연장선상’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대승불교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대승불교운동이란 자신의 깨달음을 사회에 구현하고 역사에 부응하는 불교가 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이는 반드시 사회적 실천을 수반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불교는 어떠한가. 오늘날뿐만 아니라 AD6세기 이후 불교는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그 이후의 불교는 훈고학적 답습에 머물러 있을 뿐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불교의 모습을 구현하지 못했다. 기원전후의 대승불교만 잘 연구해도 된다고, 혹은 부처님 당시의 불교만 잘 고증해도 된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의 온갖 양상들을 불교적으로 설명할 줄 알아야 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불교의 사회적 회향이다. 나는 그 노력들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

스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서양철학자 칸트가 말한 “인간은 교육을 통하지 않고서는 인간이 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인류는 ‘교육’이라는 틀을 통해 문화유산을 전승시켰고, 수많은 교육자들은 ‘생각의 혁신’을 통해 인류 역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이제 조계종의 역사는 ‘교육개혁’이라는 수레바퀴 위에 놓이게 되었다. 그 수레바퀴가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진흙밭에 묻혀 뒤로 되돌아가야 할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또한 생각의 수레바퀴가 앞으로 나아간다 해도 행동의 변화가 따르지 않는다면 수레바퀴 아래에 깔릴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같은 시도가 이루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나머지 절반은 승가 구성원들이 스스로의 가슴에 밝힐 ‘자등명(自燈明)’ 그리고 그들이 구현할 용기있는 실천행(法燈明)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