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출신으로 중국에서 활약했던 밀교(密敎) 승려인 현초(玄超)의 ‘최승태자별단공양의궤(最勝太子別檀共養義軌)’와 통일신라시대 초기 대표적 불교학자인 의적(義寂)의 ‘무량수경술기(無量壽經術記)’가 일본의 고대 불교 사본(寫本) 조사과정에서 발견됐다.

오치아이 도시노리(落合俊典) 일본 국제불교학대학원대학 교수와 이 대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미나미 히로노부(南宏信)는 지난 22~23일 서울 서초구 우면동 천태종 관문사에서 열린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소장 김천학) 주최 학술회의에서 일본의 옛 문헌에서 발굴한 현초와 의적의 저술에 대해 보고했다.

일본은 에도(江戶)시대(1603~1867) 이전 고사경(古寫經)의 총량만 수만 권에 달하는 등 동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고대 불교 사본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조사결과에 따라 더 많은 신라 승려들의 저서가 발굴될 가능성이 크다. 김상현(사학) 동국대 교수는 “우리 고대사에서 불교를 제외하면 새롭게 나올 자료가 없다”며 “없어진 줄로만 알았던 7~8세기 전적(典籍·책)을 찾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신라 출신 밀교승 현초의 ‘최승태자별단공양의궤’= 22일 ‘동아시아에 있어서 불교사본의 연구현황과 연구방법’을 주제로 특강한 오치아이 교수는 발표 말미에 일본 오사카(大阪) 곤고우지(金剛寺) 조사과정에서 발견한 한국불교 관련 사본인 ‘최승태자별단공양의궤’를 소개했다. 1133년 필사된 이 사본의 오서(奧書·사본의 끝 부분에 베낀 사람의 이름, 제작일자 및 경위 등을 적은 글)에 ‘어떤 사람이 보수사(保壽寺)의 현초가 본서를 지었다고 말한다’는 내용이 나온다는 것이다.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 등 각종 기록에 따르면 현초는 중국에서 선무외삼장(善無畏三藏·여기서 삼장은 산스크리트 경전에 정통한 승려를 말함)으로부터 법(法)을 전수받아 혜과(惠果)에게 전했으며 혜과의 제자가 바로 일본 진언종(眞言宗)의 창시자인 구카이(空海·774~835)다.

현초의 저술은 종래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오치아이 교수는 이날 “아직 현초의 저서로 확정할 수는 없지만 이 사본이 구카이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삼십첩책자(三十帖冊子)’에 근원하며 진언밀교 전승의 긴밀성을 생각할 때 현초의 저술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사찰에서 발달한 사천왕(四天王) 신앙도 이 사본을 현초의 저술로 추정해 볼 정황 증거 중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최승태자는 사천왕 중의 하나인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오치아이 교수가 주도하는 학술프론티어 ‘나라(奈良)·헤이안(平安) 고사경연구거점의 형성’프로젝트의 연구원이기도 한 미나미 히로노부는 23일 학술회의에서 지난 2009년 가을 일본 야마나시(山梨)현 미노부산(身延山)대 미노부문고에서 발견한 7세기 신라 승려 의적의 ‘무량수경술기’에 대해 발표했다.

‘무량수경’의 주석서인 ‘무량수경술기’는 그동안 일본의 각종 목록에는 기록돼 있었지만 실물은 지금까지 확인된 바 없었다. 실물은 전하지 않았지만 동아시아 불교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 일본에서는 1940년 ‘무량수경술기’가 인용된 저서들에서 관련 내용을 뽑아내 만든 복원본이 출간됐을 정도다. 이번에 발견된 ‘무량수경술기’는 헤이안 후기의 사본으로 3권 중 권제1이며 앞부분이 결손돼 있다. 의적은 의상(義湘·625~702)의 10대 제자 중의 한명으로 알려져 왔다.

이번 국제학술회의를 기획한 최연식(사학) 목포대 교수에 따르면 의적은 원효·의상 등과 거의 동시기에 활약한 삼국통일기 3대 학승 중 한명이었으나 그동안 저서가 제대로 전하는 게 없었다. 최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무량수경술기’를 통해 원효처럼 화엄·정토·유식론 등의 불교사상을 종합하려 했던 의적의 사상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