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조선시대를 억불숭유의 시대라고 말한다. 실제로 조선왕조는 건국 초기부터 불교의 사회적·경제적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한 여러 정책을 폈고, 조선 사대부들의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불교 자체를 이단시하는 풍토까지 더해졌다. 이에 따라 불교는 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우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제기되는 한 가지 의문은 그토록 불교를 천시하고 승려가 팔천(八賤)에 속했으며 과다한 세금으로 사찰이 텅 빌 정도였다면, 왜 그토록 많은 사찰이 중건되고 많은 불상과 불화가 조성됐으며, 그 많은 전적들이 어떻게 출간됐을까 하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조선시대 이전에도 일반 평민들이 불교를 그토록 폭넓게 신앙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조선시대는 사찰의 규모나 신도의 수, 출간된 서적의 수만 놓고 본다면,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교가 융성했던 시대였다. 다소 모순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조선시대만큼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가깝게, 그리고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시대는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불교는 왕실과 귀족들을 위한 고등 종교였고, 일반인들에게 불교는 항상 멀고 높은 곳에 있는 이상향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조선시대에 대한 연구에서는 이같은 현황이 거의 밝혀지지 않고 있다. 기존의 불교사 연구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집중돼 있고, 조선시대 불교를 본격적으로 다룬 논문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열악한 실정이다. 이는 조선시대가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한 불교의 쇠퇴기라는 선입견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그런데, 최근 조선후기 수행체계를 통해 조선불교의 성격을 규명한 주목할 만한 논문이 발표됐다. 동국대 사학과 이종수 씨의 박사학위논문 「조선후기 불교의 수행체계 연구-삼문수학(三門修學)을 중심으로-」는 조선시대 불교사상사 연구의 새 장을 연 괄목할 만한 논문이라 하기에 충분하다.
이종수 씨의 논문은 조선후기 불교 교육체계를 삼문수학의 전통으로 보고, 이에 대한 역사성과 현황들을 상세하게 탐구하고 있다. 삼문수학은 경절문, 원돈문, 염불문을 함께 공부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조지눌 스님으로부터 비롯되어 조선중기 청허휴정, 편양언기에 의해 새롭게 제기된 수행체계이다. 쉽게 풀이하자면 경절문은 선, 원돈문은 교학, 염불문은 염불을 지칭하는 것으로, 삼문수학은 이 세 가지를 함께 섭수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를 최초로 주창한 이는 보조국사 지눌 스님으로, 지눌이 성적등지문, 원돈신해문, 경절문을 내세운 데 비해 조선후기에는 성적등지문 대신에 염불문이 추가되었고, 원돈신해문은 원돈문으로 바뀌었다.
여기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조선후기가 되어 염불이 하나의 수행체계로 선과 교학과 더불어 당당하게 삼문의 하나로 포함되고 있다는 점이다. 염불이 선과 교와 더불어 수행법의 하나로 지칭된 것은 한국불교사상 이때가 최초이다.
이종수 씨의 문제의식은 조선후기 정토신앙에서 출발한다. 이미 석사논문을 통해 조선후기 사찰의 염불결사에 대해 연구한 바 있는 이 씨는 박사논문을 통해 고려시대부터 이미 교학과 선, 염불을 함께 수행하는 전통이 계승돼오고 있음을 밝히고 있으며, 특히 조선시대에 이르러 염불수행을 통해 불교의 대중화가 이루어졌음에 주목하고 있다.
조선전기 이래 선사들은 염불수행을 강조했고, 염불은 사부대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장 유용한 수행법이었다. 염불 수행이 유행하면서 염불결사가 유행했고, 염불가사 또한 유행했다.
삼문수학은 18세기를 거치면서 조선후기 불교의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고 염불은 선, 교와 동등한 수행문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교와 염불의 위상이 높아진 현상에 불만을 품은 선사들 또한 이 시대에 있었다. 그들은 선의 수승함을 다시 드러내려 하였다. 백파긍선과 초의의순의 그 유명한 선 논쟁은 이같은 배경에서 촉발됐다. 백파는 조사선, 여래선, 의리선을 차례대로 서열화하여 조사선이 가장 수승한 수행법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대해 초의는 법(法)으로는 격외선과 의리선, 인(人)으로는 조사선과 여래선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여 그 우열을 두는 것에 반대했다. 당시 이 논쟁의 배경에는 삼문수학이 있었고, 논쟁의 핵심은 의리선을 어떻게 볼 것인가 즉, 원돈문과 염불문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결국 백파는 선이 가장 수승함을 주장한 반면 초의는 선과 교학, 염불이 모두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불교계에서는 심성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는데, 이같은 현상은 불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조선시대에 원돈문이 강조되는 요인 중의 하나는 유교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바로 불교교학을 담당하는 문으로서의 원돈문이었다. 그리고 그 핵심은 화엄의 이해에 있었다는 것이 이종수 씨의 주장이다. 18세기에 화엄학이 유행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경절문과 원돈문, 염불문은 서로 어떤 관계에 있었던 것일까.
조선전기 이후 각 종파가 선종으로 통합되어 가면서 경절문 수행이 가장 중시되었다. 하지만 경절문 수행자들은 다른 수행을 배척하지 않고 원돈문과 염불문을 중심으로 포용하였다.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염불문과 원돈문은 경절문을 보완하는 수행체계로 인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돈문은 조선의 지식인, 특히 유학자를 위해 제시된 문이었고, 염불문은 민중을 위해 제시된 문이었다.
하지만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원돈문의 위상이 격상되어 원돈문도 경절문처럼 깨달음에 이르는 하나의 수행문으로 인정되었다. 염불 또한 민중교화를 위한 중요한 수행법으로 인정되었고, 염불수행은 백파긍선조차 널리 권장되는 수행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따라 삼문은 서로 배타적이 아니라 상호 보완하는 관계로 자리잡았다. 수행자는 상황에 따라 경절문의 선을 수행하거나 원돈문의 화엄교학을 공부했고, 또 염불을 통해 대중을 교화하거나 자신을 가다듬었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삼문수학은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문으로 보편화되었다는 것이 이 논문의 요지이다.
이종수 씨의 논문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조선후기 수행체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되지만, 무엇보다 현재 불교계가 풀지 못한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논문으로 평가된다.
현재 조계종에서는 선사들의 전유물로 간주돼온 간화선을 대중에게도 보급해야 한다는 주장과 선과 교, 염불을 통섭하는 현대적이고도 대중적인 불교교육 체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종수 씨의 논문은 조계종이 안고 가야 할 한국불교의 역사성, 현대성, 정체성의 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