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해를 맞아 호랑이 그림 전시회가 전국에서 다채롭게 열렸거나 열리는 중이다. 호랑이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과 영욕을 함께 해온 동물로,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를 단순히 동물이 아닌 영물로 보았다. 심지어 호랑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며 애환을 함께 해왔다.

많은 호랑이 전시회 중에 눈에 띠는 전시회가 하나 있다. 종이꽃(紙花) 접기와 민화를 공부해온 이송자 작가가 ‘이송자의 내가 만난 호랑이’라는 제목으로 갖는 전시회가 그것이다.

호랑이가 좋아서, 호랑이 그리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2, 3년 전부터 호랑이를 그려온 아내를 위해 남편 허길량 목조각장이 전시회를 마련해준 것이다. 올해가 마침 결혼 30주년이라, 그것을 기념하는 뜻도 가지고 있으니, 아내 이송자 작가로서는 더 없이 의미 있는 전시회가 될 것이다.

이 전시는 오는 1월 20일부터 26일까지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열린다. (02-733-4448)

정성껏 만든 도록의 제일 앞에 쓴 허길량 목조각장의 ‘아내의 그림’이란 글은 아내를 향한 고마움,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이 깃든 애틋한 내용으로 시선을 붙잡는다.

“아내의 그림엔/ 애틋한 추억과/ 아련한 물안개속의 그리움과/ 우리네 삶속에 가득 담겨져 있는/ 사랑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시 같기도 하고 편지 같기도 한 이 글은 지난 30년 간 부처님 품안에서 남편은 불보살을 조성하는 불모의 길을, 아내는 절집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종이꽃 전승자과 민화 작가의 길을 걸어온 인생역정을 편린처럼 되돌아보게 하는 감동을 주고 있다.

“아내의 그림엔/ 아들 딸 잘 낳아 건강하게 키우고/ 영생불사 백수백복 장수다산 기원하며/ 맺어진 우리 부부/ 삼십년간의 애환과 삶속의 희망이/ 까치처럼 복을 부르며/ 힘없는 주변을 도우며 소리없이 살고 싶은/ 염원이 있습니다.”

늘 수줍은 표정에 부처님 조성하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다며 손사래를 치던 양반이 어찌 이렇게 감상적인 글을 썼을까. 아내가 짐짓 ‘여보, 나 호랑이 전시회 해볼까’라는 말을 건네자, 세상에 목조각장 불모 허길량 이름만 내면 되었지, 당신 이름까지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며 퉁명스럽게 답했던 그가 언제 회심을 했는지, 아내도 모르게 미술관 전시 예약을 하고는 통보하듯 전하더란다. 전시회 열 것이니 준비 잘하라고.

이송자 작가는 부랴부랴 그동안 그려온 그림을 찾아내 정리하고 표구를 맡기고 도록과 초청장을 만드는 등 전시회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래도 그의 표정은 즐겁다. 다른 누구도 아닌 30년 인생의 동반자가 마련해준 전시회니,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으랴. 그 고마움을 아내 이송자 작가는 이렇게 답한다.

“한 마리 호랑이 ‘우리’라는 말뚝치고 살았죠./ 말리고 잡는 이가 없어서였는지/ 30년 세월이 한숨에 수이 지나가 버렸네요./ 세월 잘 보내었다고 호랑이는 제게 상을 줍니다./ 저는 내가 만난 호랑이를 그림으로 옮겨 보이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주선해준 전시회를 호랑이가 준 상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아마도 작가에게 남편은 호랑이 같은 존재였던 모양이다. 호랑이를 그릴 때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던, 시간 가는줄을 몰랐던 연유도 예 있을 것이고.

부처님이 없으면 하루도 못살 불심으로 작품을 해온 이송자 작가의 그림은 보통의 민화풍 호랑이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수행으로 다져진 마음, 그리고 산신각이나 법당에서 늘 보아온 산신의 화현인 호랑이를 보아온 터이기에 그의 호랑이는 요란하지도 그리 익살스럽지도 않다. 선화 같은 느낌, 산신화에서 느낄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엄숙함이 그의 작품에서 묻어나온다.

호랑이 해, 이송자 작가의 불심과 사랑이 빚어낸 호랑이를 감상하며 힘찬 출발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