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들에게 참선, 불교교리와 같은 지적이고 수준 높은 교육을 시켜야 사찰이 성장한다? 이같은 '통설'을 뒤집는 조사 결과가 발표돼 화제다.

최근 조계종 포교연구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불자들의 절반에 가까운 수가 기도와 염불·독경·주력 수행을 주로 하고 있으며, 염불, 독경, 주력 수행집단이 포교에 적극적인데 반해 참선이나 명상을 위주로 하는 그룹일수록 포교에 대해 훨씬 소극적이라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포교연구실이 12월 21일 오후 2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2009년 수도권사찰 포교역량조사’ 세미나에서는 지난 두 달간 수도권 사찰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날 서울, 경기, 인천 지역 사찰에 소속된 19세 이상 남녀 신도 9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불자들의 신행형태를 분석한 박경희 수원과학대학 교수는 ‘사찰신도의 신행 생활과 포교연관성’에서 눈길을 끄는 몇가지 사실을 밝혀냈다.

우선 불자들의 주된 신행활동은 기도(19.6%)와 염불·독경·주력(19.6%)인 것으로 나타났다. 절 수행(14.2%)까지 포함하면 50%가 넘는 불자들이 참선보다는 기도-염불 수행을 선호하고 있다는 결과다. 이에 반해 최근 조계종에서 주력하고 있는 참선 명상은 7.2%에 불과했다.

불교를 신행하는 가장 큰 이유로 ‘마음의 안정’(34.%)을 꼽은 것과 연관해볼 때, 대부분의 불자들이 정신적 위안을 위해 참선과 명상 대신 전통적인 기도수행을 선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그동안 간화선 대중화를 불교중흥의 최상의 과제로 삼아온 조계종의 포교정책 기조를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또한 한국불교에서 간화선보다는 통불교의 전통이 훨씬 불자들에게 강하다 어필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박 교수의 조사내용에 따르면, 절반에 가까운 불자들이 가족이 믿어서(48%) 불교를 신행하게 되었으며, 불교를 신행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사찰에 다니는 불자의 경우에 마음의 안정과 가족의 안녕에 비중을 둔 반면, 사찰에 다니지 않는 일반불자의 경우 깨달음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또한 이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스님의 역할은 자비봉사의 정신을 사회에 구현하고(26%) 계율을 잘 지키면서 청정하게 생활하는(24%) 한편,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에 전념하는 것(21%) 순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의 설문조사 결과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불교를 믿게 된 불자보다는 스스로 불교교리에 관심이 있어 입문하게 된 사람들이 포교활동에 더욱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난 점이다. 또한 신도조직이 활성화되고 신도간 친밀도가 높은 경우, 그리고 사찰의 지역봉사 기여도가 높을수록 포교활동에도 적극적이라는 결과도 눈길을 끈다.

불교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서는 절반 가량의 응답자들이 어머니나 할머니 등 가족의 영향을 꼽았으며, 친구의 권유가 7.8%, 불교교리에 관심이 있어서 입문하게 된 경우는 4.8%에 불과했다. 하지만 불교교리에 관심이 높아서 불교를 신행하게 된 집단은 가족이나 친구의 권유에 의해 믿게 된 집단보다 포교활동에 10% 이상 적극적인 성향을 띄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해서 박 교수의 발표를 기도나 염불을 강조하고, 불교교리와 같은 신도교육을 등한시하자는 주장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오히려 일정 수준의 신도교육은 신도들의 유대를 강화시키고, 포교에 대한 원력도 증장시키며, 신도조직의 활성화도 가져온다는 분석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박경희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불교대학 이수한 사람이 포교에 대한 원력도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경전반, 불교대학원으로 교육이 심화될수록 눈에 띄는 증가는 보이지 않았다. 이는 교육의 심화가 포교에 대한 원력의 강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 단계를 넘어서면 교리적·지적 호기심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날 토론을 맡은 김성철 동국대 교수는 “교학이라는 지도를 들고 참선 수행을 함으로써 번뇌를 제거하는 것이 불교신행의 궁극적 목표이긴 하지만 참선과 교학은 불자들을 흩어지게 한다”며 “사찰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모든 계급장을 떼고 평등하고 고요한 마음을 느끼기 위해 가는 것인데, 사찰에서 많이 알고 적게 아는 차별을 통해 위화감을 느끼게 되면 그 다음부터 절에 안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길상사 시민선방이 큰 기대를 모으며 시작됐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선방에 앉아있는 신도 수는 10명 안팎인 것을 봐도, 참선은 신도를 뭉치게 하는 매개체가 될 수 없다”며 “부처님 전에 올리는 참회와 발원 기도가 불교신행의 중심이 될 때, 불교초심자 역시 ‘수행의 깊이’와 ‘교학의 방대함’에 주눅들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사찰 불자조직에 동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영일 포교차장 또한 “얼마전 서울 근교에서 잘되는 사찰들을 조사해보니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로 불교대학을 운영하거나 특별한 포교전략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기도가 활성화된 경우가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불자들이 절에 가지 않는 이유, 불자들이 스님들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이유도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났다.

불교에 대해 일반인들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경우 가장 큰 이유가 ‘스님이 너무 세속적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불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사찰에 다니지 않는 이유는 ‘꼭 불자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답변이 많았다. 이는 사찰에서 일반인과 스님을 연결하는 특별한 매개체가 그만큼 빈약하며, 스님들에게 느끼는 일반인들의 거리감도 상당히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사찰의 운영이 지극히 주지 스님 위주로 이루어지는 것도 현대 불교가 갖고 있는 문제점의 하나로 드러났다.

서울과 경기 지역의 스님과 종무원 1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내용 토대로 ‘수도권 사찰 포교역량 분석과 종책대안’을 발표한 김응철 교수에 따르면 주지 스님이 일방적으로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33.6%, 몇몇 소임자의 의견수렴 후 주지 스님이 결정하는 경우가 30.3%로 나타나 대부분 사찰에서 주지 스님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김응철 교수는 “많은 사찰들이 가부장적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종무회의의 결정이 주지 스님의 지도력을 제한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주지스님의 일방적인 의사결정 형태를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부분의 스님들이 사찰 신도조직이 포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비구니 스님들 가운데 사찰 신도조직이 포교활동에 긍정적이라는 답변은 14.6%에 불과했다. 신도조직이 있는 경우에도 신도들 자발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주지 스님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높은 점이 특징이었다.

하지만 박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신도회가 활성화된 사찰일수록 신도간 친밀도와 연관성이 높았으며, 지역사회에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사찰보다 신도회가 활성화된 사찰이 친밀도 면에서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내용은 포교 활성화를 위해 신도에 대한 스님들의 인식과 사찰의 의사결정구조가 크게 개선돼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포교원이 실시한 이번 설문조사는 사실상 반쪽짜리 조사라는 것이 이날 토론자들의 공통적인 지적이었다. 890여개 수도권 사찰 가운데 170개 사찰만이 응답했고, 그 가운데 상당수는 수만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불교대학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상위 20%의 평균을 산출한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처음 실시된 스님과 불자들의 포교의식 조사는 조계종의 향후 방향에 커다란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우선 간화선 대중화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거의 80%에 가까운 불자들이 독경, 염불, 절과 같은 전통적인 수행법을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 수행법이 불자들에게 훨씬 쉽고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10인 10색, 100인 100색에 맞는 다양한 수행법을 개발하고, 이를 단위 사찰에서 저극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간화선 시범사찰을 마련했듯이, 염불수행 시범도량, 새벽염불 시범도량, 봉사활동 시범도량과 같은 다양한 제도를 도입해 지방의 여러 사찰들도 벤치마킹 할 수 있는 표준형 프로그램들을 제시하는 것도 앞으로 조계종에 주어진 과제로 보인다.

포교국장 남전 스님의 지적대로 50명 미만의 신도들이 법회에 참석하는 대부분의 사찰들은 불교대학 운영이나 외부 저명 법사의 초청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들 개별 사찰들을 위해 거창한 ‘불교대학 운영 노하우’가 아니라 좀더 단순화되고 신심을 증장시키는 기초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단위 사찰의 기본을 탄탄하게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조계종에 주어진 당면과제로 등장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