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기고자 '들돌'님은 ‘붓다와 떠나는 책 여행’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불자입니다. ‘한국의 대종사들’(조계종출판사 펴냄) 책 소개는 들돌님의 서평으로 대신합니다. 옥고 보내주신 들돌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누구나 더운 날 손에 드는 부채 같은 비결 하나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그것이 힘든 삶을 감내하게 하는 벼리 같은 것이 되어줄 것을 믿는다.
사는 것이 고통이라는 것을 느낄 수만 있어도 다행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든 길을 찾아 나서고 자기 길을 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생각도 못하고 힘든 삶을 타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진창 같고 수렁 같은 세상을 느끼기에도 벅찬 그런 사람들에게 삶이란
단지 몸에 익은 버릇이고 습관 같은 것일 뿐이다.
부처님의 위대함은 누구도 이르지 못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데만 있지 않다.
부처님의 위대함은 당신의 위대한 깨달음을 감춤 없이 세상에 전하신 데 있다.
부처님에게 이른바 ‘스승의 주먹’은 없었다.
있느니 세상을 향한 큰 자비의 마음 한 가지뿐이었고
남긴 것은 지혜로운 말씀과 당신의 몸을 사른 사리무더기뿐이었다.
부처님 가시고 이천오백 년이 넘게 흐르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 뒤를 따라 집을 나섰다.
그들이 꿈꾼 것은 청출어람(靑出於藍),
스승의 가르침을 뛰어넘어 더 높고 깊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솜처럼 가볍고 바위처럼 무거워지기를
바람처럼 자유롭고 물처럼 부드러워지기를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어지기를
불처럼 뜨겁고 얼음처럼 차가워지기를
칼처럼 날카롭고 몽둥이처럼 투박해지기를
꽃처럼 향기롭고 잎처럼 푸르러지기를
그리하여 작은 몸 안에 온 우주를 다 품을 만한 빔(空)이 들어차기를
그들은 일구월심 바라고 꿈꿨다.
그들은 자기의 온 일생을 그것 한 가지를 얻는 것에 걸었다.
“‘나 가고 나면 울지 말아. 나는 내 갈 길 갈 뿐이다. 제사는 안 지내도 좋다’라는 유언 정도는 해야 불자지. 돈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욕망, 자식 공부 못하는 거, 조금 못생긴 얼굴도 병이 되는 사람들이 무슨 불자야? 순간순간 자신이 어떤 마음자리에 서 있는지 봐. 멈추고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해.”
- 「보성 대종사」중에서, 92쪽
스승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눈이 밝지 못해 스승을 보지 못하는 것뿐이다.
깨진 기왓장 하나 구르는 돌멩이 하나도 뜻 없이 그 자리에 있지 않는 것인데
자기의 한 생을 걸어 마침내 깨침에 이른 이 중에 어찌 스승으로 모실 만한 이 없을 것인가.
십 년의 세월로도 한가락 수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공부일 것인데
자그마치 사십 년 넘는 세월로 닦고 이른 수행과 경지라면
가히 부러움을 넘어 존경의 대상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한국불교기자협회가 창립 스무 돌을 기념해서 펴낸 책이라는데
30인의 대종사(비구)와 명사(비구니) 품계를 받은 큰스님의 말씀과
소략하나마 그분들의 수행 내력과 스승 스님들에 대한 일화들을 담았다.
개인적으로는 불교와 사귄 내력이 일천하고 발품에 들인 공력이 부족한 탓에
스님네와 지어둔 인연 없는 것이 두고두고 아쉽더니
여러 큰스님에게 짧은 법문을 듣는 마음으로 흡족하게 읽었다.
굳이 흠을 지적하자면 기자의 손과 발과 머리와 마음을 빌어 읽었다는 것,
그리고 비구와 비구니의 큰스님 명칭을 다르게 부르는 것이 맘에 들지 않더라는 것.
스승은 자기를 뛰어넘는 제자를 키워낼 수 있어야 하고
제자는 스승을 넘어서겠다는 당돌한 포부를 품어야 한다.
호랑이는 호랑이 새끼를 낳고 키울 수 있어야 하고
호랑이 밑에서 배운 자 스라소니나 삵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책 속에 나오는 오래된 사진과 시절을 돌아보는 회상 대목을 읽는 중에
잊혀지고 이제는 그리워지기까지 하는 종교의 참모습을 만나는 것 같아서 반가웠다.
가난과 주림은 깨달음의 스승일 것이요,
풍요와 배부름은 허방으로 이끄는 안내자일 것이다.
부자 되기를 꿈꾸지 않는 불자,
무턱대고 함께 가는 불교도보다 차라리 외로운 불자가 되기를 빌어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