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불자들조차 다음생을 기약(?)하는 간화선을 외국인들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간화선 세계화’는 말은 가끔 요원한 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직접 미국인들에게 간화선을 지도하고 있는 배철러 법사의 이야기는 다르다.

“서양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수행이 가져오는 효과에 관심을 가집니다. 어떤 명상이 효과가 있으면 계속할 것으로, 그렇지 않다면 바로 다른 것을 시도할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한국 선을 좋아하는 사람들, 서양에 많습니다.”

조계종 불학연구소(소장 원철)는 11월 20일 오후 2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간화선 세계화의 전망과 『간화선』영역(英譯)의 의의’를 주제로 제12차 조계종 간화선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영국에서 간화선을 지도하고 있는 명상지도자 마르틴 배철러 법사와 헝가리 원광사 주지 청안 스님, 그리고 『간화선』 영역자 진우기 한국불교영어번역연구원장을 초청해 간화선 세계화의 가능성과 비전을 모색했다.

‘명상과 수행의 세계적 추세와 간화선 영역의 의의’를 발표한 마르틴 배철러 법사의 이야기는 해외포교를 꿈꾸는 한국의 수행자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배철러 법사는 1975년 한국에서 출가하여 송광사 구산 스님의 문하에서 10년간 간화선 수행을 한 명상지도자이다.

배철러 법사는 “간화선이 티벳불교만큼 알려지진 않았을지 몰라도 분명 인지도에 있어 중국불교나 태국불교에는 견줄 수 있다”며 “한국 스님들이 해외에 조금만 더 정성을 쏟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책들을 다수 펴낸다면 간화선은 분명 경쟁력 있는 수행법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배철러 법사는 자신이 영국에서 간화선을 지도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배철러 법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지도하는 가이아하우스에서는 대체로 위빠사나 수행을 하지만 배철러 법사는 매년 1회 7일간 간화선 수련회를 열고 있다.

처음 불교 수행을 배울때는 일반적으로 저녁반에서 배우게 된다. 이후 하루 짬을 내어 1일 명상을 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주말 수행으로, 1주일 안거 수행, 1달 안거수행으로 점점 기간이 늘어나며, 수련장 일부에 마련된 독거 명상장에서는 1년까지 안거하는 경우도 있다.

배철러 법사는 “처음에 한국 선방에서 하는 식대로 하루 종일 참선을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더니 이틀이 지난 후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일화를 전하며 웃기도 했다.

배철러 법사는 “서양 사람들이 수행을 배우러 오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것”이라며 “간화선이 좀 더 알려지려면 몇가지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철러 법사는 “다양한 언어로 출판된 한국불교 관련서적”을 가장 큰 급선무로 꼽았다. 배철러 법사는 “틱낫한이 서양에 도착한 후 그의 최초의 저선인 평화로움이 알려지기까지 무려 20년의 세월이 걸렸다”며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해서는 탁월한 영문 편집자가 필요했고, 또 틱낫한을 따르는 확보된 지지자들이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베스트셀러는 단지 책의 내용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책이 알려지고 진가를 인정받고 그 가르침이 실천되도록 하는 주변조건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역 『간화선』의 감수자이기도 한 배철러 법사는 “이번에 번역된 『간화선』에는 흥미로운 구절이나 인용문이 많은데, 선불교 고승들의 이야기나 화두선에 대한 기초 안내를 담은 작은 책들이 편찬된다면 매우 인기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철러 법사는 이어 “한국불교 수행자들이 ‘선(Se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실제로 서양에서 ‘선’이라는 단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간화선보다는 ‘화두젠(Hwadu Zen)’을 사용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간화선의 수행과 적용’을 발표한 헝가리 원광사 주지 청안 스님은 간화선 수행의 지도법 문제를 주로 지적했다.

청안 스님은 “동양의 선방에서는 처음부터 구체적인 기법을 가르치지 않는 대신 신참이 계속 끈기있게 모든 고난을 이겨내면 그제서야 가르침을 주는데 이런 방법은 대부분의 서양인들에겐 맞지 않는다”며 “그들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기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청안 스님은 “스승이 간화선의 의미와 기능을 설명할 때 간화선이 태어난 문화 및 종교와 구분하여 내용을 추출해내서, 분명하고 현실적으로 설명을 해준다면 법의 본래 빛이 들어날 것”이라며 “일단 문화적 장벽을 극복하고 나서 스승이 진정 학생에게 초점을 맞추면 간화선의 참기능이 발현된다”고 설명했다.

청안 스님은 이어 “간화선을 가르치려면 그 방법은 단순명료하고 점진적이어야 한다”며 “서양에서 숭산 스님의 가르침이 효과를 거둔 것은 다양성과 유머, 그리고 체계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스타일이 매우 우수하고 지속적인 결과를 가져옴을 입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님은 또 “숭산 스님의 가르침의 핵심요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매우 직접적으로 전해주는 것”으로 “이는 서양에서 가르침을 펴고자 하는 도양인 스님들에게 장애요소로 작용하는 유교적 관습이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관한 인도의 불교재가운동가 게르힝거 씨는 “왜 해외포교의 대상을 서양으로만 잡는 것인지 모르겠다.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인도의 불교운동가 암베드까르의 뜻을 이어 불가촉천민개종운동을 벌이고 있는 게리힝거 씨는 “최근 인도에도 불가촉천민들을 중심으로 불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인도는 또한 부처님이 태어나신 나라이기도 하다”며 “보다 많은 인도인들이 불교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도록 한국의 해외포교에 대한 관심이 인도에도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