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법(緣起法)에 대한 잘못된, 또는 한정적 해석이 불교의 종교성을 약화시켰으며 이것이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무디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동안 한국을 포함한 세계 불교계는 부처님이 보리수 하에서 깨달은 불교의 정수 연기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지 못해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9월 25일 열린 <불교평론> ‘열린논단’에서 박경준 교수(동국대 불교학부)는 ‘연기법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주제아래 ‘초기불교의 연기상의설 재검토-불교의 사회화를 위한 한 이론적 정초’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박경준 교수는 연기법에 대한 잘못된 해석, 즉 초기불교 연기법을 공간적 개념의 상의상관의 관계로만 해석해, 연기법에서 더 중요하게 해석돼야할 시간적 개념을 배제하는 오류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부처님의 게송가운데, ‘연기를 깨달아 불사(不死)를 얻었노라’는 내용을 거론하면서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고 난 뒤 선언한 이 게송에는 구원과 구제의 개념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음에도 연기를 공간적 개념으로 해석하면서 종교성이 약화되거나 사실상 상실되는 결과를 초래했고, 심지어 불교학 전공생들조차 불교를 종교가 아닌 철학으로 대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하게 하는 현상을 가져왔다”고 개탄했다.

박 교수는 ‘불교는 개인적 안심입명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지나치게 관념화되어 있지는 않은가?’라는 반문을 오래 전부터 가져왔다며, 불교의 사회화 입장에서 연기론을 살펴본 결과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상의설이 연기론을 관념적으로 해석하는 원인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연기론에 대한 고답적 해석에 치우쳐 있다보니, 초기불교 연기법의 진정한 의미가 외면된 면이 없지 않았다고 거듭 부연한 박 교수는 불교학계가 연기법을 공간적 개념의 상의관계로 해석한 것은 일본의 불교학자 우이하쿠쥬(宇井伯壽)에 영향을 받은 바 크다고 지적하고 “우이하쿠쥬는 12연기설을 결코 ‘우리들 인생생존이 어떻게 발생하여 왔는가’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생생존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설하려고 하는 가르침이란 대전제하에 연기설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해석은 주로 연기의 기본공식이라고 일컬어지는 ‘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다고 설명한 박 교수는 “우이하쿠쥬는 이 문장의 근본취지를 상의상관성으로 파악하고 12연기의 취의도 근본적으로 세계의 상의를 밝히는 데 있기 때문에 12연기설을 상의설, 또는 연기상의설로 지칭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그러나 이런 12연기설에 대한 상의상관적 해석은 공간적 논리와 함께 시간적·생기적(生起的) 관계로도 생각할 수 있으며, 이로써 인간이나 사회의 여러 현상에 대한 인과관계, 자연현상에 대한 인과관계 모두가 포함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차피고피유 차기고피기’에 해당하는 빨리어 원전을 근거로 기존의 도식적 해석인 ‘이것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남으로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게 되고, 이것이 이것이 있지 않을 때, 저것이 있지 않게 되어 있고’의 시간적, 연차적 개념으로 해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난 후, 즉 연기를 깨달은 다음에 읊었던 게송의 내용을 보아도, 구원과 구제의 원리가 들어 있으며, 시간적 차연성이 명백한 만큼 관념적 해석이자 공간적 개념에 치우친 상의상관적 해석은 곤란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 교수는 또 “12연기 중에서 상의상관에 해당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식(識)과 명색(名色)이 유일하다”며 “초기불교 연기법에 분명하게 담겨 있던 불교의 구제·구원론적 의미, 즉 종교적 의미가 상의성이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됐으며, 급기야 불교를 종교가 아닌 철학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연기를 달랑 규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부처님이 12연기를 깨달았다는 것은 인생의 괴로움은 연기한 것이다. 모든 괴로움은 연기된 것이다. 따라서 괴로움은 정해진 것이 아니므로 연멸(극복)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