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에게 귀신은 무엇인가?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종교 현상이기도 한 귀신에 대한 토론이 여러 종교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귀신은 영(靈), 혼(魂), 백(魄), 마(魔) 등에 기반을 둔 넓은 의미의 ‘귀신 신앙’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런 귀신 신앙은 사실상 종교의 영역을 넘나드는 광범위한 것이다. 영생과 윤회, 영원, 구천 등과 같은 종교적인 생명관이나 세계관들도 꼭 일치하지는 않지만, 귀신신앙과 일정부분 맞닿아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오늘 우리에게 귀신은 무엇인가-여러 종교의 귀신론’이라는 주제아래 지난 9월 25일, 서울 장충동 만해NGO교육센터에서는 4시간에 걸쳐 각 종교를 대표하는 성직자나 수행자, 교수 등 학자들이 각각의 관점에서 귀신에 대한 담론을 펼쳤다. 이 토론에는 개신교의 최대광 목사(감신대 강사), 불교의 법현 스님(열린선원 원장), 유교의 김우형 교수(유학, 연세대 연구교수), 무속의 김동규(인류학·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박사과정 수료)씨와 무녀 정순덕씨, 천도교를 대표하여 김춘성 부산예대 교수, 주최측을 대표하여 이찬수 종교문화연구원장이 등이 각각 주제발표와 토론에 나섰다.
먼저 기독교 입장을 최대광 목사(감신대 강사)가 발표했다. 최 목사에 따르면, 기독교는 귀신을 신론(theism) 개념으로 푼다. ‘죽은 자의 혼’이란 뜻의 일반적인 귀신 개념과는 다르다. 신은 곧 하나님이며 악마, 마귀 같은 부류가 성경이 언급하는 귀신과 가까운 존재다.
최대광 목사는 “보이지 않지만 있는 존재인 신은 우주를 창조했고(성부) 실제 인간이 되어 인간의 구원을 인도했다(성자). 이 신은 우리의 내면에 항상 존재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한다(성령)”고 귀신론을 정리했다. 신은 하나지만, “3가지 측면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악(惡)의 문제는 쉽게 정의내리지 못했다. “성서의 욥기와 외경에서는 이에 대한 해결을 위해 갈등했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악의 존재에 관한 명쾌한 답을 줄 수 없다”면서 “악의 문제는 기독교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일 것”이라고 짚었다.
불교에서도 귀신의 존재는 예로부터 논쟁거리였다. ‘지관보행전홍결’ 권2에서는 귀신이 없다고 보는 이를 나무란다. 원효는 ‘대승기신론소기회본’ 권6에서 모든 마구니라고 한 것은 천마(天魔)요, 귀는 퇴척귀(堆惕鬼)요, 신이란 정미신(精媚神)이다. 이런 마구니와 귀신들이 세 가지의 오진을 지어 선한 마음을 깨뜨린다고 했다.
법현 스님은 아귀(餓鬼)의 귀(鬼)와 신(神)의 의미부터 정의 내렸다. “귀가 아귀의 줄임말로 육도중생 중의 하나라면 신은 여러 가지 능력을 지닌 특별한 존재”라는 구분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개념처럼 신이란 존재가 절대적이지는 않으며, 아귀와 마찬가지로 교화의 대상일 뿐이다. 이는 귀신을 대하는 불교적 입장이다.
초기불교 교학으로 보면 아귀가 등장한다. 다음 생으로 태어날 힘을 가지지 못한 존재로, 배고픈 귀신이라는 뜻이다. 입에 먹을 것을 가져가기만 하면 음식이 불로 변해 입과 목구멍 등을 데이고 마는 아귀는 괴로움을 받는 존재로 언급된다. 죽은 뒤 다른 존재로 생유하기 전에 머무는 단계인 중유, 그 귀신을 일컫는 ‘중음신(中陰神)’도 넓은 의미에서의 귀신이다.
무속에서의 귀신론은 이보다 복잡하다. 일반적인 귀신신앙의 대상으로 다뤄질 만큼 그리 간단치 않은 세계다. 대부분의 무당들은 자신들이 모시고 있는 신령들을 귀신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이들은 정신(正神), 조상, 잡귀잡신 등으로 정확하게 신령들을 구분해 부른다.
“무속에서 보통 귀신이라고 할 때 그 성격은 부정적인 것이며 인간에서 분리돼야 할 존재”로 인식된다. 조상숭배의 대상이 되는 혈연적 조상과 정신을 제외하고 온갖 잡귀잡신은 어르거나 달래고 혹은 위협해서 축출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김동규 씨는 “무속에서 이해되는 귀신이란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종교의 의미론적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게하는 무속의 중심상징으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유교의 귀신관-理의 믿음과 관련하여’를 발표한 김우형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자긴의 견해가 유교의 공인된 보편적 학설은 아니라는 전제아래 “유교의 역사에서 가장 비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공자는 귀신을 기본적으로 휴머니즘이라고 부를만한 입장에서 바라보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산 사람도 잘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기겠느냐?’ ‘귀신은 공경하되 멀리해야 한다’는 등 유교가 귀신을 배척한 듯하지만 공자는 ‘제사를 지낼 때는 항상 귀신이 있는 것처럼 지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종교적 의례에 있어 극도로 경건함을 유지하였다고 소개했다. 그는 『예기』의 ‘제의’편에서 공자는 제자 재아의 귀신에 관한 질문에 대해 “기(氣)란 신(神)이 왕성한 것이고, 백(魄)이란 귀(鬼)가 왕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귀와 신을 합하여 말해야만 지극한 가르침이다. 여러 생물은 반드시 죽고, 죽으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니, 이를 일러 귀라고 한다. 뼈와 살은 아래로 스러지고, 음(陰)은 들판의 흙이 된다. 그 기는 위로 발현하여 날아가서, 환히 빛나고 향기가 서려 올라 오싹하게 하니, 이것이 만물의 정(精)이고 신의 드러남이다.”라고 답한다고 소개했다. 김 교수는 “공자와 주장의 귀신관은 휴머니즘을 기초로 하되 신비한 귀신현상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인식론적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찬수 종교문화연구원장은 “귀신이란 일단 몸을 지탱해주는 것이면서도 몸이 사라진 이후에도 지속되는 어떤 실체를 의미한다. 넋, 영, 혼 등 관련 개념과 언어가 뒤섞여 통용되고 있지만, 전 세계 종교들의 원형은 대부분 이런 귀신 현상에서 발견된다”고 정리했다.
‘귀신은 인간의 정신적 능력의 반영’이라고 전제한 이찬수 원장은 “귀신현상은 죽은 이의 몸 너머에 있다고 상상된 어떤 것이 그 죽은 이 내지 그렇게 상상하는 이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믿어지는데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귀신은 없지 않고 있으며, 허상이 아니라 귀신담론의 질서를 따르는 이에게는 ‘실상’이며, 종교적 표현을 쓰자면 믿는 이에게 귀신은 실상”이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따라서 귀신은 극복되어야 할 부정적 대상이기만 하기보다는, 사회적 논의를 통해 유연하게 공존하며 변화되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현직 무녀의 생생한 증언, 천도교 수행의 깊은 단계에 오른 교수의 천도교식 귀신퇴치 사례 발표와 함께 벌어진 토론에서는 ‘귀신의 존재를 믿는가’, ‘하나님의 존재는 믿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서부터 종교학적 깊이에 이르는 내용까지 다양한 토론이 이어졌다.
이날 발표된 발제원고들과 토론 내용 등은 곧 책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다.
이날(9월 25일) 열린 세미나는 모들아카데미, 종교문화연구원, 한신대학교 신학연구소가 공동 주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