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교단 기본정신에 대한 비판적 계승 한국불교 정체성 확립에 필수적

중앙승가대학 개교 30주년 및 승가대신문 창간 20주년을 기념하는 세미나가 ‘한국불교 출가와 재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주제로 지난 9월 18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려, 출재간의 소통 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출가와 재가의 올바른 관계를 위해 마련된 이날 토론회는 승가대신문사 주간 정덕 스님의 글에서 나타난 것처럼 “초기교단의 기본정신에 대한 비판적 계승이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립에 필수적”이라는 인식에서 마련됐다.

이날 세미나에 앞서 승가대신문사 초대 편집장을 역임한 신문사동문회장 초격 스님(종회의원·파주 보광사 주지)은 축하의 글을 통해 “기자로 일하던 시절의 열정과 경험, 추억들이 지금의 수행에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며 “학인 스님들의 눈과 귀를 통한 불교계 유일의 대학신문인 승가대신문이 건전한 학풍 조성과 올바른 대학여론 형성은 물론 때로는 종단을 향한 참신한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편집장 도정 스님은 “한국불교라는 단어가 단순히 종교집단으로서의 의미가 아닌 중생의 아픔을 함께하는 보살들의 전체를 아우르는 뜻이기를 바라며, 오늘의 세미나가 ‘출가’와 ‘재가’는 나와 너를 가르는 이분법적 의미가 아님을 밝혀주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경성스님 출재가는 양쪽이 모두 베풀고 동시에 받기도 하는 이상적 관계

이어 열린 세미나에서 경성 스님(희랑대 주지)은 ‘경전과 율장에 나타난 출가자와 재가자의 관계’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를 통해 “출가와 재가는 어느 한 쪽으로만 설 수 없는 중요한 위상을 가지고 있음을 공인하는 절대적인 관계이며, 보시를 공양받고 법시를 베푸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양쪽이 모두 베푸는 동시에 받기도 하는 시혜와 수혜의 주객을 겸비하는 이상적인 관계”라고 주장했다. 또한 출가와 재가의 관계를 “수행(출가자)와 외호(재가자), 전법(출가자)과 공양(재가자)으로 소통하는 상호복전의 관계”로 파악하고, 이를 입증하는 근거를 초기경전과 율장의 기록을 통해 논증했다. 경성 스님은 그러나 “부처님 재세시에도 수행은 출가자의 전유물이 아니며, 재가자도 수행을 통해 출가자에 못지 않는 성과를 거둬들인 경우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스님은 또 “수행자가 재가자를 향해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복발갈마, 즉 재가자의 공양을 거부하는 것이 있었으며, 동시에 재가자 역시 승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부처님께 이를 시정하도록 요구하거나 공양의 거부 등을 통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고 소개하고, “이는 초기 승가에서 출가와 재가가 상호 의존적인 관계이면서 동시에 상호 견제와 긴장의 관계였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본각스님 현실에서 출재가가 상부상조하는 참다운 역할은 무엇인가

이어 논평에 나선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은 “발표자(경성 스님)은 논문에서 ‘십주비바사론’을 이끌어서 ‘재가의 보살은 마땅히 재시를 행하여야 하고, 출가인은 마땅히 법시를 행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요즈음은 재가자도 법을 설하고 있고, 출가자 역시 경제행위를 하고 있는 현실에서 출가와 재가의 상부상조하는 참다운 역할을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며 “구태의연하게 서로의 입장만을 강조하고 있다면 불교는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게 되며, 서로의 힘이 모자라서 탈진해버리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님은 “부처님께서 출가와 재가가 함께 서로 도우라라고 하신 말씀을 이 시대에 맞게 다시 해석하고 실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학종 대표 재가자의 역할을 단순히 외호 후원자로 파악하면 소통 어려워

이어 이학종 미디어붓다 대표기자도 논평을 통해 “경성 스님의 발제는 출가자는 수행자, 재가자는 외호자라는 도식적 구분에 여전히 얽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물은 후 “재가자의 역할이 단순히 재보시를 하고 법보시를 제공받는 수준에서 정의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기자는 이어 “재가자들도 주체적 수행자의 한 파트로 엄연히 활동했으며, 수행을 통해 일정한 성과를 거둬들였다”며 그 경전적 근거를 사례를 들며 제시했다. 이 대표기자는 또 “재가자들의 역할을 단순한 외호나 후원자가 아니다. 재가자의 역할을 단순히 외호와 후원의 역할이라면 절대적의 상호의존적 관계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며 “부처님의 출가와 재가의 관계를 보다 능동적으로 해석해야 하며 이것이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윤남진 소장 인터넷 매체 통해 소통하고, 소통의 전문가 역할자 양성 필요

두 번째 발제는 윤남진 NGO리서치 소장이 ‘오늘날 출가자와 재가자의 바람직한 소통방안’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윤남진 소장은 주역에 ‘(사물이) 극에 달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말이 있다며 이는 통하는 것의 핵심이 변하는 것에 있다는 말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소통, 특히 의사소통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와 방법, 불교공동체 내의 현실, 그리고 불교적인 전통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것 들을 고찰한 윤 소장은 “사찰 등과 같은 구체적인 단위에서 바람직한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첫째, 구성원들이 다 함께 풀어가야할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적절한 현대적 언어로 정의하고 효율적인 매체를 통해 전파하고 수렴하는 전문적 역할을 담당하는 ‘소통의 코디네이터’가 필요하고, 두 번째로 개별 단위차원이 아니라 불교계 전체적인 관점에서 불교계 내부 그리고 사회적 관계 속의 소통영역을 발전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 인터넷 매체나 팀블로거 같은 것이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그런 장을 통해 지식의 집적이 이뤄져야 하며, 공개된 영역에서 다양하게 제기되는 ‘반증과 반례’에 지성적으로 대응하면서 소통의 질을 높여가고 사회적 보편성을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운택 교수 소통을 특정집단간, 세력간 이해의 조정으로만 보는 것은 한계

윤남진 소장의 발제에 대해 논평에 나선 임운택 계명대 교수(사회학과)는 “전반적으로 윤남진 소장의 발제에 나타난 견해에 동조한다”며 “그러나 소통을 특정 집단간, 세력간 이해의 조정으로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며, 오히려 소통은 공식, 비공식적인 민주적 절차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상이한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는 과정, 즉 철저한 투쟁을 전제로 하는 담론”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출가자와 재가자간의 바람직한 소통이 이 논문의 핵심주제인데도 막상 그에 대한 분석이 미미하고 그 해결 수단의 문제(인터넷, 블로거, 개인의 인격수양)로 환원하고 있어 다소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정상덕 원불교 교무 원불교는 재가와 출가의 아름다운 동행 교헌에 규정

이어 논평에 나선 정상덕 원불교 교무는 “윤 소장의 발제문이 주로 소통을 방법론적으로 접근하는데 치중하였다는 점에서 좀 더 보태지고 이야기될 것이 많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하고 “불교조직체 안에서 무엇 때문에 출가자와 재가자가 소통을 화두로 삼고자 하는지, 왜 소통이 절실한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이나 방안이 다뤄지지 않은 취약점이 눈에 띤다”고 비판했다. 정상덕 교무는 원불교의 경우는 재가와 출가의 아름다운 동행을 위한 근원적 토대로, 교헌 제2장 15조에 재가자와 출가자에 대해 정의하고 그 법과 질서에 대해 살아가도록 정하고 있다며 원불교의 입장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즉 ‘교도는 재가교도와 출가교도로 구분한다’와 ‘재가와 출가는 차별하지 아니하고 공부와 사업의 실적에 따라 자격과 대우를 정한다’는 교헌의 내용을 소개한 정상덕 교무는 “특히 원불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재가를 출가 앞에 내세우는 전통이 있으며, 최고 의결기구인 중앙교우회 의장은 재가가 맡도록 교헌에 규정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재가와 출가자의 차별 문제와 함께 남녀 차별의 정도는 어느 정도인지가 다뤄지지 않는 것은 아쉬움이며,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루지 않고 소통을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형식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민감한 주제로 당초 열띤 토론과 공방이 오갈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날의 토론은 발제자와 논평자가 상대의 주장에 공감하고 보완점을 제시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