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불고필유린’과 ‘하심’을 을 좌우명으로 41년 군인의 길

“41성상을 바쳐온 군인의 길을 마감하고 저는 이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돌이켜보면 아쉽고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최선을 다하자,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던 최고가 되자는 신념으로 살아왔습니다.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 즉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아 이웃이 있다는 <논어>의 가르침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아, 정심(正心)의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저는 이 정심이 불교의 하심(下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2009 자랑스런 불자’ 일향 임충빈 육군참모총장의 전역·환송법회가 9월 20일 육·해·공군 본부 계룡대 호국사에서 여법히 봉행됐다. 답례인사를 하는 임 총장의 목청에서 60만 대군을 호령했던 포효가 아닌 가녀린 울림이 느껴졌다.

“총장이 되어서는 가능한 상대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이 부족한 점을 부처님과, 큰스님들, 그리고 법사님과 주위의 많은 불자님들께서 메워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저를 부처님께서 잘 인도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가장 아쉬운 것은 매일 새벽 부처님에 기도를 드릴 때, 이곳 호국사에서 들려오는 범종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임 총장의 인사가 끝나자 호국사 법당을 가득 메운 사부대중들은 긴 박수로 화답하며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함을 표했다.

여시아문 합창단, ‘섭섭한 마음 감추고 보내드리니 잊지 마소서’

이날 임충빈 대장 환송법회에는 군종교구장 자광 스님을 비롯하여 전 교구장 일면 스님, 이날 법어를 내린 약천사 회주 혜인 스님, 대봉 스님, 김갑영 호국사 주지법사를 비롯한 군법사들, 이봉원 군수사령관, 박래호 장군을 비롯한 수십 명의 불자 장군들과 군장병들, 장군불자들의 부인들로 구성된 성보회 회원들, 호국사의 신도와 군불교후원회 이재성 고문, 김효율 인천대 교수 등 각계에서 5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동참했다.

임충빈 총장과 부인 원등행 최옥례 여사의 헌화와 하유 스님의 법고의식으로 막을 연 이날 법회는 군종병의 청아한 타종소리에 이어 여시아문 합창단의 아름다운 축가로 이어졌다.

“정든 우리 총장님, 멀리 떠나 보내드리오나 마음이야 어찌 보내오리까. 잘 가소서. 부디 떠나 가소서. 보내는 이 자리, 섭섭한 마음 감추고서 웃으며 보내드리오니, 우리 잊지 마소서. 연꽃같이 오소서. 우리 총장님.”

여시아문 합창단의 구성진 노랫소리에 60만 대군을 호령했던 임충빈 참모총장의 눈가에도 물기가 어렸다. 41년의 군생활, 지난 2004년 불문에 귀의한 이후 펼쳐진 새로운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듯 임 총장의 표정에는 만감이 오고갔다.

군종교구장 자광 스님 “임 총장이 있어 행복했고 든든했다”

군종교구장 자광 스님은 환송사를 통해 “가장 귀한 자리에서 가장 우뚝한 모습으로 모든 불자의 자랑이요, 귀감이셨던 임충빈 참모총장이 있어 우리 불자들은 행복했고, 불자 장병과 법사, 장군 장교들은 한 없이 든든했다”며 “이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41년 군인의 길을 회향하는 임충빈 대장님이 앞으로 국가의 부름을 받아 더 큰 일을 하실 수 있도록 150여 전 군법사들과 2000만 불자들은 기원하겠다”고 감사를 표했다.

이어 법어에서 혜인 스님은 “임 총장님으로부터 참모총장 자리에서 물러나 전역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앞으로 더 큰 자리에서 일할 기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격려한 적이 있었다”며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임 총장님께 더 좋은 자리를 바랄 것이 아니라, 자리를 찾기 보다는 60만 대군을 통솔했던 그 역량으로 우리 국민 모두를 위해 더 넓은 세계에서 할 일이 반드시 있을 것이며, 그 일을 하시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자리를 선가에서는 ‘무위진인’의 경계라고 말한다”고 소개한 혜인 스님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늘 성안내는 그 한마디, 미소짓는 그 얼굴로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법회에 참석한 불자들과 일일이 기념촬영을 마친 임 총장 내외는 아쉬움과 섭섭함을 버리지 못한 채 줄지어 환송하는 사부대중에게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며 호국사 경내를 빠져나갔다. 9월 20일 아름다운 회향, 그러나 못내 섭섭한 계룡대 호국사의 하루였다.

60만 육군장병 “임 총장님께 최고의 존경과 찬사를 드립니다”

한편 임충빈 참모총장은 21일 제39대 육군참모총장 이임식 및 전역식을 계룡대 연병장에서 이상희 국방부장관, 김태영 국방부장관 내정자(현 함참의장), 필 주한미군사령관, 심대평 국회국방위원, 수십명의 장성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졌다. 이날 이상희 장관과 후임 한민구 참모총장은 ‘강한 전사 강한 군대’를 주창하며 국방개혁에 혁혁한 공을 세운 임충빈 총장의 업적을 높이 치하하고, 그 정신을 계승할 것을 다짐했다. 또한 후배 장성들은 이임하는 임충빈 참모총장의 약력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임충빈 참모총장님께 60만 전 장병의 이름으로 최고의 존경과 찬사를 드린다”며 석별의 정을 달랬다. 정부는 임충빈 대장에게 군인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인 보국훈장 통일장을 수여했다. 이어 계룡산을 흔드는 19발의 예포소리는 가장 완벽하게 군인 생활을 마감하고 떠나는 군 최고 지휘관에 대한 최고의 예우에 다름 아니었다.

자랑스런 불자 임충빈. 그의 60년 인생에 가장 뜻 깊고 기억에 남을, 그리고 가장 길게 느껴졌을 이틀이 그렇게 지나갔다. 계룡대를 떠나는 그의 발길을 축복하듯, 가을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촉촉이 서울행 길을 적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