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발기인들은 생명을 존중하라는 부처님의 교법을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우리 사회가 정신건강의 총체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불교적 처방전을 논의해 보는 모임을 갖고자 합니다. 번다한 형식을 지양하고, 인연 있는 처소에서 우리 스스로 발제하면서 토론하는 전통 강원방식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하여 불은(佛恩)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조계종의 중진 스님들이 주축이 된 자살 예방을 위한 모임이 결성된다. 모임의 이름은 ‘생명을 사랑하는 모임’. 줄임 이름은 ‘생사모’다.

이 모임은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한 현 시대를 사는 스님들이 ‘살생하지 말라’라는 불교의 제1 계율 정신을 세상에 구현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발기됐다. 살아 있는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불살생의 계율로써 너와 내가 한 몸이라는 동체대비의 정신을 이 세상에 구현하라는 부처님의 교법을 중진급 스님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뜻을 모은 것이다.

생사모의 발기인으로 동참한 스님들은 고불총림 백양사 주지 시몽 스님을 비롯하여, 동국대 정각원장 법타 스님(은해사 회주), 전 조계종총무원장 직무대행 선용 스님(거창 아림사 주지), 주경 스님(강릉 성원사 회주), 보명 스님(서울 미타사 주지), 원각 스님(해인사 원당암 회주), 각현 스님(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 대표이사) 등이며, 김효율 인천대학 교수가 재가자로서 동참했다.

생사모는 지난 9월 6일 오후 대전 유성에서 첫 발기모임을 갖고 모임의 활동방향과 취지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뜻을 모았다. 이날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재산·권세·명예 등 그 어떤 것도 생명 위에 존재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라는 데 뜻을 모으고 “삶과 죽음 같은 근본적 고뇌와 그리고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일체유심조의 교버을 바탕으로 생명사랑 운동을 펼쳐나가겠다”고 결의했다.

이들은 발기문에서 “우리나라는 지난 40여년 간 근대화, 산업화를 이룩하면서 기적적인 경제 및 사회발전을 이루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현실은 GNP숫자는 행복과 무관함을 보여주고 있다”며 “현재 우리나라는 15분마다 1명꼴로 자살이 시도되고 있으며, 1년에 1만2천여 명이 자살함으로써 자살 사망률이 OECD국가 중 최고라는 부끄러운 나라가 됐다”고 지적했다. 외형적으로는 세계 유례가 없는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내면적으로는 황금만능, 향락 지상주의 등 외형적 가치 추구로 삶의 황폐화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발기인들은 “이는 주체적이고 근원적인 본래 마음을 상실한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라고 덧붙였다.

생사모의 발기를 주도한 강릉 성원사 회주 주경 스님은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다시 만나기 어렵다고 말씀하신 옛 선사 스님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진실로 존귀한 것은 자신의 생명임을 깨닫게 하는 활동을 펼쳐나가겠다”며 “인내심과 의지력이 나약한데다가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까지 경시하는 현대인들에게 생명의 소중함과 생명사랑을 제사하는 처방전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가 왔으며, 생사모의 결성은 이런 시절인연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생사모는 앞으로 출가 20년 이상의 조계종 비구·비구니 스님과 50세 전후의 재가불자를 회원자격 요건으로 정하고, 뜻을 함께하는 도반들을 확보해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