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호국불교의 전통이 살아숨쉬는 도량입니다.”

사찰 안내문이나, 스님들의 법문에서 자주 등장하는 ‘호국불교’는 한국불교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이다.

원광법사의 세속오계, 고려대장경 조판, 고려의 항마군, 임진왜란 당시 승군의 활약, 일제강점기 승려들의 독립운동 등을 호국불교의 빛나는 전통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호국불교는 국가의 안녕과 국권수호를 위해 봉사해온 불교라는 의미와 함께 왕권을 비호하고 국가권력에 철저히 예속된 불교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 그래서 호국불교는 불교의 사회적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쓰이는 말이기도 하지만, 또한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 들어서는 계율적인 차원에서도 호국불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불살생계를 지키는 불교도로서, 방편으로서의 살생이 가능한 것인가, 권력과 결탁한 종교적 타락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호국불교 비판론자들은 원광법사의 세속오계를 불교를 망친 대표적인 사례로 꼽으며,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승군활동을 불살생계를 범한 비불교적인 행위라고 주장한다.

호국불교에 대한 회의론이 높아져가고 있는 이때, 진정한 호국의 개념을 진단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대한불교진흥원은 9월 10일 다보빌딩 3층 법당에서 ‘오늘의 호국-세상을 위한 불교’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김규칠 대한불교진흥원 상임이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에는 이한구 성균관대 교수, 이남곡 ‘좋은마을’ 운동 대표, 김재원 변호사, 우희종 서울대 교수, 정천구 영산대 석좌교수, 윤세원 인천전문대 교수, 신대현 사찰문화연구원 대표 등이 참가했다. 진정한 호국의 개념, 호국의 현대적 가치, 오늘의 호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한 이날의 토론 내용을 정리·소개한다.

김규칠 상임이사: 오늘의 세계는 시장을 어떻게 선점할 것인가, 상대후보의 표를 어떻게 분산시켜 권력을 잡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 블럭을 강화하고 다른 블록 약화시킬까 하는 전략적·전술적 관점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 세상의 다수를 지배하고 중심세력이 되고자하는 이들의 경쟁이 치열한 세상이다. 이러한 현실은 불교가 추구하는 가치와는 동떨어진 이념이다. 대한불교진흥원이 ‘오늘의 호국-세상을 위한 불교’ 토론회를 기획한 것은 고상하고 숭고한 가치를 지향하는 불교도의 입장에서 볼 때 호국이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떤 가치를 제시할 수 있느냐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만약 외로운 길을 가야 한다면 어떻게 가야할 것인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 불교가 어떻게 가야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여러 토론자들의 고견을 부탁한다.

이한구 교수: 호국불교를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은 호국이 불교의 목적이 될 수 없고, 호국을 하자면 불살생계의 계율을 어기므로 교리상 성립될 수도 없으며, 호국은 정교유착이 되어 종교의 권력화를 초래해 종교를 타락시킨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호국안민의 이념에서 ‘국’을 특수한 하나의 국가에 국한하거나 ‘민’을 하나의 특정한 국민으로 한계 지을 필요가 없다.

불자라면 누구나 불살생의 계율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이 계율을 지킬 수 없는 특수한 상황들이 존재한다. 전쟁이 일어나 외적이 침략해 들어와서 죄 없는 백성들을 무참히 도륙한다면, 불자나 승려라고 해서 이들에 대해서 비폭력으로 대해야 할까. 원효 스님은 범망경 보살계본사기를 통해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남겼다.

“만일 사람이라 해도 삿된 사상을 가진 자를 죽이는 경우, 지상의 큰 보살이라면 죄가 없고 도리어 복이 될 뿐이지만, 새로 배우는 보살이라면 가벼운 죄를 범한 것이다.”

원효 스님의 해석은 계율에 대한 대승적 해석이다. 이것은 계율에 대한 공리주의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사악한 자로 하여금 더 큰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를 죽이는 것은 오히려 자비를 베푸는 행위라고 할 수도 있다.

또한 호국이 종교의 권력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은 귀담아야 할 주장이다. 호국을 명분으로 어떤 정권과 밀착하여 권력을 탐하거나 반대로 반체제 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모두 신중해야 할 일이다. 호국은 국가의 보호이지 정권의 보호가 아니다.

세계화시대가 되면 될수록 불교는 인류의 성불과 전세계의 불국정토화라는 보편적 이념을 더욱더 지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호국안민의 이념에서 ‘국’을 특수한 하나의 국가에 국한하거나 ‘민’을 하나의 특정한 국민으로 한계 지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여전히 국민국가의 틀 속에서 살고 있는 한 이런 이념들의 출발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여기, 즉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러한 호국을 ‘열린 호국’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우리가 열린 호국으로 나가야 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민족의 번영만을 추구하는 닫힌 민족주의에서 우리 민족의 번영을 추구하면서도 세계 모든 민족의 번영을 함께 배려하는 열린 민족주의로 나아가야 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그런 의미에서 호국불교는 여전히 타당하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김재훈 변호사: 이한구 교수의 ‘열린 호국’ 개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호국에 대해 우리는 피상적인 생각을 하는 측면이 있다. 승병들이 왜적을 물리쳤다는 개념에 매몰되다보니 또다른 논란이 발생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들어 세계 각국에서는 자국민뿐 아니라 세계 시민의 인권을 강조하는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호국이라는 말은 맹목적 애국주의와는 구분되는 개념이다. 이 땅에 불국정토를 이루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서 다른 외적이 우리 민족, 우리불자들 해치지 않도록 한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호국은 맹목적 애국주의와는 달리 부처님의 뜻 구현하는 애국주의를 의미를 담고 있다.

맹목적 애국주의 국가에 손해를 끼치고, 궁극적으로는 나라에도 좋은 영향 못미치는 경우를 허다하게 봐왔다. 한 예로 최근 간도회복운동 벌이는 일은 내가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중국은 우리에게 엄청난 항의를 제기했고 우리가 중국에 얻어야할 다른 거래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으로 불자들이 외국에 보시의 개념으로 의약품을 전달하고 물이 나오지 않는 곳에 우물을 만들어주는 경우도 있다. 기독교인들은 똑같은 봉사활동 하면서 공격적 선교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한국 이미지에 아주 좋지 않은 인상 남긴다. 오히려 침략자의 느낌 주는 경우도 있다. 그에 비해 불교계의 대가 없는 보시 활동은 다른 나라에도 이익이 되고 한국의 브랜드 가치도 높이는 차원의 호국이라고 볼 수 있다.

불국정토를 구현하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을 우리사회, 나아가 다른 나라에까지 구현한다는 큰 의미로 간다면 나라에도 이익이 되고 국가 이미지, 브랜드가치 높이는 일이 된다.

정천구 교수: 불살생계를 지키는 수행자이므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은 소승적 계율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살생 막기 위한 방어적 전쟁은 현재 유엔에서도 인정하는 것이다. 개인과 계율의 충돌은 소승적 계율이라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대승적 차원에서의 방어적 전쟁은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고 본다.

이남곡 대표: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단위는 국가임에 틀림없지만, 그 기능과 역할은 질적인 변화와 양적인 축소의 길을 걷고 있다. 이제 대내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침략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자국민의 자유와 평등, 권리 제한, 유보는 더 이상 진화된 국가에서 통하지 않는다.

한국불교가 만일 이 땅에 미래사회, 21세기 모델국가 만드는데 종교로서 기여하는 바가 있다고 한다면 현대사회에서 호국불교의 전통 잘 살리는 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유와 평등 잘 실현되는 아름다운 국가는 우리가 그리는 나라이다. 이같은 21세기 모델국가 만들어가는데 불교가 기여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여건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와 개인중심의 민주주의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나는 자본주의와 개인 중심의 민주주의는 결코 궁극적인 자유와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보편적 인류의식을 생각할 때 무리하게 시스템을 변혁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후퇴를 초래한다.

오히려 개인 중심의 이기주의가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보편화될 때 비로소 무리 없이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시장이나 민주주의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업그레이드 하는 것으로 될 것이다.

이기주의와 생태환경 파괴, 양극화현상이 극도로 커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시장 그 자체를 인간화하는 쪽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시장 그 자체의 인간화’야말로 점점 넓힐 수 있는 주객관적 요소가 성장하는 진정한 진보라고 생각하며, 이것은 국가의 기능을 더욱 변화시킬 것이다. 예컨대 협동조합, 협력적 노사관계, 자주관리제도, 지역화폐, 자원봉사, 기부를 통한 사회적 환원, 도농간 직거래, 공정무역, 일자리 나누기 등과 같은 것이다.

현대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정부의 노력이나 기업 노력만으로는 풀릴 수가 없다. 사실 이 문제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양보를 해야 풀릴 수 있는 문제다. 노동자 스스로 양보하는 의식의 전환 없이는 제도적으로 시행이 불가능하다. 나는 이 또한 시장의 인간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이기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원리를 갖고 있다. 이것이 탐욕이나 이기주의로 흘러가면 재앙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이기적 동기를 어서는 새로운 가치체계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자기중심주의로부터 넘어서는 것, 아집으로부터 넘어서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우리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엄청난 위기와 재앙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제 가장 진보적인 사람은 ‘양보’와 ‘풀어놓음’을 생활의 원리, 사회운영의 원리로 체화하려는 사람이다. 나는 이러한 새로운 시대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인생관과 세계관을 갖춘 것이 불교라고 생각한다. 불교가 그 이념을 관념의 세계나 세속적인 기복에 가두지 않고, 구체적인 일상과 삶과 사회운영원리로 구현한다면 오랫동안 간직한 보화가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불국정토를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은 현대의 모델 국가를 이 땅에 실현하고 싶어하는 우리 시대의 가장 진취적인 꿈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우희종 교수: 이남곡 교수의 의견에 100% 공감한다. 나 또한 평소에 그런 생각들을 품어왔다. 21세기에 모델이 되는 불국토를 건설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자 임무일 수도 있다.

이한구 교수와는 조금 다른 뜻이 있다. 이 교수의 ‘열린 호국’의 개념에 대해서는 전혀 이견 없다. 다만 21세기 호국 이야기하기 위해 과거의 호국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불살생의 의미를 대승적으로 적극 해석하자는데, 원효 스님이 말한 계율의 개념을 호국불교 이야기 근거로 삼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저항감을 느낀다. 원효대사 말씀이 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삿된 사상에 대한 판단의 범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

최근 광우병과 관련해 국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하면서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많은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내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부정하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원효의 대승적 불살생계 의미를 호국의 논거로 삼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지 않은가 싶다.

정천구 교수의 말씀대로 상대방의 살생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불필요한 전쟁 속에서 그들이 행하는 악업 막기 위한 행위일수도 있겠지만, 방식과 과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비폭력운동을 전개한 간디와 달라이라마나 틱낫한 스님의 행보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달라이라마는 무력충돌 대신 비폭력노선을 선택했다. 틱낫한 스님 등이 망명할 당시 베트남의 틱광둑 스님은 무력으로 싸우는 대신 스스로의 몸을 불태움으로써 평화의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했다. 호국이 반드시 전쟁의 참여, 적에 대한 살생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부상자 치료나 식량 운송 등 다른 방식들이 충분히 있지 않은가.

그런 맥락에서 열린 호국이라는 개념에서 ‘국’자를 국가나 국민으로 한정시킬 수 없다고 본다. 보다 중생을 위한 느슨한 불교의 탈권력화가 이루어져야 ‘열린 호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호국보다는 ‘호민(護民)’불교로 이끌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한구 교수: 우희종 교수의 지적에 감사하다. 나는 전쟁 중에도 침략과 방어전은 다르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호국의 사례들은 거의 방어전이었다. 정당방위를 인정하듯이 살생에 대한 계율 또한 융통성있게 해석돼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원효대사의 글을 인용한 것이다. 간디, 틱낫한, 달라이라마에 관한 말씀하셨지만, 그분들도 자국의 독립운동에 심혈을 기울인 분들이다.

우리가 국민국가 테두리 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국(國)이라는 개념 버리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가의 개념 버리는 것은 너무 앞서간 것이 아닐까. 일상에서도 호국의 의미 찾아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국의 의미 버릴 필요는 없다. 지금도 국 차원의 문제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신대현 대표: 역사적 사안들이 오히려 현재에 와서 국의 개념에 매몰된 경향이 없지 않다. 호국이라는 말에 지나치게 의미를 두다보니까, 호국불교의 개념이 상당히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나는 평소 ‘위국(爲國)’가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나라를 지키자(護國)는 것은 국방적·군사적 개념이고, 우희종 교수가 제안한 호민(護民)은 약자를 보호하는 개념에 가깝다. 21세기에는 위한다는 의미의 ‘위국’이 좋지 않을까.

정주원 전 슬로바키아 대사: 내가 볼 때는 ‘호국’에 관한 명칭의 문제시 되는 것 같다. 제도냐 체제냐 이념이냐 가치냐 국민이냐, 아니면 지도자, 왕을 지칭하는 것인가. 이런 문제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역사적으로 볼 때 물론 왕실의 안녕을 빌었던 고승도 있었지만, 사명대사가 전쟁에 나올 때 임금을 위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호국의 전통을 유지할 수 있으면서, 세상을 향한 불교로 나아갈 수 있다. 현대사회에 들어 국가의 기능은 분명 약화되고 있고 엔지오의 활동이 강화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국가는 주권국가로서 중요한 의미 갖고 있다. 국가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지만 무시할 수는 없다.

이용부 진흥원 이사: 지금까지 불교라는 이름으로 해왔던 행위들을 재검토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들어 대승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는데, 실제로는 잘못해놓고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할 때 대승이라는 이름으로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다. 대승이라는 개념도 부처님 입장에서 다시 정리하고, 대차법도 다시 정리하고, 호국이라는 명분으로 했던 항마군, 승군의 행위도 다시 평가해야 한다.

신라는 삼국통일이라는 명분 하에, 백제와 고구려의 민족들을 죽이는 동족상잔을 정당화했다. 그럼 이 시대에 있어서 다시 통일할 때 호국이라는 명분으로 동족상잔 또 정당화할 것인가. 이 문제는 여전히 살아있는 문제이다.

윤세원 교수: 불교의 교리체계는 공화제를 지지하고 있다. 불교적 공화주의는 분명히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우리는 중국을 약대국(弱大國)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30년 지난 지금 초강대국이 되어 있다. 나는 현재 한국불교가 30년전 중국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영향력은 소수임에 분명하지만 무력한 다수, 침묵하는 다수이다. 이남곡 교수의 제안, 고상한 사람들의 연대라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인 제안이다. 지금 침묵하는 다수의 불교도가 하나의 이상과 방향성을 가질 때 커다란 힘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호국 문제는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원광의 세속오계라는 것이 참으로 묘하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아쇼카왕을 흉내냈다. 하지만 연개소문이 도교 쪽으로 돌아서자, 보덕이 신라로 정치적 망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백제는 원칙을 아주 강조했다. 삼국유사 법왕조를 보면 미륵하생신앙을 펼치기 위해 미륵사 짓는데 국고를 탕진했음을 볼 수 있다. 원칙과 폐불 사이에서 나라를 멸망시킨 고구려와 백제의 불교역사는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시사점 제기한다.

신라 원광법사가 한국불교를 망친 사람이라고들 이야기 하는데, 그 신라의 불교가 1000년 세월 넘어 전해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난파를 각오하면서도 공(空)을 실현하는 능력은 바로 신라 승려들에게 있었다.

김규칠: 어떤 집단이 사회를 이끌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에게 도덕적 가치를 제시하고, 시대적 아젠다를 먼저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회의를 소집하고 그것을 이끌어가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남곡 대표가 하는 일련의 작업들에 대해 말해 달라.

이남곡 대표: 나는 지금 시골에서 작은 마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익산에서는 희망연대를 5년 같이 하고 있다. 나는 이같은 활동을 하는데 ‘불교’라는 타이틀을 걸고 하진 않지만 항상 불교적 세계관 바탕을 두고 일하고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소수자이지만, 점점 사람들 속에서 그런 공감대들이 커가고 있음을 아주 많이 느끼고 있다.

진리에 바탕을 두고 로망을 갖는 사람들이 연대하는 방식이 있을 것 같다. 숭고한 사람들이 서로 일깨워주는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 말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밝은 기운들을 주목하고, 그걸 키워가는 방식으로 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기제들을 발견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좁은 범위에서 작은 마을 만들어가는 운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도시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이 전개돼가고 있다. 정치운동 대신하는 차원의 시민운동이 아니라, 의식이 생활에서 변화해나가는 운동이다. 현대사회의 모델 꿈꾸는 사람들 연대하는 방식으로 의기투합하는 사람들 만나면 큰 힘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