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판넬로 꾸며진 평면의 무대 위에 당나귀가 한 마리 나타났다. 진짜 당나귀는 아니고 종이로 만든 당나귀 인형이다. 뒤따라 당나귀 주위에 아버지와 아들이 등장했다. 순간 이솝우화 당나귀를 팔러가는 부자(父子)이야기가 떠오른다.

일본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판넬씨어터’ 공연이 9월 2일 중앙승가대 부설 보육교사교육원에서 펼쳐졌다. 판넬시어터는 판넬 위에 인형을 붙여가며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인형극의 일종이다.

이날 판넬씨어터를 공연한 주인공은 일본인 고우다 료준 스님이다. 고우다 스님은 중앙승가대 부설 보육교사교육원(원장 자용)의 초청으로 특강을 위해 방한했다. 고우다 스님은 1973년 최초로 판넬씨어터를 창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판넬씨어터는 공연자와 인형이 함께 무대 앞에 등장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인형은 종이로 만들어졌지만, 부분부분 나뉘어 실로 엮어진 터라 공연자의 손놀림에 따라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손을 들어 보이기도 한다. 공연을 보는 40여 명의 보육교사교육원생들은 처음 접한 공연인지라 마냥 신기하다는 표정들이다.

통역이 있지만, 굳이 통역을 하지 않더라도 학생들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인형들의 움직임과 스님의 동작만으로도 이해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판넬씨어터라는 말 그대로 보더라도 판넬이 극장이 돼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지만 공연자와 관객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은 일반 극장과 차이가 있다.

고우다 스님이 이날 중앙승가대 보육교사교육원 학생들에게 공연을 보여준 이유는 단지 보여주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판넬씨어터를 소개함과 동시에 교육과 어린이 포교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불자 보육교사를 양성하는 중앙승가대 부설 보육교사보육원의 초청 강의를 흔쾌히 수락한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어떻게 쉽게 전할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부처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말로만 하다 보니 곧 지루함을 느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을 이용해보자는 것이었지요. 1973년에 처음 판넬씨어터를 고안했으니 벌써 35년이 넘었네요.”

불법(佛法)을 펼치기 위해 고안했던 판넬씨어터지만 오늘 강의에는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가 없다. 우선 간단한 내용으로 판넬씨어터를 알리는 것이 강의 목적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우다 료준 스님은 “판넬씨어터를 배우게 되면 불교의 다양한 내용을 극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판넬씨어터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일방적으로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교감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지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부처님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굳이 포교를 따로 한다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즐거움을 주는 곳이 사찰이고,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스님이라면 불교가 전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절이 즐거우면 절을 자주 찾게 되고 그러다보면 자신이 찾는 절에 대해 알고 싶어지고 더 나아가면 불교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통역을 담당한 동남보건대 보육과 김영희 교수는 “소파 방정환 선생께서도 아이들을 위해서는 이야기, 그림, 노래 3가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며 “고우다 료준 스님의 판넬씨어터에는 이 모든 것이 담겨 있어 아이들에게는 최상의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승가대 보육교사교육원 원장 자용 스님이 고우다 료준 스님을 초청해 특강을 마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 어린이 포교에 활용하고 조금이라도 더 즐거운 불교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특강을 들은 보육교사교육원생 박지현(46세, 진각행) 씨는 “판넬씨어터를 통해 어린이 포교를 위한 새로운 활용방안을 찾게 됐다”며 “타 교육원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교육시스템을 계속 발굴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 교육원에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