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에서 재가자들은 참 천덕꾸러기 신세다. 불교 밖에서 활동할 때 잘 나가던 사람도 일단 절집으로 들어오면 몸값이 맥없이 추락하고 만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이상한 풍토에 머리를 기른 재가자들이 함께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살아남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이야 그런대로 이해한다고 치더라도, 이상스럽게도 훌륭한 족적을 남긴 재가 선지식들에 대해 재가자들이 더 냉담한 것이다.

머리 기른 “재가법사가 포교에 성공하기란 나막신 신고 기름칠 한 대추나무 오르기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나 “불교계에 안에서 재가자로 사는 것은 비단옷 입고 밤길 걷기”라는 말을 하면서도, 정작 재가자가 재가자를 더 헐뜯고 평가절하하고 있는 풍토, 이것이야말로 불교계 재가자들이 갖고 있는 고약한 고질병 중의 하나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랴. 재가자들끼리도 알아주지 않는데, 스님들 탓할 일이 아닌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다 재가자 탓이다.’

그런데, 이런 빗나간 흐름을 바로잡겠다며 야심찬 기획을 발표한 기관이 나타났다. 눈이 번쩍 뜨이는 반가운 소식이다. 다름 아닌 재단법인 대한불교진흥원(이사장 민병천)이다. 그동안은 설립자인 대원 장경호 거사의 유지를 기리고 추모하는 데에 머물렀지만, 창립 34주년을 맞아 설립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불교의 현대화를 통해 ‘요익중생에 이바지하는 불교’가 되도록 다짐하면서, 올해부터는 장경호 거사와 함께 근현대 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거사들을 조명하는 일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불교진흥원은 이를 위해 대원 장경호 거사의 탄생 및 입적일이 들어 있은 9월을 ‘'2009 대원문화의 달’로 선포하고 기념행사를 개최하기로 했다. 어떤 소식보다도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불교진흥원 김규칠 상임이사와 이용부 이사는 지난 8월 31일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대원문화의 달’ 선포를 기념하여 대원 장경호, 혜안 서경수, 백봉 김기추 거사의 생애와 업적을 조명하는 특별발표회와 사진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오늘의 호국-세상을 위한 불교’를 주제로 토론회도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김규칠 상임이사는 “이번 특별 발표회 이후에도 매년 제방의 의견을 수렴해 재가불교 발전에 기여한 분들의 삶을 기리는 행사들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혀 불교발전에 기여한 재가자의 선양 및 추모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뜻을 밝혔다.

처음 열리는 올 특별발표회는 ‘한국불교를 빛낸 재가불자 3인을 조명한다’는 주제로 오는 9일 오후 2시 서울 마포 다보빌딩 3층 다보원 법당에서 열린다. 8일부터 15일까지는 다보빌딩 3층 로비와 다보원 법당에서 세 거사의 생전 활동을 담은 사진전도 준비되어 있다.

특별발표회는 김규칠 불교진흥원 상임이사의 사회로 김재영 청보리회 지도법사(동방불교대 교수)가 장경호 거사, 이민용 영남대 객원교수가 서경수 거사, 김광하 작은손길 대표가 김기추 거사의 생애를 각각 회고한다. 이어 참가자들과 함께 종합토론을 통해 재가불교운동의 방향을 모색한다.

대원 장경호 거사는 성공적인 기업가로서 재가불교를 통한 불교중흥을 염원하고 불교를 통한 기업가 정신을 펼치며 불교의 사회적 역할에 기여한 분이다. 서경수 거사는 한국불교사의 한 획을 그은 불교학 연구의 거목으로서 대중과 호흡하며 재가신도운동과 수행불교를 공고히 하는데 앞장선 분이다. 특히 서경수 교수에 대한 조명은 이번이 처음으로 각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 불교진흥원의 설명이다. 백봉 기기추 거사는 독립운동가이며 참선수행을 통해 생활 속의 불교를 주창하는 등 거사불교운동의 일선에서 불교운동을 전개했다.

3인 거사의 조명과 함께 불교진흥원이 의욕을 갖고 마련한 행사는 ‘오늘의 호국-세상을 위한 불교’ 토론회다. 호국불교 정신의 선양은 불교진흥원 설립이념 중의 하나로 불교계에 호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나 개념 정립이 미흡하다고 판단해 특별히 호국에 대한 진단을 모색하기로 했다는 것이 김규칠 상임이사의 설명이다. 호국에 대한 현대적 개념을 정리하고, 21세기 현대적 상황과 시대정신을 고려하여, 오늘의 호국은 어떠한 방향과 차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를 문제의식을 갖고 천착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늘의 호국-세상을 위한 불교’ 토론회는 10일 오후 2시 다보원 법당에서 열린다. 특히 이번 토론회는 최근 서울대 규장각의 박해당 박사가 “임진왜란 당시의 승군활동이 불교의 가르침보다는 국가의식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을 제기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열리는 것이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토론회는 학술원 회원이며,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인 이한구 박사가 ‘닫힌 호국에서 열린 호국으로’, 이남곡 좋은마을운동 대표가 ‘현대 국가와 불교’를 각각 발표한다. 토론자로는 강흥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책임연구원, 김재원 변호사(불교방송 ‘아침저널’ 진행), 윤세원 인천전문대 교수(정치학),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이기태 한국디지털대 교수, 정천구 전 영산대 총장(정치학) 등 저명한 석학들이 총출동 심도깊은 토론을 벌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날 김규칠 상임이사는 기자간담회 모두 발언을 통해 “불교진흥원은 작년부터 ‘세상을 위한 불교’를 모토로 새롭게 출발했다”고 전제하고 “앞으로 불교진흥원은 불교진흥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신선한 구상을 가진 분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상임이사는 또 “불교진흥원의 사업방향은 꼭 필요한데도 현재 불교계에서 하지 않고 있는 분야의 사업, 하고 있어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사업, 불교진흥원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업에 국한해 직접 사업을 진행할 것이며, 가능한 잘 할 수 있는 개인이나 단체를 적극 지원하는 쪽으로 운영 방향을 결정했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