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좌부 바람, 스쳐 지나가는 봄바람 수준 넘어섰다”

한국불교 지형에 일대 변화가 일어날 조짐이다. 그동안 대승불교 전통을 가장 잘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불교에 상좌부불교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지나가는 봄바람일지 모든 것을 뒤엎을 폭풍일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한국불교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은 확실해 보인다.

국내에 상좌부불교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0년 전 보리수선원의 붓다락기따 스님을 필두로 몇몇 한국인 수행자가 미얀마, 태국 등 상좌부권에서 계를 받아왔지만, 대부분의 경우 한국의 비구계를 수지한 상태에서 위빠사나를 배워와 간화선과의 접목을 시도하거나, 재가자 신분으로 위빠사나를 지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사이에 몇몇 스님들이 남방에서 계를 받아와 선원을 열기도 했지만, 여전히 점 조직으로 유지돼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불교 전통 속에서 움직이던 남방불교가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한국테라와다불교(이사장 빤냐와로)가 국내에서 남방불교 교단을 표방한 첫 사단법인으로 8월 28일 ‘한국불교 전통과 테라와다불교’를 주제로 열린 세미나를 통해 포문을 연 것이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특히 한국불교의 현실 속에서 테라와다불교가 무엇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테라와다불교가 한국의 불교전통과 큰 마찰 없이 나름의 새로운 전통을 구축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모색이 이어졌다.

임승택 “한국불교의 건설적인 미래상 정립에 참조될 것”

임승택 교수(경북대)는 “테라와다불교의 가르침과 생활방식은 간명하면서도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며 “테라와다불교는 한국불교에서 노출되는 제반 문제점과 관련해 건설적인 미래상을 정립하는데 많은 참조가 될 것”이라면서 남방불교가 한국불교가 직면한 현실적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임 교수는 “한국불교의 현실적 문제점은 교리체계와 수행체계의 난맥상, 승단의 세속화와 질적 저하, 시대와의 소통부재 등”이라고 지적하며 “테라와다불교 사례를 통해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붓다의 가르침은 현실적으로 보탬이 될 수 있는 간명하고도 일관된 형태일 것”이라는 임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경(經)‧율(律)‧론(論)의 독자적 체계를 완비한 테라와다불교는 붓다가 추구했던 원래의 의도를 되새기는 데에 많은 참고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임 교수는 “쉽게 접근해 나갈 수 있는 실천 방법의 제시라는 측면에서도 훌륭한 사례를 제공한다”며 “위빠사나 수행이 한국에서 불교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 바로 그 것”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또 “출가 수행자의 본분은 오로지 수행에 전념하는 데 있음이 분명하지만 한국불교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전통적인 계율을 가능한 지키려는 테라와다불교는 스스로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재가자들에 대해 정신적 스승으로서 공경이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통의 문제에 있어서도 임 교수는 “대승불교가 소통과 더욱 부합한다고 할 수 있지만 한국불교는 재가자의 지원 없이 운영되는 시스템을 구축해왔다”며 “한국불교는 테라와다불교를 소승으로 폄하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그들은 결코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았고 재가자들과 철저한 상호의존적 관계를 유지했으며 청정승가를 구현하는데 보탬이 됐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테라와다불교가 한국불교 문제점 개선을 위해 모범사례로 참고 할 수 있지만 한국불교가 지닌 우수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며 “한국불교와 테라와다불교가 동반자적 입장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선양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정준영 “테라와다는 사부대중 통한 불교 보존노력의 산물”

이날 세미나에서는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정준영 교수가 또 ‘테라와다불교의 발생과 흐름’을 발표했다.

정 교수는 “테라와다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을 가장 보수적으로 이해하려는 부파의 하나로 불교의 역사와 비견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국내에 소개된 것은 최근의 일”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테라와다불교는 붓다가 활용한 분석을 활용해 현상을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지혜를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며 “관찰의 대상을 향한 분석, 해체, 구분은 붓다로부터 시작해 테라와다에서 유지되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 교수는 “테라와다불교가 가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출가자가 율장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라며 “붓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계율들은 2,5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테라와다불교안에서 비구의 유지 조건인 동시에 승가를 유지하는 결속력이 됐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또 “붓다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간직하려는 보수적인 테라와다불교는 특정계층의 전유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위한 가르침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며 “오늘날 테라와다불교는 사부대중을 통해 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붓다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 산물”이라고 평가했다.

뺜냐와로 스님 “한국에서 부처님 법이 우선하는 불교 펼치겠다”

이 밖에도 동국대 이자랑 교수는 빨리율에 나타난 수행자의 생활상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동국대 고영섭 교수는 ‘비바사’(고영섭 교수는 비바사가 남방불교 일컫는 개념이라고 주장)가 ‘마하연’(대승) 보다 먼저 전래됐다는 최치원의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의 기록을 인용하며 남방불교의 재전래설을 주장했다.

세미나가 끝난 뒤 테라와다불교 이사장 빤냐와로 스님은 “선배들이 걸어온 길이 있고, 후배들이 걸어야 할 길이 있기에 오늘 우리들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며 “출가자는 수계, 결제, 해제, 포살의 의무를 이행하고 재가자는 사찰의 건립과 운영, 출가자보호라는 의무를 지켜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빤냐와로 스님은 “출가와 재가의 어울림 속에 올바른 테라와다불교를 이룩해 한국불교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며 “한국테라와다불교가 아니라 한국에서의 테라와다불교 즉 부처님 법이 우선하는 불교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국내에서 남방불교는 소승이라고 폄하돼왔던 현실 속에서 남방불교를 표방한 사단법인이 설립됐고, 그 법인의 첫 움직임인 세미나가 한국불교 1번지라는 조계종 총무원 청사 내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방불교가 국내에 안정적으로 정착해 한국불교의 변화를 이끌어낼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