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파행과 혼란을 마감하고 새 총무원장 선출을 통해 정상화로 접어들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태고종이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선거관리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태고종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보경·이하 선관위)가 오늘(8월 27일) 오후 2시부터 열린 후보자격 심사에서 후보 복수추천이 불법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리고, 결국 후보자격을 인공 스님 1인만 인정하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종회의원 10인 이상 추천으로 후보자격을 갖는다는 규정에 따라 후보등록을 마쳤던 대은·도산·지허 스님은 선관위의 납득하기 어려운 유권해석으로 졸지에 후보자격을 상실했다. ‘복수추천은 불법’이라는 규정을 적용하면, 인공 스님만 후보자격이 있다는 것이 선관위의 판정이다.

그러나 종회의원이나 등록후보에게 신설규정인 ‘1인 1추천’의 규정을 사전에 충분히 홍보하지 않는 등, 선관위의 이번 유권해석은 특정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얕은 술수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선관위가 이 규정을 고수할 경우 태고종은 또 다시 분규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 가까스로 맞은 종단 정상화의 기회가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실제로 후보자격을 상실한 대은·도산·지허 후보 측은 후보자격 상실 판정을 받은 직후 합동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선관위의 후보자격 심사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최악의 경우 사회법을 통한 해결도 불사할 방침을 밝혀 태고종은 다시 한 번 반목과 분열의 구렁텅이로 접어들 전망이다.

태고종 종헌종법에는 총무원장 선거와 관련 중앙종회의원이 복수의 후보를 추천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중앙선관위 규칙도 이미 8월 17일 선거공고 이후인 8월 21일 제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이 규정이 신설됐다는 사실을 알리는 과정도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상 밀실에서 만든 이 규정을 적용한 심사가 적법성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앙선관위측은 “선거규칙 제4조에 ‘중앙종회 1인이 한 명의 후보만을 추천한다’고 되어있다”며 “따라서 이번 결정은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다”고 반박하지만,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선거 공고 이후에 제정된 선거규칙의 적법성 여부도 문제이거니와, 그나마도 이 규정을 종도들에게 얼마나 충분하게 알렸는가의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관위가 제정한 이 선거규칙이 종단 기관지는 물론, 종단의 공식 홈페이지에 공지되지 않았고, 후보 접수과정에서도 이를 명시하여 공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선관위는 입이 열 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후보자격 상실 판정을 받은 후보들이 이를 두고 “특정후보를 총무원장으로 만들려는 흉악한 음모가 드러난 것”이라는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충분한 공감을 사고도 남음이 있다.

백번 양보해서, 설사 법적으로 이 과정이 종단내 법규위원회나 세속의 법정에서 적법성을 인정받더라도 누가 봐도 비정상적 절차를 거쳐 당선된 총무원장이 어떤 명분과 힘을 가질 수 있겠는가. 종도들 다수로부터 정정당당하게 지지를 받지 못한 허울뿐인 총무원장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새 총무원장을 여법하게 뽑아 종단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염원을 저버린 어떤 승리도 의미가 없음을 선관위는 뼈저리게 인식해야 한다.

태고종의 현 선관위는 이번의 어처구니없는 결정으로 객관적 명분과 신뢰를 상실했다. 따라서 그들의 향후 활동은 어떤 것이든 설득력과 공신력을 얻기 어려워졌다. 하루라도 빨리 스스로 물러나 참회하는 것밖에 선관위 위원들이 애종할 길은 따로 없어 보인다.

‘홀로후보’가 된 인공 스님도 이와 같은 파행적 과정을 거쳐 원장에 오르는 것이 별다른 의미가 없음을 잘 알 것이라고 본다. 공정한 규칙이 적용되지 않은 경쟁에서 승자가 된들 그것이 무슨 가치와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이번 선거에서 후보들의 공통적인 공약은 종단 정상화, 종도 화합이었다. 인공 스님은 선관위의 결정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스스로 후보에서 물러나, 처음부터 선거를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결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위법망구의 자세이고, 공심을 가진 종단 지도자가 내려야 할 결단이라고 본다.

태고종이 혼란을 수습하고 명실상부한 제2종단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는 교계의 마지막 기대를 부디 저버리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