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일 약속 지킬수 있을까 ‘조바심 1000일’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드디어 산문을 나선다. 봉은사 주지로 임명된 직후 명진 스님은 앞으로 1000일간 산문 출입을 하지 않고 봉은사 주지로서의 소임에만 충실하겠다고 선언했고, 지난 1000일간 매일 1000배씩을 하면서 지내왔다.

“하루하루 조바심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1000일을 채우지 못하면 어쩌나, 신도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늦잠을 자서 새벽예불에 참가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한동안 발이 퉁퉁 부어 절하는 게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절을 못하면 앉아라도 있자고 마음을 놓으니 발이 스르르 가라앉더군요. 요즘은 1000배 정도는 아주 가볍게 합니다. 봉은사가 얼마나 영험한지, 한번도 아프지 않고, 설사병 한번 안났습니다. 만약 큰 병이라도 들었으면 병원 가느라 기도를 제대로 마칠 수 없었을 텐데, 다행히도 몸살감기 한번 가볍게 앓은 것 빼고는 아픈 적도 없었습니다. 기도란 약속을 통한 긴장관계입니다. 그렇게 1000일을 보내고 나니 아쉽기도 합니다. 1000일 기도를 더 하지는 않겠지만, 남은 중노릇하는 동안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다보면 좋은 결실들이 나오리라 믿습니다.”

명진 스님이 1000일간 봉은사에서 두문불출하는 동안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스님과 뜻을 함께 하던 두 대통령이 연달아 세상을 떠났고, 서울광장에는 촛불이 가득하기도 했고, 스님들의 목탁소리로 광장이 채워지는 날들도 수차례 있었다. 한때 민주투사로 이름을 날리던 명진 스님은 그 시간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1000일 기도 중에도 마음은 늘 중생과 함께였다”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벌어졌을 때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노무현 정부 때 한나라당도 그렇고, 조중동(조선·중앙·동아) 등도 미국산 쇠고기가 문제가 많으니까 수입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 것은 대통령의 결심에 의해 FTA 타결에 바라는 마음으로 미국에 선물을 준 것입니다. 우리의 검역 주권을 포기한 것입니다. 미국산 쇠고기가 몸에 해롭냐 아니냐를 따지기 이전에 조급한 타결을 위해 우리 검역 주권을 포기한데 대한 분노가 촛불로 타오른 것입니다. 그 때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1000일간의 약속은 지켜야 하지, 마음속에 번뇌는 일어나지. 가장 힘들었던 때는 종교편향 근절을 위한 범불교도대회가 열렸을 때입니다. 그때 젊은 스님들이 종회에서 결의를 해서라도 명진 스님 끌어내야 한다는 말들이 나돌았는데, 그때 결의가 됐으면 제가 핑계를 대고 나가서 마이크를 잡고 청와대로 한번 쳐들어가자고 이야기를 했을 껍니다.(웃음)”

‘투사 이미지에서 수행승의 이미지로 상당히 전환된 것 같다’고 하자 스님은 “더 투사가 되었다고는 이야기하지 않던가”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안에만 머무르고 있으니까 사람이 조금은 사나워지더군요. 그래도 요즘은 인터넷 매체도 있고, 신문도 있으니까 그다지 갑갑하지는 않았습니다. 방편으로 외부 출입을 안했을 뿐 사회적 사안들에 대해 더욱 관심 가졌고, 주지로서 지내는 것이 개인적 삶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예전보다 더 활발하게 세상의 문제들에게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스님은 회향법회를 마친 직후 첫 번째 외출로 용산참사 현장을 찾을 계획이다. 스님은 왜 그곳을 첫 행선지로 선택한 것일까.

딱 한번 노대통령 영결식때 ‘외출’…회향 후 용산으로 달려갈 것

“제가 봉은사에서 1000일 기도를 하는 중에도 항상 마음속에 세상과 함께 어떻게 더불어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용산참사 희생자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 갖고 있습니다. 용산참사는 명백히 무리한 공권력 투입으로 일어난 참사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저항하다가 그런 참변을 당한 것입니다. 용산참사가 일어나자마자 적은 돈을 보내드리고, 과일, 떡, 쌀 보내드려 가끔 위로를 전했습니다. 그 마음의 빚을 덜고 싶어 첫 행보를 용산으로 하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1000일 동안 딱 한번 산문을 나섰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스님은 그 이유를 ‘역사에 동참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제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 추모 집전을 맡은 것은 우선 권양숙 여사가 봉은사 신도이기 때문이었어요. 봉하마을에 내려가기 이틀 전 새벽기도에 나와 ‘그동안 못 나와서 미안하다. 다른 종교에 누가 될까봐 그랬다’고 하면서 5년간의 신중기도 회비 120만원을 내고 갔어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김대중 대통령처럼 노환으로 돌아가셨다면 안 나갔을 겁니다. 하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고, 또 그것은 개인적 친분뿐만 아니라 역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사의 흐름에 내가 같이 동참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죠. 또 한 가지는 불교적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매체를 통해 전 국민들이 보고 듣는데, 형식적인 집전뿐 아니라 불교적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신도들에게는 여전히 미안한 부분이지만, 역사에 대한 동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님이 산문을 나서지 않는 동안 봉은사는 사찰 내부적으로도, 대사회적으로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20여년간 분쟁이 끊이지 않던 강남 봉은사에서 강남 불교의 중심지, 나아가 한국불교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혁신지가 된 것이다. 그 사이 일요법회에 참가하는 불자 수는 무려 10배가 증가했다.

1000일 기도 중 봉은사 절로 혁신 “쇼 하려면 이런 쇼를 하라”

“저는 94년 종단개혁 당시 개혁회의 의장에게 가사를 바치면서 만약 이번에 종단을 개혁하지 못한다면 가사를 다시 입지 않겠다고 결의했습니다. 그런데 개혁이 성공한 후 종회에 들어가 부의장을 하면서 보니까, 의현 스님 1인에게 집중됐던 권력이 종회의원 81명과 본사 주지 25명, 분과위원장들에게 분배되었을 뿐 종단 전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총무원장에서 종회로 권력이 넘어간 것일 뿐이었죠. 그래서 13대 간선 종회의원을 스스로 반납했습니다. 그 후 봉은사 주지로 우연찮게 들어왔고, 누구의 지지나 후원을 받아서 된 것도 아니라 부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봉은사를 통해 종단의 개혁을 시도하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봉은사는 조계종 사찰 가운데 예산이 가장 많은 절인 만큼 바람직한 사찰을 만든다면 안팎으로 좋은 영향을 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시작하고, 예산을 모두 공개하고, 신도들을 사찰 운영에 직접 참여시켰습니다. 저 나름대로 종단 개혁에 대한 안을 차곡차곡 실행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봉은사 주지로서의 지난 3년이었습니다. 그동안 불교는 권력 앞에 너무 비루했습니다. 봉은사 주지를 앞으로 얼마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찰의 위상을 바로세우고 바른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사회, 한국불교를 바꾸는 모델을 봉은사로 만들겠다는 생각입니다. 94년 당시 가사를 벗고 산문을 떠나겠다고 했던 그 마음으로 봉은사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왔습니다.”

스님이 봉은사 주지로 취임한 후 봉은사에 머무르고 있는 스님 17명은 매일 아침 예불을 드리고, 발우공양을 하며, 자신이 맡은 울력을 하고 있다. 스님으로서는 너무 당연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명진 스님은 그 세 가지만 제대로 해도 중노릇 다한 것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제가 1000일 기도를 한다고 하자 다들 ‘쇼’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쇼를 하려면 이렇게 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스님들이 싸우는 쇼를 보이는 것보다 불교의 모델이 되는 그런 쇼를 하길 바랍니다. 스님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좋은 모습을 보여줘 신도들이 감동을 받고 따라오게 하는 것이 스님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9월부터 강원도 인제 용화선원에 가서 정진할 계획

스님은 1000일 기도를 마친 후 9월부터 강원도 인제에 있는 용화선원으로 방부를 들일 계획이다. 그것은 봉은사 주지이기 이전부터, 종회부의장이기 이전부터, 승려로서 자신과 맺은 약속 때문이다.

“나는 수행자로서의 기본 입장을 견지하고 싶습니다. 1000일 기도를 한 것도 사판으로서 내 수행을 어떻게 하면 게을러지지 않을까, 주지 잘하면서도 내 성찰이 게을러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1000일 기도의 에너지를 갖고 두 달간 10시간씩 대중스님들과 정진하면서 바깥소식도 덜 들으면서 더 알뜰하고 더 역력하게 내 시간 갖고 싶습니다. 1년에 적어도 한철씩은 선방에 가야한다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87년부터 88년까지 1년간 개운사 주지를 한 직후 봉암사 선방에서 한철을 난 이후부터 한번도 1년에 한철씩 선방에 가는 것을 빼먹은 적 없습니다. 불교계 승려 최초로 평양에 갈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인제로 갈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해왔습니다. 내 성찰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주지도 포기할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에도 봉암사를 가고 싶었는데 봉암사가 공사를 한다고 해서 용화선원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곳의 선원장이신 송담 스님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스님입니다.”

송담 큰스님의 ‘但知不會’는 삶의 좌우명이자 목적

그러고 보니, 스님의 등 뒤에는 송담 스님의 ‘但知不會’ 글씨가 걸려있었다.

“소크라테스가 죽기 직전 제자들에게 ‘내가 아는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내가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나를 잘 모른다는 것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와 같은 의미입니다. 오직 다만 아는 것은 모른다는 사실이라는 것, 저는 소크라테스가 위대한 철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저 문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담 스님으로부터 저 글귀를 듣고 저것이(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저의 좌우명, 제 삶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한국불교의 희망, 한국불교의 문제점을 모두 선(禪)에서 찾았다.

“저는 조계종이 다른 종단과 다른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선원의 시스템이라 생각합니다. 수좌들이 자유롭게 방부들이고 석달 동안 아주 자연스럽게 모였다 흩어졌다 하면서도 엄격한 규칙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나이 열일곱된 초보자들부터 70대 노장까지, 성격도 다르고 학력 다른 이들이 왜 부딪히는 것이 없겠습니까. 그럼에도 그 시스템이 지금까지 계속 유지돼온 것은 대단히 훌륭한 것입니다. 하지만 조계종이 간화선을 중심으로 하는 선종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간화선에 대한 가르침이 올바르게 정립돼 있나 하는 문제는 심각합니다. 한국불교가 과연 선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수행자들에게 선을 가르치고 신도들에게 이렇게 좋은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전해주면서 그걸로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 선종입니다. 그런데 조계종 사찰의 현실을 보십시오. 제사, 기도를 지내서 수입을 얻으면 그것은 기도종입니다. 또 관광지 입장료로 먹고 살면 그것은 관광종입니다. 나의 성격은 나의 경제적 문제 어떻게 해결됨으로써 규명됩니다. 지금 조계종은 선종이라 할 수 없어요. 대다수 사찰이 제사나 기도로 사찰 재정을 운영하는데, 선종으로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것이죠. 선종의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이것이 가장 큰 숙제입니다. 저는 봉은사가 내년부터 그 역할을 함으로써 조계종, 선종의 아이덴티티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형식으로 나타날 것인지는 좀 더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1000일 회향기념 모은 쌀 결식아동 위해 전달 예정

명진 스님은 1000일기도 회향 기념으로 쌀 모으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원래 1000석을 목표로 시작했는데, 벌써 900석이 모여 예상보다 더 많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1000석 가운데 900석은 경기도 결식아동 10만명을 위해 경기도교육청에 보내지고, 100석은 강남구 교육청에 보내질 예정이다. 8월 30일 열리는 1000일 기도 회향법회에서 경기도 교육감과 강남구 교육청장에게 전달된다.

“경기도 교육감이 아이들 급식비를 무상으로 하겠다는 좋은 뜻을 품었는데, 그것이 정치적 이해에 부딪혀 무산된 것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세계 경제 15위권 나라에 결식아동들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1000석의 쌀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 자체로 상징적 의미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의 사회적 역할이 바로 약자와 소수자와 함께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스님이 거처하는 봉은사 다래헌에는 세 장이 사진이 놓여있다. 한 장은 스님이 처음 출가할 당시 행자생활을 하던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이 찍어준 사진. 성철 스님이 공양간에 있는 명진 스님을 불러 ‘웃어’라고 소리쳤는데 우연히 명작이 하나 나온 것이라고. 함께 행자생활을 했던 故 원명 스님이 갖고 있던 사진을 우연히 얻게 되었다.

책장 안에 놓여있는 사진은 서울공고 선배인 리영희 선생과 찍은 사진이다. 또 한 장의 사진은 87년 개운사 주지를 할 당시 조계사 앞에서 스님들 시위가 있었는데 골목안에서 스님들 도망가지 못하게 망을 보다가 백골단들에게 잡혀가던 사진이다. 우연히 한국일보 기자가 현장에서 찍었는데 6월 항쟁 기념집에 실리게 된 것이다.

왜 저 사진을 놓아두었냐고 하자 “나도 왕년에 놀았다는 걸 보여주려고”하면서 명진 스님은 너털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