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가 세운 적산법화원은 많은 부분 신라의 풍속을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특이할 만 한 점은 6두품이상만 보살계를 받던 신라와 달리 법화원에서는 승속, 귀천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보살계를 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출신성분에 콤플렉스를 가진 장보고가 신라에서 받지 못한 보살계를 법화원에서 실현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법산적화원의 보살계 의식은 장보고가 출신성분에 대한 콤플렉스를 해소하려는 의도였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8월 22일 서강대 마태오관에서 열린 신라사학회 제86차 학술발표회에서 ‘적산법화원의 보살계 수계의식과 그 의미’를 발표한 서강대 조범환 교수는 “장보고는 신라를 떠나 중국에서 출세하였지만 신라에서는 보살계를 받지 못하였고 법화원을 창건한 뒤 일반 평민들도 보살계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주장, 신라풍속의 영향이라는 기존의 학설을 뒤집었다.
신라 하대에 한중일 등 동아시아 바다를 호령하며 해상왕이라 불렸던 장보고는 출신성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삼국사기』에는 “해도인(海島人)”이라 기록되어 있고, 『삼국유사』에는 그의 신분이 “측미하다”고 기록된 점을 볼 때 섬에서 태어난 미천한 신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뛰어난 무예실력과 바다에 익숙해 당나라로 건너가 군중소장이 됐으며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그러던 중 신라인들이 해적들에게 잡혀 노예로 팔리는 현실에 분개해 신라로 돌아와 흥덕왕을 찾아가 청해에 진을 설치할 것을 건의했다. 이후 청해진에서 세력을 확장해 해상왕이라 불릴 정도로 세력이 확대됐다. 그러나 장보고의 성장을 견제한 중앙 귀족들에 의해 부하였던 염장에게 암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적산법화원은 장보고가 창건한 사찰로 여름과 겨울에 2개월씩 『금광명경』과 『법화경』을 강설하는 강경법회가 열렸다. 일본 승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는 법화경 강경(講經)법회가 끝나는 날에는 승속, 귀천의 구별 없이 신도들에게 보살계를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두고 기존 학계에서는 법화원 법회의 거의 모든 의식이 신라 풍속에 의해 진행됐으므로 보살계를 준 것도 신라에서 행해지던 관례를 따른 것으로 해석해왔다. 즉 신라에서도 승속, 귀천의 구별 없이 법회에 참석한 신도들에게 보살계를 주었다는 것이다.
조범환 교수가 법화원의 보살계 수계는 신라의 풍속을 따른 것이 아니라고 보는 근거로 “신라에서는 왕이나 왕족 6두품이상에게 행해지던 보살계 의식은 기록이 남아있지만 일반 민들이 보살계를 받았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삼국유사에는 경덕왕이 진표에게 보살계를 받았다는 대목이 있으며,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에는 진골 귀족인 무주도독 김일이 보살계를 받은 기록이 남아있다.
이에 대해 조범환 교수는 “귀족층이 보살계를 받은 기록은 있으나 일반 민들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 귀족들만 보살계를 받았다는 사실을 대변해주는 것”이라며 “일반 민들도 보살계를 받았던 법화원 수계는 신라의 풍속이 아닌 법화원만의 특색”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조범환 교수의 주장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박미선 교수는 “일반 평민에 대한 보살계 수계의식이 법화원에서만 이루어졌다는 주장에는 견해를 달리한다”고 밝혔다. 박미선 교수는 “삼국유사에는 진표가 명주에서 계법을 설하고 이를 사람들이 받들어 수지했다는 기록이 나온다”며 “이는 일반 평민들이 계를 받았다는 기록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조범환 교수는 “진표가 명주에서 계를 준 일은 특수한 경우로 봐야 한다”며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법화원의 보살계 의식과는 차이가 있다”고 응답했다.
또 학술발표회를 참관한 신라사학회 김창겸 회장은 “기록상으로 볼 때 법화원의 보살계 의식이 신라와는 다른 모습이었다는 문제제기는 가능하다”면서도 “보살계 의식이 장보고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해석은 너무 비약적인 해석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조범환 교수는 “법화원은 장보고가 창건했기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기본 입장에서 출발했다”며 “법화원 보살계의 특수성, 장보고의 영향관계 등을 더 조사해 논지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