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용주사의 신도들은 무척 바쁘다. 정호 스님이 주지로 부임해온 뒤, 두 배는 더 바빠졌다. 절의 행사도 많아지고, 찾아오는 손님도 부쩍 늘어나 절 찾는 일이 아주 잦아졌기 때문이다. 절 안의 행사만이 아니다. 때론 수원으로, 서울로 행사참여를 위해 원행을 떠나기도 한다. 주지스님 부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바쁘기는 절에 사는 대중스님과 종무소 관계자들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고위관계자나 도지사, 국회의원, 시의원 등이 수시로 절을 찾아오고, 이따금씩 피곤하면 더러 빠지기도 했던 아침예불이나 울력 등 사중행사에 예외 없이 참석하는 등 생활이 빠듯해진 것이다. 여기에는 명문 경남고와 고려대법대 출신인 스님의 개인 이력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그저 조용했던 절 용주사의 이런 변화는 물론 용주사 주지로 정호 스님이 부임해온 이후에 나타난 현상이다. ‘난 선방에서 30년을 졸다 나온 사람’이라는 주지스님의 말씀처럼 모든 것에 얼마나 철두철미한 지 도무지 틈이 보이지 않는다.
아침예불에 참석하지 않으면 방을 빼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주지스님이 직접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고 있으니, 대중들이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다. 선방에서만 지낸 스님이라, 어떤 면에선 좀 편치 않겠나 하는 기대는 접은 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도 스님이나 신도들의 표정은 훨씬 밝아졌다. 절에 나오는 신도들의 수도 배가됐다. 용주사 신도라는 자부심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가 있다. 용주사가 살아 꿈틀거리는 절로 시나브로 변신한 것이다.
지난 18일 정조대왕 제향일에 정호 스님을 만났다. 융·건릉 주변의 문화환경 보호를 위해 불철주야 힘을 쓰고 있는 스님의 일을 교계에 알리고, 이 일에 종단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미력하나마 기여할 마음에 나선 길이다. 주지실로 들어가니 벌써 많은 분들이 모여 융·건릉 대책마련에 여념이 없다. 요즘 추진하는 일에 성과는 보이느냐는 질문에 스님의 답변은 간단하다.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융·건릉과 그 주변을 문화재보존지역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도 크게 늘어났고, 매스컴에서도 호의적으로 보도해주는 등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정책결정이 내려졌던 사안이라 정책적 차원의 해결에는 어려움이 많네요. 융·건릉 주변의 문화환경 보존은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기도 하니, 대통령 결심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입니다. 더 노력해야지요.”
행정행위가 아니라 통치행위로 풀 사안이 돼버렸다는 이야기다. 그 사이에 주택공사에서 택지개발 공사를 재개할 염려가 있어 감사원에 주택공사와 문화재청의 잘못된 행정결정 대해 감사청구를 요청해놓은 상태다.
그렇다면 이른바 ‘화성태안 3지구 택지개발사업 조성공사’라는 이름으로 주택공사가 추진하는 사업의 개요와 문제점은 무엇일까.
경기도는 지난 1998년 화성시 태안읍 송산·안녕리 일원 118만 8천 평방미터를 택지로 개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런데 이 개발지역 안에 융·건릉과 용주사, 정조가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축조한 만년제가 포함되고, 지난 2007년 11월 정조대왕 재실터, 수원 고읍성, 고려시대 건물지 등이 발굴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상당한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이 지역을 택지개발구역에서 제외하고 대신에 세계 최고의 효 문화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개발사업이 보류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운동의 중심에는 물론 용주사 주지 정호 스님이 우뚝 서 있다. 스님은 정조대왕릉 앞을 15층 콘크리트 아파트로 덮어버리겠다는 주공의 계획은 더구나 융·건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현실에서 마땅히 철회돼야 한다는 입장을 굳건히 하고 있다.
다음은 정호 스님과의 일문일답.
-경기도에서는 정조 효 문화유적지 보존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데, 화성시와 문화재청이, 특히 문화유적을 보존해야 하는 것을 생명처럼 여겨야할 문화재청이 주택공사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문화재청은 이미 주택공사와 뜻을 같이하며 개발용역에 관여하고 있었다. 따라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할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15층 고층 아파트촌이 계획된 태안3지구로 인해 융·건릉이 입게될 피해를 구체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
“태안3지구의 남측 19만평은 융·건릉·용주사로부터 500미터 이내에 위치해 있다. 또 마땅히 사적지로 지정돼야할 ‘정조 재실터’ 및 ‘초장왕릉터’를 포함한 지역이다. 기존의 계획대로 개발이 진행된다면 정조 재실터와 초장왕릉터는 훼손이 불가피하고 융·건릉과 용주사도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다. 따라서 이 지역은 개발이 불가하다. 설사 개발된다면, 정조 효문화유적지를 선양할 수 있는 효문화 테마공원이 되어야 한다.”
-주택공사와 화성시측은 계속해서 택지개발 계획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시절에 용주사를 방문해 분명히 ‘효문화 공원’ 조성을 공약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이에 대해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여러 경로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공약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문화재청에 대한 감사청구 및 추가감사 요청도 대통령의 결심을 촉구하는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왕릉의 세계문화유산등재 이후 융·건릉에 대한 문화적 가치도 훨씬 높아졌다. 그런데도 문화재청과 주택공사가 이의 추진을 밀어부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가?
“문제는 청와대와 정부의 미온적 태도다. 현재 정부가 국가 브랜드 강화를 외치고 있는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적지를 파헤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어불성설이다. 용주사와 경기문화연대 등 관련 단체들은 힘을 모아 반드시 우리 화성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지켜내고 말 것이다.”
자비로운 미소도 이 문제를 이야기 할 때는 사자처럼 바뀐다. 포효하는 사자의 표정을 한 스님의 목소리 또한 그대로 사자후다.
스님은 마침 오는 9월 28일 오후 2시부터 여의도 국회의사당내 강당에서 열릴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의 바람직한 보존 및 활용방안-융·건릉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세미나 준비로 회의를 하는 도중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기 무섭게 스님은 함께 자리한 교수와 경기문화연대 관계자들과의 회의에 나선다. 발제자와 토론자 선정문제, 세미나 당일 인원동원문제 등이 심도깊게 진행된다. 이제 그만 자리를 뜨겠다며 인사를 올리는 기자를 배웅하며 스님은 한 마디를 덧붙인다.
“어쩌겠소?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지. 주지로 온 이래 이 일에 매달려 왔는데, 벌써 3년 반이나 지났어요. 빨리 마무리가 되어야 할 텐데….”
효 문화 선양을 위해서는 용주사부터 효 실천에 앞장서야 한다며 주차장 맞은편에 효행교육관을 짓고, 경내 왼편에 노스님을 위한 봉양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정호 스님. 스님의 잘 살펴가라는 인사말을 뒤로하고 경내를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