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편지 한 장 달랑 써놓고 사라졌다. 얼마 뒤 어머니는 인근 사찰에서 딸이 스님이 되어있더라는 말을 전해 듣고 곧장 달려갔다. 냉랭하게 돌아가시라는 말만 하는 딸을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갔다. 딸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음을 인정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어머니는 부처님께 매일같이 기도를 한다. “부처님께서 우리 딸이 큰스님이 될 수 있도록 잘 보살펴 달라”고.
그 딸은 왜 갑자기 출가를 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법회 전단지가 계기였다. 전단지에 적힌 ‘백척간두 끝에서 나랑 한바탕 춤출 사람이 누구인가’라 경구는 그를 해탈문 안으로 이끌었다.
2000년 봄 307명의 행자들이 스님이 되기 위해 행자교육원으로 모여들었다. 그 어머니의 외동딸 또한 그들 중의 한 명이었다. 당시 그들의 출가현장은 MBC를 통해 최초로 공개되었고,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그로부터 딱 10년이 흐른 2009년 4월 MBC는 그때 그 행자들을 찾아 나섰다. ‘출가, 그 후 10년’이 식목일(4월 5일 일요일) 밤 10시 35분 방영됐다. 307명 가운데 7명의 행자들을 따라 나섰다.
10년 전 행자교육원에 모인 행자들은 저마다 한편의 소설 같은 출가동기를 안고 있었다. 미국에서 최고 명문으로 일컬어지는 UC버클리와 하버드를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혜민 스님, 한국 불교에 관심이 있어 잠시 입국했다가 비구니 스님들의 삶에 감격해 출가했다는 캐나다인 자은 스님, 법회를 소개하는 전단지에서 ‘백척간두 끝에서 한바탕 춤추어 보세’ 라는 경구를 보고 출가했다는 여대생 다문 스님, 교사를 하던 48세의 늦깎이 혜산 스님 등.
조계종 행자교육원 18기 졸업생들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출가한 지 10년이 되는 해, 부처님오신날을 한달쯤 남기고 브라운관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10년을 공부한 스님들은 지금 무엇이 되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10년 수행 끝에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프로그램이 천착한 주제이자, 모든 이들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주제에 대해 우리 국민은 일요일 밤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았다.
더구나 사는 것이 몹시 힘들고 어려울 때,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한 스님들의 삶은 우리 삶의 본질을 생각해 보게 하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이기에 관심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행자교육원 당시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자은 스님. 캐나다에서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생화학박사였던 그녀는 자신의 연구로는 질병을 고칠 수 있지만 사람들의 고통은 치유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진정으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기 위해 출가했다.
낯선 땅에서 외국인 스님으로서의 삶은 어땠을까. 4년의 강원시절에는 40여명의 스님들과 한 방에서 함께 생활해야하는 불편함도 있었고, 한문으로 된 경전을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도 느꼈다.
그때 느낀 감정은 ‘고독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님은 그 고독이 자신이 외국인이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 아님을 이내 깨달았다. 그것은 마음,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 때문이었다.
스님은 국제포교에 관심이 높아진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스님은 비로자나국제선원에서 스님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자타카 경연대회에서 어린이들의 영어 실력을 점검하고, 또 안거철이 되면 선방에 들어가 3개월간의 정진에 들어간다.
자은 스님은 깨달음을 얻은 후 캐나다에서 한국 불교를 알리는 사원을 건립하는 것이 꿈이다. 그 동안 대중들에게 받은 사랑을 한국에 돌려주고 싶다는 자은스님은 10년을 지나오면서 한국말도 잘하게 되어 수행하며 깨달은 ‘마음’에 대한 설법도 하게 됐다.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모두 ‘마음’에 있다는 자은스님. 캐나다의 생화학박사에서 한국의 비구니스님이 되기까지 10년 동안 마음공부를 통해 깨달은 스님의 삶은 한 사람의 인생이자신의 의지에 따라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UC버클리, 하버드 대학원을 마치고도 채워지지 않는 것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출가한 잘생긴 행자는 10년 후, 미국에서 교수가 되었다. 한국 승려로는 최초로 미국 대학의 교수가 된 혜민 스님은 햄프셔 대학에서 미국학생들에게 동양종교를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주말이면 총무 소임을 맡고 있는 뉴욕 불광사에서 셔틀버스 운전수도 하고 교포 학생들에게 선을 가르치고 있다.
교수일도 바쁜데 수행은 언제 할까? 혜민 스님은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마음이 표출되고 관찰하는 게 많아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수행이라고 하는데….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나 신도님들과 함께 하는 것이나 그리고 제 마음을 바라보는 것은 하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혜민 스님의 꿈은 한국불교를 미국에 그리고 세계에 전파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국사찰의 승복을 입은 스님이 미국 대학강단에 선 그 자체가 이미 한국불교를 세계 속에 우뚝 세운 것이 아닐까. 혜민 스님이 미국 어디에서도 우러러 볼 수 있는 한국불교를 상징하는 커다란 불탑이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10년전 행자교육원에서 카메라에 잡힌 독특한 행자가 한 명 있었다. ‘행자 생활은 절로 시작해서 절로 끝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라도 하듯, 이마에 시커먼 멍까지 들어가며 열심히 절을 하던 그 행자. 그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 육군 대위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스님의 길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법회를 진행하는 군법사가 된 것이다. 자신이 방황하고 헤맬 때 빛이 돼 주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젊은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군법사의 길을 선택했다는 지용 스님. 군대라는 특수한 곳에서 스님으로 생활하며 수행 중인 군법사 스님이 10년 동안의 삶을 보여준다.
“군대처럼 살생을 하고 위협적인 단체에서 포교활동을 하고 같이 산다는 것 자체가 고민이 되고 갈등을 느끼는 부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 안에도 불자들이 있기 때문에 외면할 수는 없는 거죠.”
끓이기 쉽다는 이유로 달걀에 파송송 썰어넣은 달걀국을 거의 100일째 끓여 내오고 있는 군종병에게 스님은 타박 한번 하는 일이 없다. 군대와 스님, 달걀국과 아침식사가 공존하는 지점에 바로 당신이 서있기 때문이다.
10년전 출가한 300여명의 행자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들었던 혜산 스님. 조계종의 출가연한을 2년 남겨놓고 마흔 여덟 늦깎이로 출가했던 혜산 스님은 이번 겨울 한철을 참선을 수행하는 선방에서 지냈다. 하루 8시간에서 16시간까지 좌선을 하며 화두와 싸운 100일간의 동안거였다. 지난 10년 동안 아들, 조카뻘 되는 스님들과의 생활을 견디지 못해 강원을 세 번이나 뛰쳐나오기도 했다.
그가 세 번이나 강원을 뛰쳐나왔음에도 지금까지 스님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팔할이 은사종곡 스님 덕분이다. 강원에서 나왔다고 해도 왜 나왔냐는 타박이나 질책없이 “그래 잘 왔다. 푹 쉬어라. 다음 철에 다시 들어가면 되지”라고 다독여줬던 은사 스님. 은사 스님은 혜산 스님에게 아버지이자 스승이자 승려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버팀목이다.
속세에 두고 온 자식들과 부인은 이민을 가서 스님의 공부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을 이야기하는 혜산 스님의 목소리에는 굵은 물방울이 뚝뚝 묻어난다.
“가정을 돌보지 못하고 아이들로 하여금 아버지 없는 성장기를 보내게 한 것, 그것은 제가 이 공부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평생 지울 수 없는 업보죠. 그것을 지운다면 깨달음 이전에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거죠.”
그가 산문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마지막 이유는 바로 그 인연조차 끊고 온, 금강석까지도 자르겠다고 결심했던 초발심이 아닐까.
“처음 봤을 때 기절할 정도였는데... 어차피 그 길로 걸었으면 큰 스님이 되어야지. 나도 뒤에서 같이 해줘야 되겠다.” -다문스님의 어머니-
시골 살림에 외동딸을 대학까지 공부시켰던 어머니. 편지 한 장 남기고 가출했던 딸은 스님이 되어 돌아왔다. 어머니는 일 년 동안 찾아와 집에 가자며 애원했다. 어머니를 그토록 애태웠던 딸은 스님과 신도의 인연으로 다시 만났다. 부모와의 인연을 끊는다는 것이 스님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1000일 동안 바깥외출 없이 경주 감산사 경내에서 기도중인 다문스님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가?
“내가 부처님공부를 잘 지어가서 이생에서 불도를 깨닫는다면 그 후에 부모님까지, 그리고 제 주변에 손길이 닿는 모든 인연 제도할 수 있다면 더없이 부처님 은혜를 보답하는 길이죠.”
어려운 살림에도 외동딸 대학 뒷바라지를 하던 어머니는 여전히 딸의 뒷바라지를 한다. 절에 찬거리를 대는 것이다. 뒷마당에 웅덩이를 파서 무를 저장해놓고 스님의 공양물로 올라갈 때까지 정성스레 간수한다. 그리고 오늘도 새벽예불에 나가 “우리딸 큰스님 되게 해주이소”라고 기도한다.
행자교육원에서 행자 대표로 서원문을 읽었던 홍법 스님은 출가 10년 만에 사제를 만났다. 10년 전의 자신처럼, 같은 길을 걷게 될 행자가 애틋하다. 행자 머리를 깎아주고 바랑을 직접 싸주면서 행자교육원에 보내기까지….
“잊고 살았어요. 행자 때의 설렘과 기대를…. 행자님의 모습을 보고 설레던 마음, 기대했던 마음을 다시 새기게 되더라고요.”
행자를 만나면서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설렘과 초발심을 떠올리는 홍법 스님의 눈가에 어린 세월은 파동처럼 시청자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불교에서는 초발심시변정각, 즉 처음 먹은 마음으로 정각을 이루었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마음먹자마자 불도를 이루었다는 뜻이 아니다. 출가할 때의 그 치열하고 뜨거운 마음을 잘 닦아 불도를 이루는 데까지 이어갔다는 의미다.
‘출가, 그 후 10년’은 그 초발심을 잘 갈마하고 있는 행자들의 뒷이야기인 동시에, 지쳐 쓰러져 그냥 포기해버리고 싶은 수많은 이들에게 그 첫마음을 일깨워주는 깊은 위로였다.
1600년간 한국에서 단 하루도 불법이 꺼지지 않은 채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그 원동력은 행자교육원에 모여든 이들의 초발심에 있었다.
스님은 행자를 직지사로 보내며 “행자 때의 그 마음의 열심히 정진해야겠구나”라는 다짐을 한다. 홍법 스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일이 있다면 스님이 된 것입니다”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