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태전은 장흥에서 만들어 오던 수제차를 일컫는 말로 목포대 국제차문화연구소 정서경 교수가 이에 관한 글을 보내왔습니다.<편집자 주>
중학생 때 본, 34년 묵은 청태전을 지켜낸 문병길
정서경(목포대학교 국제 차문화연구소)
1925년, 나까오(中尾萬三, 1882-1936)가 장흥(관산면 죽천리)에서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에 나오는 당나라의 단차(團茶)와 같은 차를 보고서 놀라 소개한 이래 1937년, 이나바(稻葉岩吉, 1876-1940)는 장흥 유치면 보림사 쪽에 와서 이 차를 「청태전(靑苔錢)」이라 부른다는 이름까지 알려주면서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전차(錢茶)니 돈차니 떡차(餠茶)니 하는 차에 관심이 쏠리(증폭되)고 있다.
얼어붙은 눈길에 안절부절 한 12월 7일, 문병길계장(50, 장흥군 환경산림과)과 함께 보림사를 찾았다. 절 코앞 마을은 최근에 정비 차 철거되어 한집만이 남아 황폐화된 자리엔 휑한 바람만 지나고 있었다. 황량해진 절집 주변은 청태전을 만들던 곳임을 무색케 한다. 절 마당, 이 절을 창건(858경)한 보조국사 창성탑․비 앞쪽에서 들려주는 놀라운 얘기-할머니가 만든 34년 된 청태전을 지녀왔다는! 사실!이 경이로울 뿐이다.
1972년 중학교 1학년인 손자 문병길은 이렇게 회고한다.
바로 이 절 들목마을서 나고 절마당에서 놀며 자란 문계장이 중학교 1학년 때(1972)인 5월 어느 날 아침, 일군의 신사분들이 차를 몰아 할머니(金鳳金, 당시 65세, 1908-1983)를 찾아왔 다. 무슨 까닭이었는지 할머니는 학교도 빼먹게 하고 교복차림인체 장흥읍 바로 위쪽인 부산면 관한마을로 차를 타고 함께 데려갔다.
“그때 할머니랑 갈 때 나는 중학교 1학년(1972)땐디 부산면 금자리 관한마을로 나를 데꼬 갔제. 내가 보기는 관한마을에서 만들기를 복원한거 같어 인자 수업을 빠지고, 그래서 뭐냐고 물었더니 기냥(그냥) 따라 오니라 해서 나는 뭣도 모르고 찬찬히 기냥 보고만 있었제 교복 입고 그때(1972년)는”
거기서 다른 할머니 몇 분과함께 청태전을 만들게 하였고 중학생 손자 문병길도 학교까지 빠지게해 데리고 간 할머니의 선견지명으로 그 역사의 현장을 문계장은 그대로 눈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절 앞을 지나 5분거리의 구석(九石․龜石)마을 입구, 맑은 개울 건너에 청색지붕의 집이 바로 김봉금 할머니댁이다. 17살(1924년. 혼인신고는 1929년)에 대산리(그래서 마을에서는 대산댁이라고 부름)에서 구석리로 시집와 6. 25로 10리 거리인 바깥 늑룡(勒龍)마을로 나갈 때까지 산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청태전 하나를 장손에게 내 놓으시며 유언으로~
그리고 세월이 흘러 중학생은 24살이 된 1983년 5월 10일 아침, 와병 중인 할머니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며 「청태전이라는 떡차」 1개를 손자에게 꼬옥 쥐어주면서, 열일곱살에 시집와 보림사에서 절일을하며 이 차를 만들어 왔는데 이것은, 너 중학교, 그 때 사람들이 와 관한마을에서 만든 것이니 잘 보관하고 있다가 찾는 사람이 있으면 묻지도 말고 주어라며 넘겨주었다.
중학교 앨범 속에서 다시 태어난 청태전
다시 22년이나 세월이 흐른 2005. 5. 31 광주의 혜명다례원(정병만)에서 관한마을에 청태전을 복원하러 왔다. 문계장은 마침 부산면사무소에 근무(1983-1984)한 적이 있어 부군수가 그 마을에서 그들 점심 먹을 때를 알아 봐주라 하여 갔다가 청태전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이런 차 우리 할머니가 만든 게 있다하니 보고싶다 하였다.
“아 그 차 우리집가 있는디 그러니까 나 그때 처음으로 정병만씨를 본건데 청태전이 있다고 한게 갖고와 보라 이것이여 그래놓고 그것을 찾아보니까 광주집에가 있는지 장흥까 있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그래갖고 아 생각해 본께 내가 중학생이였어! 잉 중학교 앨범 요새 말하믄 화장지여! 화장지에 똘똘똘 감어가꼬 사진속에다 이렇게 끼여놨드만 그래서 그것을 갖고 간께 부군수님과 정병만씨가 ㅡ아 이것이 바로 일본 시즈오카현 오차노사토(お茶の鄕) 박물관에 있는 조선의 차하고 똑같다ㅡ 그거여 그람서 ㅡ나를 주면 안되것냐ㅡ고 그래서 글 안해도 할머니가 ㅡ이것을 누가 찾인사람 있으면 이놈을 줘불어라ㅡ 그랬는디 ㅡ진짜 줘도 되겄냐ㅡ고 그래서 기냥 드려불었제 그렇게 된것이여 그거이~”
집에 와 기억을 떠 올려가며 뒤져서 중학교 졸업앨범 속에 싸둔 청태전을 찾아내 보여주어 마침내 34년 만에 할머니의 청태전이 햇빛을 보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도, 앨범 속에 넣어두는 것이 가장 오래 가고, 기억나기 쉽고 또, 찾기 쉽다고 자연스레 여겨져 보관한 결정이 놀랍기만 하다.
이리하여, 오늘날 가장 오랜 청태전 실물이자 곧 장흥지역에다 또, 1937년에 이나바(稻葉岩吉)가 와 들은 「청태전(靑苔錢)」이라 부른 보림사의 전통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바로, 김봉금할머니가 만든 청태전이었다. 이것이 중학생 손자를 거쳐 앨범 속에서 고이 잠자며 무려 34년간이나 고스란히 그대로 지켜져 왔던 것이다.
이 청태전은 자리를 옮겨 혜명다례원에 고이 보관되어오고 있다.
12. 24. 크리스마스 이브날 다시 장흥을 찾았다.
그리고 손자 문계장과 할머니묘를 찾았다.
유치공설공원묘지. 손자는 감회에 젖어 차 한잔을 올리고 절을 올렸다.
흐리고 푹한(잔잔한) 12.. 24.. 크리스마스 이브에 다시 장흥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손자 문계장과 할머니묘를 찾았다. 유치공설공원묘지. 장손자는 여러 감회에 젖어 손수 써와 읽을 축문과 함께 청태전차 한잔을 올리고 절을 드렸다.
김봉금(金鳳金, 1908. 6. 24. 출생이나 호적에는 1912년)할머니는 17살(1924년)에 보림사 바로 윗마을인 구석마을에, 문익점 21대 종부로 시집 와 청태전을 만들었고, 특히나 절보살로 일하면서 보림사에서도 같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오차노사토(お茶の鄕) 박물관에 소장된 조선떡차의 유물과의 비교에서도 청태전의 전통을 가장 잘 지켜왔음이 알려지고 있다. 할머니는 1983. 5. 17(손자의 증언, 묘지석 뒤에는 1912. 6. 24생, 1983. 4. 5.졸(음력으로 확인)이라 되어있다)에 76세의 일기로 돌아가셨다.
한편, 그때의 그 신사들은 바로, 남도 차문화 연구의 대부이자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초대관장이었던 최계원(우리茶의 再照明 著) 관장 일행이었다. 청태전을 복원하러 와, 청태전을 만들었던 할머니들을 수소문했고 이에 늑룡마을의 할머니를 모시고 관한마을에 가서 청태전을 만들었던 것이다.
청태전과 거리가 먼 관한마을에서 만들게 된 까닭에 대해서도 문계장은, 최계원 관장이 부산(九龍里=자미마을)이 고향이어서 작업하기가 여러 가지로 편리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문병길계장은 이렇듯 할머니의 숨결이 배인 청태전이 제대로, 복원되고 알려지며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며 마셨으면 하는 바램이라 한다. 나아가, 올바른 청태전의 전통을 위하여 보림사를 비롯한 옛 차밭이 잘 보존되고 가꾸어져 관광산업화로 이어지길 희망한다는 것이다. 곧, 원래 청태전을 만들어 생활해 왔던 할머니들이 살았던 민가를 그대로 보존해, 장흥군 특성화사업으로서 청태전을 복원하는 보존마을로 지정하여 전통문화를 기리는 교육과 체험의 장으로 활용하면 좋을 거라는 속마음을 내 비치는 것이다.
할머니의 청태전이 빛을 발하는 역사적 현장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 손자와 함께 하면서 또, 청태전을 소중히 간직했던 앨범을 찾아 그 자리에 손을 놓아보면서 차를 한다는 한 사람으로서 만감이 교차한다.
34년 묵은 할머니의 청태전을 지켜온 손자 문병길계장은 할머니묘에 절하며 ‘할무니- 나 인자 할무니 유언 확실하게 지켰어 잉!’ 하는 말이 떨려오며 가슴에 부딪는다.
오늘날 가장 오랜 청태전 실물자료를 전하여, 청태전이라는 보림사쪽의 전통을 알린 김봉금할머니와 문병길손자의 소중한 인연을 밝히면서, 필자 또한 할머님전에 청태전차 한잔을 올렸다. 끝으로, 할머니를 애틋이 그리는 손자 문병길계장의 축문을 싣는다.
維歲次 戊子年 十一月壬申朔 무자년 (음) 11월
二十七日戊戌 顯孫秉吉 27일에 장손 문병길은
敢昭告于 삼가 아뢰옵니다
顯祖妣 孺人淸州金氏之墓 (청주김씨) 할머님
不勝感慕 維時保佑 사모치는 그리움, 천신께서 보우하사
靑苔錢 復元記念 拜禮 청태전을 복원하신 일 떠올리며 예를 올립니다
茶詩 朗誦 罷晴窓 惺牛睡 차시 낭송으로 심신이 개운하며
鳥啼發 一般春 謹以淸茶 삼가 맑은 차
恭伸 奠獻 尙 饗 공손히 올리나니 흠향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