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일주문 바로 앞에 있는 작고 아담한 집 수덕여관. 몇 년 전까지 맛있는 산채정식을 팔곤 했던 곳이다. 최근에는 수덕사가 이곳을 이응노기념관으로 개조하는 작업에 나섰다. 그곳은 약 40여년전 이응로의 부인이 외국으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며 여관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그리고 동백림사건에 연루돼 국내로 송환, 옥살이로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남편을 봉양한 곳이다. 지금도 그 앞마당에는 이응노가 문자추상을 새긴 바위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그 후 이응노는 한번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애증이 엇갈리는 한국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던, 혹은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지도 모를 일이다. 그와 함께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었던 윤이상이 그러했듯이.

하지만 이응노가 한글 서체를 변형시켜 표현한 문자추상은 지금까지도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으로 꼽히고 있다.

고암 이응노의 작고 20주기를 맞아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회가 두 군데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첫번째 전시는 가나아트의 <동행>전.

가나아트는 한국 추상미술사의 큰 획을 그는 남관과 이응노 2인전 ‘동행’을 4월 3일부터 5월 10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에서 개최한다.

이응노와 남관 두 작가는 한국 추상미술을 논하면서 빠지지 않는 인물들이다. 두 사람은 한국 추상미술사에 굵은 획을 그은 인물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두 작가를 함께 논하면서 나오는 기술들은 이들이 지니고 있는 화풍과 역사적 맥락의 해석보다 1973년 이응노의 동아일보 시론 기고를 계기로 펼쳐진 ‘창작과 모방’의 논쟁으로 더 많이 언급되고 있다.

당시 이응노는 3월 2일자 동아일보 문화면 시론에 ‘창작과 모방’을 발표, 남관을 겨냥해 논쟁을 벌였다. 이 시론은 사실상 자신이 남관보다 먼저 문자화 작업을 했다는 내비침이었다.

남관은 이 글이 발표된 후 한 달 뒤인 4월 14일자 동아일보 같은 면에 고암을 반박하는 글을 썼다. 이 글에서 남관은 문자를 화면 구성에 이용한 것은 세계2차대전 당시부터라고 꼬집었다. 또한 브라크, 폴 클레, 피카소, 그로츠, 슈비테르 등 많은 화가들이 글자를 이용해서 추상적인 작품을 제작했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남관과 이응노는 추상화의 두 라이벌이기 이전에, 1955년과 58년 3년이라는 간격을 두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지기(知己)로 알려져 있다. 먼저 유학을 떠난 남관의 유학자금을 위해 이응노가 한국전쟁 이후 빈곤한 생활 속에서 남관을 작품을 중개했던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남관의 드로잉과 이응노의 소품 및 대작들이 함께 소개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 총 110여점이 소개될 예정이다.

그들의 독특한 세계와 서로에 미친 영향, 모방과 창작의 경계를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하나의 전시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주최하는 <’72, 고암, 베니스>전.

한미문화예술재단은 3월 16일부터 6월 6일까지 재단 산하 한미사진미술관에서 <한미문화예술재단 소장품전 - ’72, 고암, 베니스>전을 개최한다.

한미사진미술관이 공개하는 작품들은 베니스 쾨리니 스탐팔리아 재단의 초청으로 1972년도에 이루어졌던 전시에 출품되었던 작품들 중 일부이다.

한미문화예술재단은 지난 2008년과 올 2009년도 두 차례에 걸쳐 이탈리아 베니스에 남아있던 고암의 작품들을 들여와 소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당시 작품 24점과 전시 진행과정을 알 수 있는 스탐팔리아 재단 소장의 문서들도 함께 소개된다.

베니스 전시 작품들은 고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문자추상의 초기시기에 해당되는 작품들이며, 특히 문자 형상이 새겨진 돌조각 5점은 국내에서는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