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년을 처음 만난 곳은 지난해 1월 뭄바이 버스정류장이었다. 우다이뿌르행 기차표가 하나도 없어, 야간버스를 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자정 가까이 되는 시간에 어둡고 두렵기까지 한 거리를 가로질러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그때 나에게 다가온 소년은 ‘원 루피’를 외치며 손을 내밀었다. 그를 외면하자, 소년은 내 배낭에 반쯤 걸쳐있는 바나나를 가리켰다. 하지만 나는 그마저 외면하고 말았다.

그때까지 나는 인도 아이들에게 돈 한 푼, 빵 한 조각 건네지 않았다. 인도로 떠나기 직전 지인들이 나에게 말했다.

“인도에 가면 절대로 아이들에게 돈을 주지 마라. 요즘 사르나트나 보드가야 주변에 왜 팔이 한쪽 없거나 다리가 없는 걸인 아이가 많은 줄 아느냐. 한국 순례객들이 돈을 자꾸 주니까, 특히 팔다리가 없는 아이들에게 더 많이 주니까 부모나 포주들이 아이들 팔다리를 잘라서 그런 거다.”

이런 사전 교육을 철저히 받은 터라 절대로 그 아이들에게 1루피조차 줄 수가 없었다. 내 돈은 그 아이들에게 돈이 아니라 독이라고 생각했기에.

바나나를 주지 않고 급하게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앞에 여전히 서있는 그 소년은 신발이 보이질 않았다. 발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의 바지를 잘라 입었는지 너덜너덜한 밑단은 발을 뒤덮을 정도로 길었고, 눈 옆에 생긴 상처에는 피가 흐르다말고 눌러 붙어 있었다. 소년의 뒤편에는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어린 동생을 업은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차 안에서 줄곧 그 소년이 생각이 났다. 가슴에 피멍 같은 것이 계속 남아있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바나나 한 개 줄 수 없을 정도로 각박한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목 줄기너머로 물기운이 느껴졌다. 지금도 그 소년을 생각하면 그 멍이 다시 저려오는 것만 같다.

최근 그 소년을 다시 만났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다. 소년은 1년전 나를 바라보던 바로 그 눈빛으로 인도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기차 안에서 1루피 짜리 콩을 팔다가 무단횡차를 했다고 승무원에게 걸려 쫓겨나고, 타지마할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을 소개하겠다며, 야한 사진이 있다며(겨우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여자들의 사진이었음) 호객행위를 하고, 싸고 맛있는 한국음식이 있다고, 크고 깨끗한 방이 있다고 여행자들을 꼬시던 소년들.

혹자는 영화가 인도를 지나치게 어둡게 그렸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인도를 가보지 않았거나, 혹은 운 좋게도 아주 훌륭한 가이드를 만나서 인도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면만을 보았거나.

뭄바이 역에서 100m만 걸어가 보아도, 슬럼독 밀러어네어의 장면들은 아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인간과 짐승의 오물이 뒤범벅이 되어서 코를 막지 않고서는 걸어다닐 수 없는 거리, 초등학교 1, 2학년쯤 되는 아이들이 파는 짜이, 골목마다 쏟아지는 걸인들, 눈을 희번떡거리며 외국인 관광객들의 배낭을 노려보는 청년들, 그리고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구정물에서 산더미 같은 빨래를 하는 여인들. 시타르 연주가 이루어지는 공연장에서는 노래를 잘 부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릴 때 성기를 잘린 남자들이 나왔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야릇한 목소리로 그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그들에게 노래는 예술도 돈을 버는 수단도 아니었다. 하늘에서 내린 천역(天役)이었다.

다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슬럼독 밀러어네어는 제목 그대로 슬럼에 사는 개 같은 인생이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된다는 이야기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나온 채 텔레마케터들의 차 심부름을 하는 열여덟 살의 짜이왈러 자말. 그는 우연한 기회에 퀴즈쇼에 출연했고, 무려 2000만 루피(우리 돈으로 5억 정도)라는 상금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5억이면 우리나라에서는 강남의 아파트 한 채도 못살 적은 돈이지만, 인구의 90% 이상이 1달러 이하로 하루를 해결하는 인도인들로서는 수십 생을 걸쳐도 만질 수 없을 만큼 큰돈이다.

하지만 차배달꾼이 혼자 힘으로 모든 문제를 풀었다고 믿을 수 없었던 쇼 진행자와 경찰은 그를 속임수를 쓴 사기죄로 끌고 가 배후가 누구냐고 문초를 하기 시작했다.

자말은 속임수가 아니라 퀴즈들을 맞출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인생 역정을 하나하나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영화의 스토리는 그가 첫 번째 문제인 아미타브 밧찬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똥통에 빠지던 순간부터 마지막 문제인 삼총사의 세 번째 총사가 누구인지를 풀기까지, 그리고 그가 퀴즈쇼에 출연한 진짜 이유를 풀어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퀴즈쇼의 모든 정답은 그의 삶이 알려주었다. 단 한 문제만을 제외하고. 마지막 한 문제는 삶이 그에게 수고했다고 건네준 덤이 아니었을까.

그 가운데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은 3단계의 문제, 라마신이 오른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라마신의 오른손에 들려진 물건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어머니가 이슬람교도들의 몽둥이에 맞아죽던 날, 형 살림과 함께 도망친 힌두 사원. 라마신으로 분장한 아이의 손에 들려있던 활과 화살을 어찌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있으랴.

“그 문제의 답을 몰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라마와 알라를 몰랐더라면 어머니가 살아 계실테니까.”

그 말을 던지고, 자말은 울음을 터트린다.

집 없는 어린아이들을 모아 아동학대를 시키고, 가장 노래를 잘하는 아이의 눈에 기름을 부어 봉사를 만들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죽고 죽이는 영화 속 이야기는 결코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1년 전 인도에서의 한 달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너무도 고통스러웠던 땅, 그곳에서 나에게 가장 많이 던져졌던 질문은 “왜 인도에 왔냐”는 것이었다.

따뜻하고 행복한 신의 도시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내 번뇌를 풀 수 있는 영혼의 도시도 없었다. 인도여행기에 나오는 순수한 미소를 아무 이유 없이 던지는 이들은 없었다. 인도에 가면 누구나 붓다가 된다는 말은 순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곳이 부처님의 고향이라는 것이었다. 세상 그 어느 곳이 인도보다 더 모순되고 극적이고 고통스러울 수 있을까. 출가의지를 일으키는데 이곳보다 더 적합한 땅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자들이 살고 있는 곳, 최근 테러가 일어난 뭄바이 타지마할 호텔은 하룻밤에 50만원이 넘는 곳이지만, 거기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하룻밤에 몇백원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몇백원조차 없는 이들은 건물 처마 밑에서 하룻밤을 청했다.

인도에는 하룻밤에 수십만원 하는 고급호텔도 있고, 일이천원짜리 싸구려여인숙도 있지만 그 중간쯤에 해당되는 깨끗한 모텔은 없다. 그것이 인도의 단면이다.

붓다는 아들이 태어나던 날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카필라성을 나서게 된 동기를 후대의 불교 문학가들은 나흘간 문밖에서 일어난 이야기(사문유관)로 표현했다. 대니 보일 감독은 자말의 성장과정을 퀴즈쇼의 문제 하나하나로 표현했다. 그 둘은 2500년을 넘나드는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내용에서는 그리 다를 것이 없다.

돈, 권력, 여자, 가난, 죽음, 그리고 신을 둘러싼 갈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고뇌와 번민이다. 그리고 그 모순들이 극대화된 지점이 바로 인도다.

인도에 처음 갔을 때 스스로에게 물었던 “왜 하필 인도에 왔을까” 질문은, 시간이 흐르면서 “왜 붓다는 인도에서 태어났을까”로 바뀌었다.

싯다르타 태자가 자신의 성도지로 인도를 선택한 것은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만든 대니 보일 감독이 인도를 선택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때 아이에게 바나나를 줘야 했을까, 끝내 주지 말아야 했을까. 바나나를 줘도 미안했고, 주지 않아도 미안할 꺼였다면 차라리 주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