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당선은 동남풍을 기다리다가 늦은 오후가 되어 떴다. 항로의 길잡이인 해사와 점치는 복인은 첫 번째 배, 대사와 통사, 녹사는 두 번째 배, 지장 일행은 세 번째 배에 뱃사람들과 함께 승선했다. 궁사와 종자들은 부사와 판관 등의 지시를 받아 앞뒤 배에 나누어 탔다. 대사의 배려로 지장은 시종과 선청도 데리고 탈 수 있었다. 깊은 바다로 나아가자 크고 검은 물고기들이 배를 따라왔다.

지장은 뱃머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선청도 지장 옆에 앉았다. 시종은 뱃사람이 하는 일을 거들어주었다. 포구에서는 배가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굿을 하고 있었다. 지장은 파도에 밀려 배가 휘청거려도 가부좌를 풀지 않았다. 그러나 파도는 갈수록 거세어졌다. 깊은 바다로 들어서자 뱃머리에 붙인 쇠붙이와 나무판이 떨어져 나갔다. 뱃사람이 갈고리로 건져 올리려 했지만 쇠붙이와 나뭇조각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날다가 지친 갈매기는 지장의 어깨에 앉아 쉬었다. 갈매기가 앉을 때마다 선청이 컹컹 짖으며 쫓아버렸다. 그래도 갈매기들은 몇 번이나 서쪽으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와 뱃머리에 앉곤 했다. 시종은 뱃사람들에게 자꾸 말을 걸었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겁니까?”

“발해로 가고 있습니다요. 그러다 배가 북동풍이나 북풍을 받으면 뱃머리가 등주 해안 쪽으로 돌려질 겁니다요.”

뱃길을 모르는 시종은 불안하기만 했다. 배가 표류할까봐 안절부절 왔다 갔다 했다. 지장은 선정에 들어 갈매기가 어깨에 내려앉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느새 배들은 포구를 떠난 순서대로 항해하지 않고 점점 간격이 벌어졌다.

이윽고 하늘과 바다가 캄캄해졌다. 견당선들은 바다에서 첫 밤을 맞이했다. 배들은 불빛으로 서로 연락을 취했다. 배들이 보내는 불빛들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곤 했다. 10여 척의 배들은 반 마장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항해했다.

뱃사람이 말한 대로 배가 북쪽으로 올라가자 북풍이 매서웠다. 파도가 갑자기 커지고 바람은 방향을 바꾸어 북동풍이 되어 거칠게 불었다. 그러자 뱃사람이 돛을 내려버렸다. 돛을 내린 배는 물길을 따라 이번에는 남쪽으로 나아갔다. 사방이 칠흑처럼 어두워 배가 가는 방향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날이 흐려져 방향을 잡아주는 별도 보이지 않았다. 앞뒤로 연락하며 항해하던 배들의 불빛도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뱃사람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서로 연락을 취하던 불빛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해사가 탄 배의 불빛을 놓쳐버린 것은 큰일이었다.

지장은 뱃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관음경』을 염불했다. 바닷물이 뱃전으로 넘어와 지장의 가사를 적셨다. 그러나 지장은 좌선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꿈쩍 않고 날이 샐 때까지 독경을 계속했다. 날이 새자 바람이 약해지고 파도는 다시 잠잠해졌다. 그러나 당은포에서 함께 떠났던 견당선은 보이지 않았다. 뱃사람이 지장에게 말했다.

“스님, 여기 다른 배들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바다 위에서 기다리겠다는 것입니까?”

“바람이 없으니 배는 맴돌 뿐 나아가지 않습니다.”

“이곳이 어디입니까?”“알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등주登州로 가는 뱃길을 놓친 것 같습니다.”

뱃사람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들이 탄 배는 등주 해로를 벗어나 서남쪽으로 멀리 내려가 있었다. 해로를 벗어나 표류하고 있었다. 그러니 견당선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나절을 기다린 후에 지장이 탄 배는 다시 북동풍을 받아 서남쪽을 내려갔다. 바람이 불면 돛을 올리고 바람이 멎으면 돛을 내려두고 뱃길을 찾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사흘이 지나자 바닷물이 희뿌연 녹색으로 변했다. 수심이 깊지 않다는 증거였다. 뱃사람이 소리쳤다.

“백수白水를 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청이 바다를 향해 짖었다. 바다위에는 대나무와 통나무가 엉키어 떠다니고 있었다. 가까운 뭍에서 흘러온 부유물이었다. 오후가 되자 다시 바람이 동남풍으로 바뀌어 돛을 서쪽으로 향하게 했다.

마침내 돛대를 타고 올라가 사정을 살피던 뱃사람이 소리쳤다.

“바닷물이 누런 황토색으로 바뀌어 흐르고 있소.”

뱃사람들이 지장에게 말했다.

“스님, 천만다행입니다. 뭍을 찾았습니다. 물이 황토색인 것은 양주의 대강이 가까워진 것입니다.”

시종도 돛대에 올라가 살펴보고 내려와 지장에게 말했다.

“황토물 자락이 서북쪽에서 흘러 곧장 남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배는 양주의 굴항掘港을 지나고 있었다. 물빛이 다시 황토색에서 희뿌연 녹색으로 변했다. 굴항이란 수나라의 양제가 수십만 명의 백성들을 동원해서 땅을 파고 건설한 운하를 말했다. 그러니 수심이 바다보다 얕을 수밖에 없었고, 자칫 잘못하면 배가 좌초하기 십상이었다. 뱃사람들은 예전의 경험이 있어 몹시 두려워했다. 물빛이 하얗게 바뀌면 쇠붙이를 단 끈을 물속에 넣어보고는 아예 나아가기를 주저했다.

“이곳은 다섯 자밖에 안 되니 암초가 있으면 배 밑이 상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기다렸다가 밀물이 들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밀물이 들기도 전에 동남풍이 세차게 불면서 배가 갑자기 쿵 하는 소리를 냈다. 암초에 배 밑이 세차게 부딪히면서 그 반동으로 긴 돛대가 부러져 나갔다. 뱃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나동그라지더니 물속으로 빠졌다. 시종도 두어 번 뒹굴었다. 배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배 밑이 깨져 물이 솟구치고 있었다. 시종이 떨면서 지장에게 하소연했다.

“스님, 이대로 죽을 수는 없습니다.”

“두려워할 것 없다.”

다행히 배는 더 이상 가라앉지 않았다. 차오르던 물도 기울어진 뱃전으로 빠져나갔다. 지장은 그제야 자신의 바지가 붉은 피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장의 다리 정강이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배가 좌초하는 순간 난간에 부딪혀 정강이의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정오가 되어서야 곡식을 실어 나르는 창선倉船이 다가왔다. 창선에 타고 있던 당나라 관인이 좌초된 배에 올라와 조사를 했다. 그는 신라에서 온 견당선임을 알고는 고자세를 풀었다. 당나라 말을 할 줄 아는 뱃사람이 견당사의 다른 배를 물었지만 그는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신라의 견당사 일행이옵니다. 도중에 뱃길이 갈리어 이렇게 표류하고 있사옵니다. 신라국의 대사와 부사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견당사는 이곳으로 오지 않았소, 소식을 듣지 못했소.”

뱃사람이 눈물을 흘렸다. 물에 빠진 뱃사람은 끝내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상처를 크게 입은 지장이 먼저 창선으로 옮겨 탔다. 지장의 바랑까지 멘 시종이 선청을 데리고 바로 뒤따라 올랐다 그러자 창선의 관인이 옮겨 타려고 하는 남은 뱃사람을 제지했다.

“너희들은 뒤에 오는 배를 타라. 저기 배 한척이 오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그들이 가리키는 배는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멀리 지나치고 있었다. 지장은 창선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경계했다. 시종에게 눈치를 주며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더구나 선실 안에서는 신음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지장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속았다.

창선을 훔친 해적들이 대강 입구에서 노략질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해적을 우두머리는 관인을 선실 안에 묶어놓고 관인의 옷으로 변복하고 있었다. 지장은 시종에게 당부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선실에 누군가가 묶여 있구나.”

시종이 관인에게 항의하듯 물었다.“어디로 가고 있는 겁니까?”

그러나 해적의 우두머리는 시종의 얘기를 알아듣지 못했다. 창선은 포구를 향해 가지 않고 민가가 없는 해안에 정박할 모양이었다. 배는 해안을 찾고 있었다. 지장이 다시 시종에게 말했다.

“침착해야 한다. 절대로 먼저 공격하지 말거라.”

“네, 스님.”

배가 절벽이 있는 해안가에 도달하자 해적의 우두머리가 갑자기 칼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돛을 잡고 있던 해적도 칼을 빼어들고 달려들었다. 선실에서도 두 명의 해적이 나왔다. 험상궂게 생긴 해적들이 지장과 시종을 에워쌌다.

배가 해안에 닿자 시종의 목에 칼을 들이밀면서 하선하라고 윽박질렀다. 시종은 선선히 배에서 내렸다. 지장도 뒤따르면서 주위를 살폈다. 해적들은 지장과 시종의 바랑을 탐내고 있었다. 해적의 우두머리가 칼끝으로 바랑을 풀라고 지시했다. 지장이 시종에게 말했다.

“바랑을 풀어도 죽일 것이고, 풀지 않아도 죽이려 덤벼들 것이다.”

“어찌합니까?”

“저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순간을 놓치지 말거라.”

지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시종이 해적 우두머리의 칼을 빼앗아 공격했다. 순식간에 해적의 우두머리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나머지 해적은 지장이 다리를 쓰지 않고서도 맨손으로 단번에 기절을 시켰다. 선실에 묶여 있던 두 명의 관인을 풀어주자, 은혜를 갚겠다고 몇 번이나 합장을 했다.

관인은 해적들을 끈으로 묶어 선실에 넣고 문을 잠가 버렸다. 마침 한 명의 관인이 신라 말을 서툴게 했다. 지장은 좀 전에 배가 좌초된 곳을 알려주고는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관인은 흔쾌히 지장의 청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좌초된 배는 흔적조차 없었다. 남은 뱃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지장은 눈을 감고 『지장경』을 염불해주었다. 염불하는 지장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시종은 큰 소리를 내어 울었다. 당은포를 떠나 며칠간 바다에서 표류하면서 생사고락을 함께 한 뱃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비통한 마음이 더했던 것이다.

창선은 곧 해안에 닿았고, 관인이 지장을 안내해준 곳은 도단선사道斷禪寺라는 허름한 절이었다.

“이곳에서 푹 쉬십시오. 제가 절도사를 찾아가 건의하여 장안으로 가는 통행증을 받아오겠습니다.”

“고맙소.”

“인사가 늦었습니다. 제 이름은 강신姜信이옵고, 현가顯家의 압관押官으로 있사옵니다.”

현가는 현청의 다른 이름이었고, 압관이란 검찰의 일을 맡은 관리를 말했다. 다음날 강신은 자색의 조복朝服을 입고 순검을 나왔다가 지장을 찾아 문안을 올렸다.

“화상이시여, 불편한 점은 없사옵니까? 주지스님께 잘 보살펴 드리라고 특별히 부탁했습니다. 어제는 염관鹽官이 염세鹽稅를 징수하는데 불법이 있다 하여 감찰하러 창선을 얻어 타고 가다 봉변을 당했습니다. 화상이 아니었다면 저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을 것이오니 화상은 저의 은인이옵니다.”

지장은 선사에 머무르면서 당나라 말도 배우고, 주州의 자사刺史와 친교를 맺었다. 어떤 날은 자사의 사택에 초대되어 공차空茶를 마시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데 선사禪寺의 생활이 편안한 것만은 아니었다. 몇 달이 지나서 사미승 시종이 풍토병에 걸려 먹은 것을 자꾸 토하고 고령에 시달리다 숨을 거둔 것이었다. 지장은 시종을 화장한 후 법당에서 재를 지내며 눈물을 흘렸다. 구도의 길을 시작도 끝도 없이 가라며 시종이란 법명을 지어주었는데 그는 법명과 같이 살다가 가버린 것이었다.

지장은 시종의 뼛가루를 대강으로 나가 뿌렸다. 그런 후 생각하는 바가 있어 선사로 돌아와 주지에게 글을 썼다.

-구법승 지장의 제자 시종이 극락왕생하도록 재를 주재해주시고, 지금까지 소승이 선사에 머무르도록 불은佛恩을 베푸시어 감읍할 따름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자 삼가 사금을 내놓아 수행하는 도반들의 공반空飯과 향적香積에 대신코자 합니다.

그 무렵 중국 승가에서는 반찬이 없는 흰 밥을 공반, 수행자들의 식사를 향적이라고 불렀다. 지장은 시종이 죽은 후 선사에 더 머물 생각을 버렸다. 문득 도단선사와의 다해가는 인연을 선정 삼매의 눈으로 보았던 것이다. <계속>

글 정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