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원장 소임은 인적 없는 풀밭에 퍼질러 앉아 물결 없는 하늘 호수의 잉어 한 마리 찾다가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가는 흰나비나 바라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에 빠지면 큰 일 날 희고 빛나는 소금 한 점 지고 두 눈을 부릅뜨고 긴 외나무 다리 건너가는 걸음 걸음이 떨리는 발길이었습니다.”

청화 스님이 5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3월 24일 열린 퇴임식에서 남긴 작별인사이다. 조계종 교육원장의 소임을 살포시 내려놓고 시심(詩心)의 세계로 떠나겠다는 이의 모습은 ‘낙화(洛花)’의 한 구절을 연상케 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청화 스님 또한 자신의 모습이 낙화처럼 느껴졌는지, “지금 바깥에는 백목련이 아름답게 피어있는데, 나는 지는 꽃이 되어 이 자리에 섰다”고 퇴임사의 첫마디를 던졌다.

스님은 “앞문으로 들어왔다 뒷문으로 살며시 빠져나가 사람들에게 그리움을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본의 아니게 이렇게 성대한 자리에서 퇴임을 맞이하게 돼 송구스럽다”고 쑥쓰러움을 전했다. 스님은 이어 “교육원은 종단의 교육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전제 하에 제도적으로 체계화된 교육체계를 만들고 승가고시도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며 “이 정도라면 불교의 미래를 밝게 전망해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치사를 통해 “우리 삶 속에는 궁구는 것밖에 없다. 시간이 흐르는 것, 지구가 돌아가는 것, 우리의 마음이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 이 모든게 궁그는 것”이라며 “오늘로서 당신의 소임이 끝나는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종단과 우리 민족을 위해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을 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퇴임식에서는 청화 스님과 함께 종단개혁의 선봉에 섰던 지선 스님, 진관 스님, 그리고 스님과 더불어 하화중생의 길을 함께 걸어온 함세웅 신부, 김상근 목사가 청화 스님의 시집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에 실린 시를 낭송하며 그의 아름다운 회향을 축하했다.

청화 스님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젊은 시절에는 선방에서 머물다가 94년 종단 개혁 당시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을 맡아 개혁의 선봉장으로 나섰고, 종회부의장을 거쳐 교육원장 소임을 맡았다. 스님은 임기 5년을 다 채운 최초의 교육원장이기도 하다. 이처럼 화려한 이력 앞에 정치승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만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화 스님은 항상 학승, 수행승의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다.

2004년 4월부터 2009년 3월까지 스님이 교육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조계종 승가교육의 체계가 기초-기본-전문-재교육 체계로 정비되었고, 승가고시 기본체제가 마련됐으며, 조계종 표준 『금강경』이 편찬됐다. 또한 조계종의 역사와 불교정화운동, 봉암사 결사를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거쳐 관련 서적을 발간해 조계종의 역사가 재정립됐다.

이 모든 일들이 스님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니겠지만, 그 선봉에 청화 스님이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스님은 퇴임을 기념해 시단 데뷔 31년 만에 첫 시집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펴냈다. 197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등단했지만, 그후 30여년간 종단 일을 돌보면서 스님은 시집 한권 없는 승려시인으로 활동해왔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무얼 위해 살 것인가’에는 수행자 청화 스님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있다.

몸을 따라 가는 길에는/아침 연꽃이 멀어지고/ 노 젓는 사공 마음에는/ 달빛 언덕이 가까운 법/ 이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인생을 더 묻지 말라

하지만 부시와의 쇠고기 협상을 마치고 돌아온 이명박 대통령을 풍자한 시 ‘한국 대통령’에는 개혁승의 날카로운 칼날이 번득인다.

금년 4월은/ 뉘집 개구멍으로 온 것이냐/(중략) 미국 대통령의 별장에 간/ 한국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을 모시는 운전기사이더라/ 그것도 힛힛 웃으며// 현해탄에도 안 묻히는/ 무슨 죄라도 있는 것이냐/ 빳빳이 서 있는 일황 앞에/ 한국 대통령은 또/ 잘못이 있는 아이처럼 고개도 숙이더라

‘쥐구멍에 보이는 흰 고무신’은 현 정부와 기독교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할! 한번 제대로 못하는 조계종에 대한 탄식이다.

여우, 늑대, 하이에나 같은 것들,/ 풀덤불 넘어와 누비는 때/ 한 번 일어나 크게 포효할/ 한 마리 사자도 없는 조계산/ 산만 높아서 무엇합니까/ 하늘의 풀을 뜯은 구름 소 아니라/ 일찍이 발 아래의 젖은 땅을 보았다면/ 시청 앞 광장에서, 대구의 공원에서/ 우우우 불기둥 세우는 일은/ 아마도 아마도 없었을 것입니다

‘썩은 냄새’에서는 타락한 승가에 대한 자책과 분노가 터져나온다.

썩은 냄새가 난다/ 하얀 소금 같아야 할 그 무엇이/ 고깃덩어리처럼 푹푹 썩나보다/아 사람이 돈을 만나면/ 무엇이 되는가/ 바람 앞의 깃털쯤 되는가/(중략) 그러나 긴 긴 꼬리들/ 빛바랜 천막 속에 숨기고 있는 이는/ 시방 멀리 썩은 냄새가 난다

최근 용산참사 시국법회에서 노래한 ‘불이 보낸 사람’에서는 “그러나 불은 꺼질 것이고/어떤 불도 잡힐 것입니다/불이 보낸 사람을 생각하며/솟구치는 물 마시는 이 예 있으니/소용돌이치는 강물 마시는 이 예 있으니”라고 하여 산자와 죽은 자들을 위로했다.

이처럼 스님의 시 속에는 이사무애를 넘나드는 치열함과 고뇌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럼에도 스님은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교육원장으로서의 마지막 인사에서도 ‘미래가 있다’는 말을 남겼듯이, ‘무얼 위해 살 것인가’에서도 결국 종결점은 희망이다.

그러나 돌 같은 마음 / 구슬로 깎아 꿰어 가면/ 그 삶은 깨지지 않는/ 빛난 백옥이 한 상자/ 그러면 달려온 죽음인들 / 어찌 백마가 아니겠느냐 -‘무얼 위해 살 것인가’ 중에서

스님의 퇴임식은 교육원장으로서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동시에 시인 이청화의 새 이정표를 알리는 자리였다.

산문 안과 밖이 없어지고 금송아지도 미친소도 더 이상 찾지 않게 된 자리에서 우리 시대의 승려시인은 무엇을 노래할 것인가. 백일홍의 그늘 같은 고요가 있는 곳, 서천(西天)의 달을 보며 돌과 솔방울과 친구하는 곳, 그리고 기왓조각 깨진 집마저 잃고 지하도에서 잠시 눈을 붙인 이들이 머무는 그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