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은포에 도착한 지장은 바로 당나라로 떠나지 못했다. 견당사의 도착은 무슨 일인지 하루 이틀 늦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시종 이 당나라와 밀무역을 하는 장삿배를 알아보았지만 그들은 터무니없는 뱃삯을 요구했다. 시종에게 50냥의 사금을 달라고 했다. 지장과 시종이 각각 20냥, 선청은 10냥을 내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실어다 준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지장은 견당사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포구에는 이미 노를 젓는 방인榜人, 즉 수수水手라는 직책의 뱃사람들이 어촌에서 차출되어 기다리고 있었다. 견당사 일행이 타고 갈 배도 10여 척이나 포구에 묶여 있었다.

조만간 배가 뜰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다만 서라벌에서 오는 산길에서 무슨 사고가 났는지 자꾸 늦어지고 있었다. 지장은 포구의 촌장이 마침 불자였으므로 따뜻한 잠자리와 잡곡밥을 대접받을 수 있었다. 더구나 촌장이 이번에 뜨는 견당선遣唐船의 뱃길을 정하고 뱃사람들을 감독하는 해사海師가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놓였다. 해사란 천민 뱃사람들을 거느리는 우두머리 뱃사공이었다.

“스님, 곧 견당사가 도착한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이번에 뜨는 배가 10여 척에 이르므로 반드시 승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견당사의 수장인 대사大使는 누구입니까?”

“아마도 대왕마마의 근족일 것입니다. 일전에 떠난 대사 박유는 6두품이었사오나 대부분의 대사는 왕제王弟나 왕의 종제從弟 등 진골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는 무엇이오?”

“그래야만 견당사가 위엄이 서고 당나라에 가서도 환영을 더 받습니다.”

해사 촌장은 당나라를 10여 차례 왕래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지장은 그에게 견당사의 규모를 들었다. 대사에서 수수와 종자까지 합하면 3,40명에 이르는 모양이었다. 해사는 지장에게 자세히 보고하듯 얘기했다.

“견당사의 우두머리인 대사, 그 밑의 부사, 부사 바로 밑에는 판관이 있습니다. 견당사의 규모가 클 때는 대판관과 소판관이 있고, 그 밑에는 기록과 문서를 관장하는 녹사錄事가 있고 녹사밑에는 통역을 담당하는 通事통사가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관인官人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인 밖의 사람들은 얼마나 됩니까?”

“칼과 활을 들고서 견당사를 경호하는 무장 군졸인 궁사弓士의 숫자는 일행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많습니다. 또한 날씨를 점치고 해신海神에게 제사 지내는 복인卜人이 있고, 배를 수리하는 선공船工과 배의 키를 잡는 타사柁師와 병을 치료하는 의사 등이 있습니다.”

“궁사가 많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직도 서해와 대강大江 입구에는 해적들이 성행하여 위험합니다. 그동안 해적들이 출몰할 때마다 바닷길이 막히어 행로를 바꾼 적이 여러 번이나 되었습니다. 해적에게 잡히면 당나라 변방에 노비로 팔려가거나 헛되이 죽게 되니 많은 궁사로 하여금 견당사를 호위케 하는 것입니다.”

해사의 얘기처럼 훈련받은 무장 군졸을 두지 않고서는 견당사가 무사히 왕래할 수 없었다. 당 황제에게 바치는 진귀한 조공품朝貢品과 황제가 하사한 회사품을 실은 견당선은 해적들의 공격 목표가 되곤 했던 것이다.

밤늦은 시각에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해사 촌장이 말했다.

“아마 선발대로 나선 무장 군졸들인 모양입니다. 바람이 바로 불어준다면 내일은 견당선이 뜰 것입니다. 그러니 스님께서도 채비를 서두르십시오.”

촌장은 급히 횃불을 만들어 포구로 나갔다. 잠시 후 백사장 쪽에서 날카롭게 부딪치는 금속성과 함께 군졸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말들이 진저리치는 소리도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군졸의 호위를 받는 큰 무리가 이동하는 소리임에 틀림없었다.

지장의 불안은 그대로 적중했다. 아침 일찍 실망한 얼굴로 해사가 찾아와 지장을 힘없이 불렀다.

“스님, 스님.”

해사는 지장이 방문을 열기도 전에 말했다. 그의 얼굴은 얼마나 낙심을 했는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스님, 큰일이옵니다.”

“들어와 천천히 말해보시오.”

“대사를 면담하여 말씀드렸사오나…….”

지장은 해사의 말끝을 잘랐다.

“무슨 이유로 거절하는 것입니까?”

“모르겠사옵니다. 노를 젓는 수수로 승선시키겠다고 건의해도 거절하시니 저로서는 난감하옵니다.”

지장은 눈을 지그시 감고 방법을 찾았다. 해답은 견당선의 우두머리인 대사를 만나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장이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자 해사가 조급해져서 다시 말했다.

“스님, 대사 중에는 치부를 좋아하는 자가 더러 있사옵니다만.”

“해사께서는 저더로 무엇을 내놓으라는 말씀이군요.”

지장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다만 좀전에 생각해낸 것을 해사에게 말했다.

“그건 어렵지 않사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해사가 방을 나간 뒤 시종이 말했다.

“정도를 지키지 않으면 수행자라 할 수 없다. 너도 마찬가지다. 설령 당나라에 가지 못한다 한들 삿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수행자의 길이 아니겠느냐?”

“지금 오라 하십니다. 스님.”

“소승 지장은 구법을 위해 바다를 건너려고 합니다. 대사께서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원컨대 수수라도 좋으니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제야 대사가 눈을 돌려 지장을 바로 보았다. 이제는 지장이 합창한 채 고개를 숙였다. 지장을 바라보는 대사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해사가 덩달아 놀라 물었다.

“마마, 대궁에 계셨던 마마가 아니시옵니까? 무례함을 용서하소서.”

그래도 대사는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대사가 뜻밖에 그런 행동을 하자 해사도 놀라 땅에 엎드렸다.

지장이 간곡하게 말하자 그제야 대사가 일어났다.

“부탁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저의 신분을 말하지 말아주십시오.”

“마마, 그리 하겠사옵니다.” <계속>

글 정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