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기복에 매달릴 텐가?”

박노자 교수가 한국불교에 던진 물음이다. 이 물음에는 안타까움과 짜증이 동시에 배어 있다. 박 교수는 시사주간지 <한겨레 21>의 최신호에 기고한 [박노자의 거꾸로 본 고대사]라는 제목의 글에서 말한다. 물론 한국불교의 기복의 일면을 인정할 수 있다고. 그러나 고대의 신이 신앙과 다를 게 없는 기복행위에 (오늘날까지) 반성 없이 매달리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박노자 교수가 기고한 글의 일부를 읽어보자.

“고통의 기원과 고통을 지양해 안락의 열반 세계와 하나가 될 수 있는 자비와 선행, 자리이타의 길을 보여줘야 할 공포 극복의 위대한 교리인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과연 오늘날에 와서도 각종 ‘대입 기도’에 의존하고 ‘영험’에 대한 이야기로 보살님들의 마음을 잡는 등 ‘공포를 잠깐 잠재우는 진통제’의 역할만을 계속해야 하는가. 개인적으로 공포의 기원 중 하나인 탐욕을 극복하고, 사회적으로 탐욕과 공포를 부추기는 자본주의를 극복해 경쟁이 아닌 상생의 사회를 건설하게끔 도움을 줘야 할, 원리원칙상 초자연적 요소를 꼭 필요로 하지 않는 가르침이 불교가 아닌가.”

이어 박 교수는 “공포심이란 인간의 영원한 한계지만, 불교 등 한국 종교가 이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대중의 공포 심리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석가모니와 예수에 대한 모독이자 배신”이라고 꼬집는다.

박 교수는 이 글에서 기적행위가 고승의 자격 요건이던 시대의 대표적인 신이(神異) 행적들의 사례를 삼국유사의 기록을 통해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한다.

첫째, 토착 신격들과의 ‘소통’이다. 고유 신들의 존재가 당연시되는 풍토에서 승려들은 이 신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성직자로서의 자격을 입증해야 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원광(圓光·6~7세기)이 중국 유학을 갈 때 그 모습을 여우로 나타내곤 했던 삼기산(三岐山·경주 안강)의 산신에게 도움을 받고, 나중에 다시 태어날 때마다 그 신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을 한 이야기를 거론한다. 산신이 원광에게 귀의하고 윤회를 면하기 위해 그 도움을 청하는 것은 토착 종교보다 불교가 우위에 선 것을 의미하지만, 주술만 일삼아 토착 성직자들과 경쟁을 하려 했던 다른 승려를 삼기산의 산신이 죽였다는 이야기로 봐서는 토착 종교와 화합을 이루지 못하는 승려들의 말로는 어떨 때에 비참하기도 했다는 것이다.(<삼국유사>, 권4).

둘째는 ‘신통력 치료’에 의한 치료행위를 든다. 원래 귀신을 내쫓는 ‘치료’를 담당해온 이들은 토착 종교의 무의(巫醫)들인데, 승려들이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해 이 부문도 장악하려 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선덕여왕(재위 632~647)과 나중에 고구려 정벌에 큰 공로를 세울 김양도(金良圖·?~670) 장군에게 <약사경>을 읽어 병귀(病鬼)을 쫓아내 그 완쾌를 이루게 한 밀본(密本·7세기)은 이런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한 사례다.(<삼국사기>, 권5). 후대적 설화로 여겨지지만 이미 눌지왕(재위 417~458) 때 고구려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향을 피워 왕녀의 병을 고쳐준 이야기가 있는데, 이런 전설들이 유포되는 것은 불교 위상의 확립 과정에서 ‘신통력 치료’의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박 교수는 소개한다.

셋째는, ‘신통력으로 국가를 보호하는’ 일이다. 국난이 닥칠 때 토착 신격들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것은 고대 한반도에서 다반사였다. 불교도 한반도에 도착하자마자 그 기능까지 맡게 됐다. 7세기 말의 신라에서는 당나라의 침략을 분쇄하기 위해 문두루(文豆婁·만다라) 비법이라는, <금광명경>에 의거한 밀교 의례를 행했다(<삼국유사>, 권2). 부처가 ‘나라를 보호해주는 신’이 된 것이다.

박노자 교수의 지적처럼 왕경(王京)의 일곱 가지 토착 종교 성지에 사찰을 세워 불교를 토착화한 신라에서 승려 집단이 무속인의 고유 기능까지 겸비하게 된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시로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불교가 한반도라는 토양에서 뿌리를 내릴 방도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 공포 심리로 보나, 공포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는 ‘무한 경쟁의 정글’인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로 보나, 불교의 기복적 요소들이 계속 남아 있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한국불교의 기복행위 만연은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박 교수의 지적이다. 그 좋은, 위대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놔두고 도대체 언제까지 기복에 매달릴 것이냐고 따져 묻는 박노자 교수의 질문에 움찔하는 불제자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한국불교의 희망의 씨앗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