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공주와 무왕의 사랑이야기를 전해주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지금까지 익산 미륵사지의 창건배경을 설명해주는 최고의 사료였다. 그런데 최근 큰 이변이 발생했다. 설화보다, 역사서보다 더 확실한 1차 사료 금석문이 탑 가운데서 발견된 것이다. 그 금석문에서 절의 창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무왕의 왕비 사택적덕의 딸이 등장했다.

역사학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그렇다면 1400년동안 우리가 믿어온 선화공주의 설화는 사실이 아니었단 말인가.

수많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제기되었고, 고대 사학자들은 저마다의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일부 학자들은 자신의 기존 주장이 예상대로 맞아떨어졌다며 쾌재를 불렀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자신의 학설을 크게 수정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한국사상사학회는 3월 14일 오후 1시부터 서강대 다사관 세미나실에서 ‘익산 미륵사지와 백제불교’를 주제로 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회는 미륵사지에서 사리봉안기가 발견된 후 최초로 개최된 학회인 만큼 관련학자들과 취재진들이 대거 참가해 미륵사지 사리봉안기를 둘러싼 학계 안팎의 열띤 분위기를 드러냈다.

이날 학회에 참가한 학자들의 열띤 논쟁을 주제별로 소개한다.

*선화공주는 설화 속 인물일까

이날 학회에서는 사리봉안기를 처음으로 해석한 동국대 김상현 교수가 그동안 제기됐던 여러 가지 논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우리 백제 왕후 좌평 사택적덕의 딸’을 둘러싼 해석의 문제이다.

최근 동국대 홍윤식 명예교수, 계명대 노중국 교수 등 상당수의 학자들은 이 부분을 “백제 왕후와 좌평 사택적덕의 딸, 즉 두 명의 인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선화공주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었다.

하지만 김상현 교수는 “최근 이를 백제왕후와 사택적덕의 딸로 해석할 경우 뒤에 이어지는 문장, 즉 만민을 무육했다는 문장까지 두 사람을 주어로 해석해야 한다”며 “사택적덕의 딸이 아무리 귀족가문 출신이라고 해도 왕후와 함게 만민을 무육했다고 표현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 동탑과 중원의 창건주체는 다른 인물일까

이번에 출토된 것은 미륵사지 서탑의 사리봉안기이다. 따라서 미륵사가 거대한 사찰이고 오랜 시간에 걸쳐 조영된 사찰일 것이므로 3원 가람 중 하나는 선화공주가 조성했을 것이고, 동탑이나 중앙의 탑에 또다른 사리봉안기가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상현 교수는 “미륵사의 3원 병립식 가람배치는 처음부터 기획되고 조영된 것이므로 창건 시기가 달랐거나 혹은 창건 발원자가 달랐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리봉안기에 의하면 이 가람은 백제왕후 사택적덕의 딸이 정재를 희사하여 세운 것이고 이 기문에서 말하고 있는 가람은 삼원으로 된 미륵사 전체를 지칭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백제 익산 미륵사 창건의 신앙적 배경-미륵과 법화를 중심으로’를 발표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조경철 연구원은 “미륵사가 미륵삼회 신앙에 의해 건립된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서탑 사리봉안기에서는 미륵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므로 또다른 건립주체를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조경철 연구원은 “미륵사가 사택씨 집안의 법화신앙과 무왕을 중심으로 하는 백제 왕실의 미륵신앙이 결합돼 조성된 사찰”이라고 주장했다.

조 연구원은 “이 절의 이름이 미륵사임에도 불구하고 서탑 사리봉안기에서는 석가모니 사리를 중심으로 하는 법화신앙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며 “이는 스스로 법륜성왕임을 강조하는 백제왕실의 미륵신앙과 법화사상을 강조하는 사택씨 집안의 정치적 결합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연구원이 사택씨 집안의 불교신앙을 법화사상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동시대의 백제귀족 사택지적비에서 비롯된다. 사택지적의 이름 지적은 법화경에서 석가모니의 큰 형님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조연구원의 주장대로 미륵사가 미륵과 법화 사상이 혼합된 곳이라면 왜 서탑에는 법화사상이 주로 드러난 것일까.

조 연구원은 “가람배치에서 볼 때 서쪽과 동쪽의 탑을 법화신앙의 조형물로 배치하고 중앙의 탑 내지 전각을 미륵전으로 조성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상단에 미륵보살이 있고, 하단에 다보와 석가의 이불병좌상이 배치된 사례가 중국의 윈강석굴이나 불국사 대웅전-다보탑-석굴암의 배치에서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조 연구원은 또 사리봉안기에 등장하지 않는 또 한명의 인물이 미륵신앙을 상징하는 중원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조 연구원은 “중앙에 미륵신앙을 상징하는 중원은 선화공주 혹은 무왕이 발원하고 왕후가 동서원을 가능성이 있다”며 “선화공주가 조성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만, 정확한 규명은 또 다른 자료를 기다려야 할 것”이라며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었다.

‘무왕대 미륵사 창건과정과 불교계’를 발표한 국가기록원 길기태 연구원 또한 “미륵사 서탑 이전에 조성된 금당은 미륵신앙자인 선화공주가 발원해 조성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길 연구원은 “이번에 발견된 발원문의 내용을 보면 사찰의 창건과정이 금당에 이어 탑의 건립으로 마무리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며 “이는 서탑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가 미륵사 전체 사원의 창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원의 조성만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지적했다. 길 연구원은 “이것이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미륵신앙자인 선화공주가 발원하여 창건하였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륵사는 법화사상에 의해 조성된 사찰일까

사리봉안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법왕(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감응하시고, (중생들의) 바람에 맞추어 몸을 드러내심은 물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다.

길기태 연구원은 이 부분이 법화경과 관련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길 연구원은 “미륵신앙이 신통력을 강조하는데 반해 법화신앙을 현실적인 면을 중시하는데, 이는 미륵사 창건과정에서 미륵신앙에서 법화신앙으로 전환되었음을 시사한다”며 “이는 처음 미륵사를 창건할 당시 주체세력이었던 지명법사를 비롯한 미륵신앙세력이 축출되고 무왕과 의자를 지원하던 법화신앙 세력들이 권력을 장악한 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길 연구원은 이를 “법화신앙 세력들이 왕후세력과 연결된 것”이라고 부연했다.

조경철 연구원 또한 “전륜성왕-대통불-석가모니로 이어지는 『법화경』의 석가의 계보를 백제사에 적용시키면 전륜선왕은 백제 성왕, 대통불은 웅진의 대통사, 석가모니는 법제의 법왕, 석가모니의 큰형님 지적인 백제의 사택지적과 대응한다”며 “사리봉안기에서 석가모니를 법왕으로 칭하는 점 또한 법화사상이 미륵사지 건립과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 연구원은 “미륵사는 미륵신앙과 법화신앙이 조화를 이룬 사찰이었고 가람배치에서도 미륵의 미륵삼회와 법화의 회삼귀일이 어우러졌다”며 “무왕은 미륵사 창건을 통해 자신을 전륜성왕과 미륵으로 자처했고, 대표적인 귀족가문인 사택씨의 법화신앙을 받아들여 사상의 조화를 이루어 정치적 통합을 이루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상현 교수는 “대부분의 대승경전들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사리쌍수 아래에서 입적하고 사리를 공양했다는 이야기들을 공통적으로 포함하고 있다”며 “사리를 봉안했다는 내용만으로 이것이 석가불신앙 가운데서도 법화신앙으로 따로 떼어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화여대 김영미 교수 또한 “사리기의 내용만으로는 사택씨와 법화사상의 연결고리를 찾기 힘들다”며 “사택씨 집안을 법화신앙과 연결시키고 나아가 미륵사 건립주체와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논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해년을 639년으로 볼 수 있는가

이날 학회에는 충남대 사재동 명예교수가 참가해 사리기에 등장하는 기해년이라는 연도가 무왕 40 즉 639년이 아닌 무령왕 18년인 519년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사 교수는 “사리봉안기에 등장하는 기해년을 무왕 40년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백제 역사에서는 총 10번의 기해년이 나온다”며 “그 중에서도 무령왕 18년은 충분히 추론 가능한 연대”라고 지적했다.

사 교수는 “신라와 백제가 격렬히 싸우던 무왕대에는 신라와의 국혼이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만 무령왕은 왕자시절부터 신라와 줄곧 화친을 맺어온 인물”이라며 “동성왕 15년에 실제로 양국의 국혼이 있었던 만큼 서동요의 이야기와도 결부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 교수는 “사리를 봉안한 기해년이 무령왕 18년이라면 120년이라는 문화사적 소급이 가능한 만큼 무령왕대에 대한 심층적인 검토를 해볼 여지도 충분히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