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의 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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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흐느낌 소리가 애절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아침부터 시작하여 사시가 다 되도록 그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지장방에서 수행승들에게 경학을 강의해온 도증道證은 그 소리를 좇아 숲속으로 들어갈까 말까 망설였다.

처음에는 애처로운 산새 소리이겠거니 하고 무심코 듣다가 도증은 여인의 흐느낌 소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여인의 애간장을 끊는 듯한 울음소리는 벌써 사흘째 아침마다 계속되고 있었는데 오후가 되면 잠잠해졌다. 흐느끼다 그대로 지쳐 쓰러지는 모양이었다. 도증은 혼자 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지장방 방장스님을 찾아 물었다.

“스님, 저기 좌선대 같습니다만 그곳에서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나도 이미 듣고 있었다.”

“그럼, 스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다는 말씀입니까?”

“지장을 찾아온 여인이니라.”

“그런데 왜 저렇게 피를 토하듯 울고 있는 것입니까?”

“넌 사랑을 모르는구나. 불경을 아무리 앞으로 뒤로 외운들 중생을 알지 못하고 중생의 고통을 모르고 있으니 헛공부한 것이로구나.”

도증은 일찍이 당나라에 들어가 원측의 문하에서 부처가 설한 반야부般若部경전과 불교의 심리학이라 할 수 있는 유식학唯識學과 논리학이라 할 수 있는 인명학因明學을 공부하고 돌아온 학승이었다. 또한 그는 천문학에도 관심이 많아 귀국할 때 천문도를 가지고 와서 효소왕에게 바친 유학승이었다.

“내버려두어라. 실컷 울다 보면 스스로 위안이 될 것이니라.”

“어찌하여 지장은 여인을 울리고 있는 것입니까?”

“허허. 지장은 떠났다. 벌써 오대산을 떠났어.”

“스님, 어디로 떠났다는 말입니까?”

“다시는 신라 땅으로 돌아오기 힘들 것이야.”

“중국으로 갔다는 말입니까?”

“그렇다.”

“벌써 사흘째입니다. 이러다 저 여인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슬퍼서 저렇게 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면 사랑한 업을 씻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누가 대신 울어줄 수도 없는 법, 그러니 내버려두어라.”

그러나 도증은 참을 수 없어 오후에 좌선대 움막으로 올라갔다. 아침마다 흐느끼는 여인은 낭낭이었다. 지장이 떠난 뒤 낭낭은 움막으로 들어가 울어댔다. 움막에는 지장이 남기고 간 흔적과 체취가 남아있었다. 좌선할 때 깔고 앉았던 억새 방석과 밥을 담아 소나무에 걸던 바구니와 지장이 졸음을 쫓기 위해 사용했던 탱자나무 가시단과 시종에게 무술을 배울 때 휘두르던 막대기 등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낭낭은 그것들을 하나씩 움켜잡고 흐느끼다 혼절해 무너지곤 했다. 도증이 좌선대에 갔을 때도 낭낭은 허깨비처럼 쓰러져 있었다. 도증은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지장방 방장스님의 한마디가 가슴에 가시처럼 박혀 돌아서지 못하게 했다.

-불경을 아무리 앞으로 뒤로 외운들 중생을 알지 못하고 중생의 고통을 모르고 있다니 헛공부한 것이로구나.

일찍이 20대 초반에 견당사를 따라 유학길에 올라 장안 종남산으로 들어가 원측의 문하에서 10여 년 만에 불법을 통달하고 귀국하여 최고의 학승이 되었건만 지금까지의 공부가 헛공부였다는 방장스님의 한마디에 도증은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원측의 수제자라고 칭송이 자자했건만 방장 스님으로부터 불벼락을 맞은 도증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처자를 어찌할 것인가.

그렇다고 낭낭이 깨어날 때가지 한없이 기다릴 수는 없었다. 도증은 지장방에서 『정토경』을 소리 내어 외면서 하는 백일 염불 기도에 다른 수행자들과 함께 동참하고 있었던 것이다. 곧 기도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그러나 낭낭은 아직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도증은 낭낭을 불렀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낭낭은 힘이 다해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니라 혼절해 있었다. 자포자기 한 상태였으므로 일어날 의욕조차 없었다. 도증은 낭낭을 흔들어 볼까 하다가는 그만두었다. 여인을 만지는 것은 비구의 계율에 어긋났다. 도증은 다시 낭낭을 불렀다.

“처자!”

갑자기 도증은 두려움이 들었다. 낭낭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도증은 판단이 서지 않아 답답하기만 했다.

-나는 정말 헛공부한 것이구나.

계율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도증에게는 지금까지 배운 불경 공부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어떤 해결책도 주지 못했다. 잠시 후, 도증은 쓰러진 낭낭 옆에서 가부좌를 틀고 지혜를 구하고자 좌선에 들었다. 그러자 자신의 내부 어디선가 작은 외침이 들려왔다.

-먼저 여인을 살리거라. 그것이 불법이다.

도증은 즉시 눈을 뜨고 쓰러진 낭낭을 일으킨 뒤 들쳐 없었다. 그때까지도 낭낭은 한마디의 말도 못했다. 그러나 낭낭의 체온이 도증의 등줄기로 전해져왔다. 도증은 안도의 숨을 쉬면서 지장방으로 내려갔다.

이미 기도에 들어간 지장방에서는 염불 소리가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염불 소리는 오대산 골짜기를 향해 퍼져나가고 있었다. 염불 소리를 들은 낭낭이 꼼지락거렸다. 도증은 자신도 모르게 아미타불을 외웠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지장보살.

도증은 낭낭을 따뜻한 객사 방에 뉘어놓고 염불 기도를 뒷바라지하는 원주를 찾아 부탁했다. 그러고는 법당으로 들어가 백일 염불 기도에 동참했다. 아무도 도증을 쳐다보지 않는데 가운데 줄에 앉은 방장스님만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도증은 마음이 놓였다 염불 기도에 늦었지만 방장스님이 묵인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도증은 낮의 염불 기도가 끝나고 나서 방장스님을 찾아가 고백했다.

“스님, 사실을 파계를 하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파계이더냐?”

“여인이 죽을 것 같아서 여기까지 업고 왔습니다.”

“쯧쯧. 네놈은 아직도 낭낭을 업고 있구나. 업고 왔으면 내려놓을 줄 알아야지. 그런 이치를 모르니 계율을 어기고 있는 것이야. 낭낭은 살리고 너는 죽는구나. 그러니 헛공부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그제야 정신을 되찾은 낭낭이 가까스로 방장실로 찾아왔다. 방장스님은 낭낭의 손을 잡아 방문턱을 넘게 했다.

“이놈아, 네 눈에는 이것도 파계로 보이느냐. 죽어가는 사람 손을 잡아 이끄는 것이야말로 계율을 지키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지계의 참다운 경계란 말이다.”

낭낭은 방장스님을 보자마자 또 흐느꼈다.

“대사님,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사랑을 놓아버려라. 그게 바로 괴로움의 업을 짓지 않고 사는 것이야. 쯧쯧. 그런 줄 알면서도 중생들은 불에 뛰어드는 부나비처럼 살지.”

“대사님, 지장스님은 어디로 갔습니까?”

“지금쯤 바다를 건너고 있을 것이야. 구도를 이루기 위해서지. 구도자란 꿈에서 깨어나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야. 중생이 사는 길과 달라.”

“중생이란 무엇이옵니까?”

“헛된 꿈에 취해서 사는 것이 중생이야.”

도증이 합장을 하며 방을 나갔다. 도증은 서라벌에서 가지고온 자신의 저서를 모두 태워버리려고 결심했다. 앞으로는 불경 공부를 그만하고 중생의 극락왕생을 위해 아미타불만 염불하기로 했다.

실제로 도증이 저술한 책은 당시 신라 최고의 학승답게 『금강반야경소金剛般若經疏』『천태산지자대사별전天台山智者大師別傳』등 13권의 저술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단 한권도 전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음날부터 낭낭은 지장방을 떠나지 않고 방장스님의 허락을 받아 공양주 소님을 맡았다. 수행자들에게 밥을 해 올리는 것도 공덕을 쌓는 선업이라는 방장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서 결정한 일이었다.

-공덕을 쌓게 되면 지장스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낭낭의 꿈은 오로지 지장을 만나는 것뿐이었다. 낭낭은 지은 공덕이 부족하여 지장이 이별한 것으로 믿었다. 낭낭은 지장방에 살면서 도증에게 중국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었다. 견당사를 따라 당은포에서 배를 탔다가 뭍에 내려 등주登州부터 육로로 장안에 들어가기도 하고, 서해에서 대강대강 하구로 항해한 뒤 양주揚州에서 변주汴州까지 수로를 이용하다가 다시 육로로 장안長安까지 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도증이 얘기하는 당나라는 낭낭에게는 갈 수 없는 신기루 같은 땅일 뿐이었다. 서라벌 남산 기슭에 사는 낭낭이 가기에는 너무 먼 나라였다. <계속>

글 정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