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불교문화대학의 개강을 맞아 대한불교진흥원 민병천 이사장이 특강을 했다. 북한연구 전문가이기도 한 민 이사장은 3월 11일 다보빌딩 3층 법당에서 ‘제3문명기의 동양과 불교’를 주제로 강연을 하며, 현대사회에서의 불교와 불자들의 삶이 자세를 전했다. 미디어붓다는 이날 민 이사장의 강연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주
토인비는 현대사회를 제3의 문명기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제1문명과 제2문명은 무엇인가.
제1문명기는 농경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였고, 황하 인더스강, 갠지스강, 나일강,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등 큰 강을 중심으로 문명이 탄생하던 시기를 일컫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작은 강 주변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는데 점차 큰물(대양)으로 이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도시가 형성되고 국가가 건국됩니다.
제1문명에서 제2문명으로 넘어가는 계기는 산업혁명입니다. 증기기관이 발달하면서 공업이 기계화되는데, 유럽이 이 문명을 장악하게 됩니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세계 각지를 식민지로 삼고 부를 축적해 문명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2가지를 가지고 식민지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는 기독교 선교사들이었고, 또 하나는 대포였습니다. 대포로 협박을 하고, 선교사가 정신을 개조시키는 것이죠. 이때는 대서양이 세계문명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제3문명에서는 토지와 자본, 노동력이 아니라, 정보와 지식, 기술, 문화가 생산의 주요 수단으로 변화합니다.
최근 가족들과 함께 ‘워낭소리’라는 독립영화를 보았는데 영화 제작비로 2억을 들여서 200억원을 벌었다고 하더군요. 이것이 바로 제3문명에서 문화가 생산의 주요소가 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21세기는 제2문명에서 제3문명으로 대전환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실용적이고 창조적인 사고가 필요합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갈등으로 인한 냉전 시대가 종식되자 이제 유럽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충돌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유럽, 미국 중심의 문명을 계속 주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토인비의 문명 이동원리의 생각에 따르면 미국, 유럽인들의 생각대로 갈 수가 없습니다. 유럽문명은 20세기 전반을 기점으로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문명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태평양 서쪽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1, 2차 대전으로 인한 대학살과 대파괴, 나치의 유태인 학살, 공산당 독재, 핵무기와 환경파괴로 인한 대재난이 그 징후입니다.
이제 문명의 중심축은 태평양으로 와있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으로 거의 다 왔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2015년부터 2020년 정도가 되면 거의 도래하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는 미국중심의 패권 문명은 영어와 달러, 군사력, 외교력을 갖고 세계 패권을 장악해왔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지금 들이닥친 경제위기로 단독패권에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중심국과 부차국이 혼재하는 시기로 접어들었습니다. 2016년을 넘어서게 되면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국가를 중심으로 일본과 한국, 동구권이 축을 이루는 다원체제가 형성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때가 되면 유교와 불교가 중심이 되는 문명권이 형성이 됩니다.
2030년이 넘어서면 세계의 패권중심국은 아마 중국이 되리라 예상됩니다. 또한 인도가 크게 부상하고 미국과 유럽은 부차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이가 태평양을 소에 비유하는 예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소의 뒷다리 부분은 미국인데, 미국이 일어나야 소 전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심장입니다. 그리고 일본은 목덜미인데 소가 목을 끄덕거리다 보니 그래서 지진이 많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한국은 머리인데 코나 입 등 구멍 뚫린 데가 많아서 지진은 안 일어날 것이랍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문명을 주도할 것이라고 합니다. 다소 우리의 바람이 섞인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나름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21세기 문명의 대안은 동양입니다. 문명의 이동이 이미 동태평양에서 서쪽으로 이동을 했고, 중국의 경제대국이 바로 눈앞에 와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투쟁적이고 배타적인 서양적 가치는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그 대안은 바로 불교의 중도사상입니다. 중도는 다른 것들과 융화가 가능하고, 극우∙극좌∙극단은 배제됩니다. 세계문명을 말살시키는 것이 아니라 통합하는 기능을 합니다.
현재 미국에 들어간 불교 또한 서양의 기독교와 싸우질 않습니다.
기독교는 다른 것과 공존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디가서라도 싸워서 이기려 합니다. 그에 비해 중도사상은 조화와 융합, 관용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정도(正道)는 중도라고 합니다.
원효 스님이 말씀하신 비동비이 즉 같지도 않지만 다르지도 않다는 이야기는 남한과 북한의 현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남과 북은 같지도 않지만 다르지도 않습니다. 같은 국가 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지만 민족이 같습니다. 여기에 평화통일의 사상이 담겨있습니다.
불교인들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평화적으로 해야 합니다. 불교는 원한을 품는 종교가 압니다. 평화운동과 비핵운동에도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미국이 가졌든, 북한이 가졌든 핵을 가진 것은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불교인들은 평화봉사활동에도 적극 나서야 합니다.
불교는 상대주의적인 종교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묻는 종교이기도 합니다. 상대를 인정하고 나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불교는 시작합니다. 남북관계도 절대적으로 풀어나가지 않아야 합니다. 상대를 없애려 하는 것은 결국 투쟁, 전쟁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세계가 불국정토가 되면 갈등이 해소되고 평화와 통합이 가능해지며, 여러 문명의 공존이 가능해집니다.
동북아의 중심인 일본과 중국은 현재 경제적으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 두 나라의 중간쯤이 됩니다.
한국의 중간적 위치는 해양과 대륙세력이 충돌할 때 유리한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를 주변국으로 비하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저쪽에서 바라보면 우리가 주변국이겠지만, 이쪽에서 바라보면 내가 중심입니다.
우리는 그런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동북아 세계 중심이 되면 우리 한반도가 중심에 있으므로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종교는 아주 커다란 힘을 갖고 있습니다. 칭기스칸이 세운 원나라가 동구라파까지 지배했지만 지금 그곳에는 몽골의 문명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종교도 없고 사상도 없었던 몽골 문명은 흔적도 없이 그냥 사라져버렸습니다.
우리 동북아시아에는 유교, 도교와 융합된 불교가 있습니다. 우리 한국이 한자문화권 속에서 우뚝 서는 문명 주도세력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불교가 주도적 사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불교가 갈등하거나 투쟁하는 종교가 아니라 이해하고 관용하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자비와 화합이 적개심과 증오를 해소해 문명 충돌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원효 스님의 비동비이론(非同非異論)은 타문명과의 조화와 통합을, 의상 스님의 이상동상론(異相同相論)이 문명간의 중도 통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21세기 한국불교의 중도사상은 세계의 여러 문명이 공존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가치입니다.
우리 불교인들이 그 시대를 직접 열어나가야할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