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빈 해리스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에는 인도 힌두교도들이 쇠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가 소를 잡아먹으면 고대 인도 농경사회의 시스템이 붕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소를 잡아먹으면 고작 수십여명이 한끼 식사를 배불리 할 수 있지만, 소를 경작에 이용하면 수백여명이 십수년간 먹을 수 있는 곡물을 재배할 수 있기 때문에 농업에 기반을 둔 인도사회에서는 소를 식용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전통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 한 마리는 수십 마지기 논밭을 갈 수 있는 최고의 농기구였고, 쇠고기국은 그 소가 생을 다 마칠 무렵에야 맛볼 수 있는 진귀한 음식이었다. 그 소 한 마리로 온 가족이 보릿고개를 면하고, 소가 낳은 새끼를 키워 자식들 등록금을 마련했다.

20개월 된 소를 수입하냐 30개월 된 소를 수입하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길래, 소가 평균 15년, 많게는 20년 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그런데 ‘이눔의 소’는 열 살 무렵 할아버지의 집으로 와서 무려 30년 동안이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자식들을 먹여 살렸다. 최근 극장가에서 큰 이변을 일으키고 있는 독립영화 ‘워낭소리’에 등장하는 주인공 소 말이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지는 영화 워낭소리는 봉화 청량사 인근에 살고 있는 팔십 노부부와 그들과 함께 사는 소가 주인공이다.

할아버지는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어렸을 때 침을 잘못 맞아서 힘줄을 건드렸는데, 그 이후로 다리가 더 이상 성장하질 않았다. 나무토막처럼 잘록해서 힘을 쓸 수 없는 다리 한쪽을 30년간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소가 대신해 주었다.

영화의 절반은 할머니의 신세한탄이다.

“저 눔의 소는 먹을 꺼라도 제대로 먹었지, 나는 먹을 것도 제대로 못먹었다. 니나 내나 주인 잘못 만나서 고생이다, 고생. 저 소 제발 팔아라, 꼴 해먹이는 짓도 이제는 못한다, 소 팔아. 일도 못하는 소를 왜 끼고 있느라고 이 고생시키노. 소만 중하고 나는 안중에도 없다. 소 팔아, 소 팔아.”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든 할아버지는 외마디 소리처럼 ‘안 팔아’를 내뱉고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대신 소가 '음메' 하고 신호를 보내면 그제서야 움찔 몸을 움직인다. 지팡이를 짚고 절름거리며 소한테로 달려간다. 소털이 너무 길어서 눈을 찌르면 털을 다듬어 주고, 젊은 소가 힘으로 밀어붙여 먹이를 독차지 하면 두들겨 패주고, 홍수가 나서 꼴을 준비 못하면 들에 풀어놓고 배를 채우도록 한다.

할아버지는 논밭에 농약을 치지 않는다. “농약을 치면 소한테 꼴을 먹일 수가 없다. 소가 죽으면 우짜노.” 그래서 농약을 치지 않는다.

악에 받힌 할머니가 소리를 지른다. “사료 먹이면 돼지!”

“사료를 먹이면 살이 너무 쪄서 새끼를 제대로 낳을 수가 없다. 소는 풀을 먹어야 된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항변이다.

할아버지는 콩밭을 메다가도 소꼴을 베야 한다고 달려간다. 나머지 일을 도맡아 해야하는 할머니의 눈꼬리가 올라가지만, 할아버지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소는 할아버지의 친구이자, 논밭일을 도와주는 든든한 배우자이자, 함께 늙어가는 동반자이다.

“나는 소하고 같이 죽을란다. 저 소 먼저 죽으면 내가 상주노릇 해줄끼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다. 할아버지가 더 이상 일을 너무 많이 하면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다고 의사는 말한다. 게다가 검지 발가락은 언제 다쳤는지도 모르게 뼈가 탈골이 돼있는 상태다. 아홉 자식들이 다 모인 팔월 대보름날, 자식들은 ‘내가 젖먹이 때부터 우리집에 있던 소를 이제는 팔아야 한다’고 합의를 한다.

마지못해 소 팔 생각을 낸 할아버지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다시 꼴을 끓인다. 평소보다 두 배나 많은 꼴을 담아 건네지만, 소는 먹지 않고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짐승도 차마 이별이 무엇인줄 알 줄이야. 할아버지는 소의 마음을 고스란히 읽는다.

“니 죽으러 가는 거 아이다. 마이 묵으라.”

다음날 할아버지는 우시장에서 소값을 500만원으로 부른다. 그러면서 이 소가 얼마나 훌륭한 소인지를 설명한다.

“한번은 내가 봉화 장터에서 술을 많이 먹고 잠이 들어버렸어. 근데 소가 지 혼자 우리 집까지 온거야. 저 혼자서 차를 피하고 집까지 찾아왔드라니께. 아주 용한 소라니깐.”

수입소가 밀려온다는 소식에 20~30개월 된 젊은 소들도 200만원밖에 못받는데, 할아버지는 소값 500만원 아니면 안판다고 버틴다. '애초부터 팔 생각이 없었으면 데리고 나오긴 뭐하러 나오누.'

결국 소는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소는 더 이상 일어날 수가 없게 돼버렸다. 수의사는 자기 수명을 다 채운 거라며 “할배요, 마음의 준비를 하이소”라고 위로한다.

방법이 없냐고 물어도 수의사는 고개를 흔든다. 할아버지는 그제서야 낫으로 소의 고삐를 잘라 평생토록 걸치고 있던 멍에를 벗겨준다. 이제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끝낸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멍에를 벗는 소, 더 이상 일어나지도 못하고 수레를 끌 수도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천형을 끝낸다.

며칠 뒤 소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할아버지에게 이별을 고한다. 소가 눈을 감자 할아버지는 딱 한마디를 던진다.

“좋은 데로 가거라이.”

이 한 마디는 부디 다음 생에는 축생계를 벗고 사람의 몸을 받아 태어나라는 일종의 축원일 것이다.

소를 팔라고 항상 악다구니를 쓰던 할머니도 숨을 떨군 소를 바라보며 “왜 벌써 가노, 우리가 간 다음에 가지, 조금만 더 있다 가지”라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말한다. “저 소가 참 용한 소래요. 우리 겨울 나라고 저거 다 해놓고 가는거 보소.”

카메라는 마당 가득히 들어찬 소의 마지막 선물, 장작더미들을 비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그 장작들을 메고 돌아오는 할아버지와 소의 풍경이다. 해는 뉘엿뉘엿 지는데 소는 달구지를 이끌고 할아버지는 지게에 장작을 지고 걸어온다. 소가 끌어야 할 짐을 조금이나마 함께 나누려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화면에 가득찬다.

불교에서 소는 불성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소를 찾아서 떠난 이가 소를 만나고 소에 올라타고 가다가 이제는 소도 나도 없는 상태가 되고 또다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오는 것이 심우도(尋牛圖)의 스토리다.

‘워낭소리’를 보면서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 소는 언젠가 오랜 전생에 나의 경전을 실어 날랐던 소였을 것이며, 지금 시골집을 지키고 있는 우리 어머니였을 것이고, 또 언젠가 내 자식이나 혹은 내 친구로 만날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봉화 청량사에서 소의 명복을 비는 것으로 시작한다. 소가 죽은 지 49일 즈음 되는 어느날, 소가 좋을 곳으로 가기를 발원하기 위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힘겨운 걸음을 내딛어 청량사를 찾았다.

영화에서 청량사는 첫 부분에 잠시 등장할 뿐 더 이상은 나오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청량사는 축생과 인간이 한 경계에서 만나 공업(共業)을 쌓아감을 설명하는 커다란 축으로 존재한다.

우리네 할머니가 다니던 절은 내 부모와 먼저 떠난 서방과 또 앞서간 자식들의 명복을 축원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소와 강아지와 들풀들이 하나의 이치 속에서 공존하는 또 하나의 나임을 그들은 저절로 익히며 살아갔다. 불교 또한 그 속에서 함께 존재하는 일부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밭 한가운데 소의 무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지난해 그 무덤 위에는 민들레꽃이 한가득 피었다고 한다. 그것을 많이 먹으면 건강해진다며 ‘내 약으로 쓰겠다’는 할머니도 주지 않고 소에게만 먹이던 그 민들레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