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은 그동안 존재 여부가 알려지지 않았던 밀랍주조법으로 제작된 금속활자를 조선시대의 금속활자인 임진자에서 발견했다고 9일 밝혔다. 이번 발견으로 밀랍주조법에 의해 금속활자가 주조되었음을 처음으로 확인됐다.
금속활자 주조 방법에 대해서는 조선시대의 <용재총화>에 기록된 주물사주조법이 주로 알려져 왔다. 밀랍주조법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밀랍주조법에 의한 금속활자 주조 여부가 명확하지 않았으나, 이번 발견으로 밀랍 주조법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현존하는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물인 백운화상불조직지심체요절(직지)은 한 면에서 같은 글자의 모양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인쇄에 사용한 활자를 밀랍주조로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금속활자를 제작하기 위해 밀랍주조법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문헌에 남아 있지 않고, 밀랍주조법의 특징을 가진 금속활자도 확인되지 않아 그에 대한 반론도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밀랍주조법으로 제작된 금속활자가 발견됨에 따라 그 주장이 근거를 가지게 되었다.
이번에 밀랍주조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진 활자들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속활자 가운데 임진자로 분류되는 활자들이다. 임진자는 갑인자(甲寅字)의 글자체로 임진년(壬辰年)인 1772년(영조 48)에 주조한 활자이며, 글자체가 왕희지가 글씨를 배운 진(晉)나라 위부인의 글씨체를 닮아 위부인자(衛夫人字)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밀랍주조법으로 주조한 활자들은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글자면이 아랫부분인 발보다 넓고 몸체에는 가공으로 생긴 선들이 기울어져 존재한다(그림 1,2) 옆면에 해당하는 몸체에는 매끈한 표면을 가진 구형의 주조결함이 붙어 있는데, 주조결함을 위에서 바라보면 선들이 주조결함에 의해 끊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그림 3), 기울여서 주조결함의 밑부분을 보면 선들이 이어져서 주조결함을 지나가고 있다(그림 4). 만약 선들이 주조 후에 옆면을 갈아내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면 구형의 주조결함은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따라서 이 선들은 주조결함이 생기기 전, 즉 주조하기 전에 이미 거푸집에 그 모양이 있었던 것이 된다. 요철을 가진 선들이 거푸집의 측면에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존재하려면 거푸집에 들어 있는 모형을 열을 가해 녹여내는 밀랍주조법 만이 가능하다. 사형주조라면 모형을 거푸집에서 꺼낼 때 수직으로 꺼내기 때문에 측면하게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선이 존재할 수 없다.
이번 발견은 금속활자의 형상과 주조 결함의 상관관계를 통해 금속활자의 주조법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금속활자를 제작방법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 금속활자의 복원사업 등 연관 분야의 연구를 촉진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주조 방법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임진자 이외 다른 활자의 주조 방법에 대해서도 면밀한 조사를 행하여 선조들의 금속활자 주조술의 특성을 밝히는 데 보탬이 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 발견을 담은 논문은 금속･재료 분야 국제학술지(Metals and Materials International)의 최근호에 실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