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봄바람에 눈송이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남산 기슭에 사는 처녀 낭낭은 바랑을 만들어 등에 메고 길을 떠났다. 원래는 초파일 무렵에 오대산을 가려했으나 마음이 급해 한 달을 앞당겨 길을 나섰다. 동행하는 사람은 오대산 지장방 방장으로 추대를 받아 가는 황룡사 노승이었다.
낭낭은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가슴이 쿵쾅거렸다. 얼굴이 시도 때도 없이 복사꽃처럼 붉게 달아오르곤 했다. 애가 타도록 사모하여 꿈에도 잊지 못하던 지장이 오대산의 한 암장서 수행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며칠 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마침내 길을 나서고 있는 중이었다.
숫처녀 낭낭은 지장이 서라벌을 떠난 뒤 자신이 연등을 달았던 황룡사를 찾아가 허전한 마음을 달래곤 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주지승의 법문을 듣다가 지장의 거처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지장의 출가 얘기를 듣고 크게 놀라 기절할 뻔했으나 곧 정신을 찰T다. 주지승은 법문하던 중에 왕족 지장이 남산 관음봉 아래서 혜통국사에게 법명을 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대산으로 출가했다고 얘기했던 것이다.
낭낭의 거북이 등처럼 볼록한 바랑은 무거웠다. 오대산 수행자들에게 시주하기 위해 겨우내 만든 짚신들을 차곡차곡 담은 바랑이었다. 낭낭은 서라벌을 미처 벗어나지 못했는데도 벌써 힘들어 했다. 낭낭은 이마에 솟은 땀을 훔치곤 했다. 그러자 앞서 걷던 황룡사 노승이 물었다.
“무엇이 들어 그리 무거운가?”
“대사님 걱정 마셔요. 괜찮습니다.”
낭낭은 바랑 끈이 짓누르는 어깨가 아픈데도 일부러 사내처럼 호기 있게 대답했다.
“오대산까지는 해변길로 쉬지 않고 가도 닷새는 족히 걸리지. 바랑을 가볍게 해야 가는 길이 편해.”
잠과 끼니는 절로 찾아 들어가 그때그대 해결하면서 가는 산길이었다. 노승은 낭낭이 처녀이므로 야산 같은 데서 함께 노숙하지는 못했다. 노승은 심심할 때마다 낭낭에게 두서없이 묻곤 했다.
“오대산에는 무엇 하러 가는가?”
“그곳 스님들께 짚신을 공양하려고요. 보천스님과 한 약속을 지키려고 겨우내 짚신을 삼았답니다.”
“보천스님이라고? 그 중은 내 제자지. 이 늙은이의 헐렁한 바랑과 바꾸어서 메고 갈까?”
“대사님 제 바랑은 제가 메고 가겠습니다.”
“처자의 바랑에는 금싸라기보다 더 귀한 물건이 들어 있군 그래.”
“아닙니다. 한낱 짚신이 들어 있을 뿐입니다.”
“허허, 짚신처럼 값진 것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낭낭은 노승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흔한 짚신을 금싸라기 같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았다. 낭낭이 어리둥절해하며 눈망울을 굴리자 노승이 다시 말했다.
“중생이 가는 길에 스스로 닳아 없어지는 게 짚신이 아닌가. 어둠을 밝히고 사라지는 촛불과 같은 것이야. 내 말을 알아듣겠는가?”
“대사님, 제가 만든 짚신이 그렇다는 말씀입니까?”
“부처가 어디 따로 있나. 처자가 삼는 짚신이 바로 부처지.”
낭낭은 노승의 말을 정말 알아듣기 힘들었다. 해맑은 낭낭의 얼굴을 지그시 보더니 노승은 듣거나 말거나 중얼거렸다.
“그뿐인가. 짚신은 더러운 땅과 깨끗한 땅을 구분하지 않으면서 가장 낮은 곳에 있지. 그래서 나는 짚신을 부처라고 부르는 것이야.”
그제야 낭낭은 노승의 말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짚신을 만드는 제 정성이 모자랄까 두렵습니다.”
아주 느린 말투의 노승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걷기만 했다. 낭낭도 할 말이 없었다. 낭낭은 짚신 중에 지장에게 선물할 것을 떠올렸다. 그것은 신고 다니는 짚신이 아니라 낭낭이 온갖 솜씨를 발휘해서 망태처럼 크게 만든 짚신이었다. 출가한 지장에게 무엇을 가지고 갈까 망설이면서 오매불망 그리워하다가 그렇게 만든 짚신이었다.
큰 짚신을 짜는 동안에는 오로지 지장의 모습만 떠올렸다. 낭낭은 오대산에 가게 되면 다시는 서라벌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지장 옆에서 수발을 들며 자신도 암자에 남아 살기로 결심했다. 지장이 허락한다면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살 작정이었다. 낭낭은 주정꾼인 아버지 몰래 동전 다발을 숨겨두기도 했다.
낭낭은 절룩거렸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긴 탓이었다. 그래도 낭낭은 무거운 바랑을 함부로 땅에 내려놓지 않았다. 바랑 안에는 지장에게 마음을 다 바쳐 만든 짚신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낭낭은 오직 급한 일이 생길 때만 스님에게 바랑을 맡겼다. 오줌을 누려면 도망치듯 수수밭이나 보리밭 멀리 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냥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부정을 탈까봐 흐르는 개울물에 얼굴과 손을 씻고 제자리로 왔다.
“대사님, 이리 주십시오.”
“쯧쯧. 길을 가려면 짐은 가벼워야 하는 법이야. 사람 사는 이치도 마찬가지지. 짐을 가볍게 내려놓고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야. 욕심 부리지 않고 산다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지.”
“대사님, 제가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가요?”
“처자는 아니지. 공덕을 쌓고 있는 것이야. 자기를 위해 짐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한데 처자의 두 눈에는 무엇이 타고 있어.”
낭낭은 궁금해 물었다.
“대사님,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사랑의 불이 타고 있어. 마음속 갈애가 눈에 나타난 것이지.”
낭낭은 단순한 성격을 숨기지 못하고 불쑥 말했다.
“대사님 제 마음은 불이 난지 오래입니다. 오대산에는 저와 장래를 약속한 분이 계십니다.”
“중도 출가하기 전에는 중생이었으니 무슨 약속인들 못했겠나.”
“그렇답니다. 출가하기 전에 저와 약속한 분이 계십니다.”
“중에게 지나간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진 물거품 같고 이슬 같은 것. 그러니 어쩔 수 없고 딱할 뿐이지.”
낭낭은 문득 슬픈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밝아졌다. 지장이 출가를 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한번 만날 수 있는 것만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낭낭은 갑자기 종종걸음을 치며 말했다.
“대사님, 그래도 저는 행복합니다. 그분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쯧쯧, 그 반대일 수도 있어.”
낭낭은 노승이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장이 출가한 승려지만 사랑했던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지장이 출가한 것은 무슨 피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낭낭은 믿었다.
당시 왕족 중에는 자신의 마음과 달리 세력 다툼에 떠밀려서 출가한 예가 많았던 것이다. 왕궁에는 왕위를 잇는 태자만 남고, 그 밖의 왕자나 서자들은 실권을 뒨 귀족들에게 거세의 한 방법으로 출가를 강요받기도 하고, 그 반대로 소외 귀족들의 역모에 이용당하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신발 장사를 하는 평민의 처녀인 낭낭으로서는 대궁 안의 일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왕권 암투의 회오리바람은 왕조마다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문무왕의 죽음을 전후해서 왕권을 탐낸 소판 김흠돌의 반역이나, 신문왕의 두 아들 보천과 효명이 부군副君의 반란을 두렵게 여겨 오대산으로 피신한 것이나, 성덕왕의 첫째 왕비가 장자 김수충을 낳아놓고도 출궁당한 것이나 수십 년 동안 왕궁은 조용한 날이 없었던 것이다.
“대사님, 그분은 어쩔 수 없이 출가했을 터이니 저와 한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
“출가 전의 약속은 물거품 같은 것이래도.”
노승은 낭낭의 마음이 불타는 집과 같다고 여겼다. 타는 불길은 제풀에 수그러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의 말도 귀에 들리지 않을뿐더러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천년만년 변치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불이 꺼지면 회한의 숯덩이와 차가운 재만 남는 법이었다. 그것이 바로 불법에서 말하는 인과인 것이었다. 낭낭은 자신의 마음이 불안한 듯 불쑥 물었다.
“대사님, 사랑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는 것인가요?”
“사랑에도 인과가 있지. 사랑의 인因이 있고 이별이란 과果가 있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사랑은 괴로움이 따르고 영원한 행복이 될 수 없는 것이야.”
“사랑했는데도 왜 행복할 수 없는 것인지 저는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대사님.”
“헛된 꿈속의 행복일 뿐이지.”
“대사님, 허망해요.”
“허망한 것이 어디 사랑뿐이겠나. 이 세상 모든 것이 허망할 뿐이야. 그래, 정신 차리고 잘 살자는 것이 불법인 것이야.”
낭낭은 자신의 처지를 위로해주지 않는 스님이 야속했다. 낭낭은 마음이 우울해졌다. 해가 중천에 오르자 봄볕도 따가웠다. 노승이 낭낭에게 잠시만 기다리라며 개울가로 내려갔다.
낭낭은 바위에 주저앉아 멀리서 반짝이는 바다를 보았다. 기와집 몇 채가 옹기종기 모인 골짜기가 보였다. 그곳이 바로 감은사였다. 노승은 더위를 식히느라 개울물에 몸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가사를 물가에 내팽개친 채 천둥벌거숭이가 되어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낭낭은 소매로 두 눈을 가렸다. 잠시 후, 노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시원하다. 몸을 씻었으니 감은사 부처님도 좋아하실 것이야.”
“대사님, 눈을 어디다 둘 줄 모르겠습니다.”
“눈을 잘 뜨고 사는 것이 부처님의 지혜가 아니겠나. 하하하.”
노승은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더니 바람처럼 날 듯 가사 자락을 펄럭이며 길을 걸었다. 낭낭은 종종걸음으로 노승을 뒤따라갔다. <계속>
글 정찬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