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禪) 불교의 세계화에 기여한 숭산 스님(1927∼2004·사진)이 1982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을 비판한 편지가 처음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이 편지는 그해 8월 25일 스님이 미국에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 앞으로 보낸 것으로, 다음 달 초 출간되는 ‘부처를 쏴라’(김영사)에 수록돼 있다. 이 책은 현각, 대봉 스님 등 숭산 스님의 외국인 제자 1세대들이 생전 스님의 법문과 가르침을 모은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동아일보>의 오늘(25일)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숭산 스님은 1만3000여 자에 이르는 장문의 편지에서 “내가 사랑하는 내 나라, 내 민족이 고난을 겪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글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스님은 “대도무문(大道無門)이요 설두무골(舌頭無骨)이라, 도처춘색(到處春色)하니 유록화홍(柳綠花紅)이라. 즉 큰 길이란 문이 없고, 혓바닥에는 뼈가 없네. 이르는 곳마다 봄 빛깔이니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도다. 대통령, 이 얼마나 시원하고 훌륭하고 명백하고 대진리의 길이 아니오이까”라며 “이 세상에는 인과가 분명합니다. …대통령이 되신 것도 대통령님의 운이요, 우리 한국 운이올시다. 엿장수 마음대로 되는 법은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스님은 이어 “아유(我有)하니 피유(彼有)하고, 아멸(我滅)하니 피멸(彼滅)이라. ‘나’가 있을 때 저것이 있고, ‘나’가 없으면 저것도 없네. 불교 소학교 과정”이라며 “대통령이시여, 당신은 ‘나’를 아시오? 무엇이오? 말해 보세요”라고 덧붙였다.

<동아일보>는 숭산 스님 제자들의 언급을 인용, 스님은 편지를 보내고 귀국할 때 공항에서 당시 안전기획부의 남산 청사로 연행돼 몇 시간 동안 고문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또 숭산 스님은 전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인 1994년에 전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편지 중 기억하는 대목이 있느냐’고 물었고, 전 전 대통령이 “무슨 편지냐?”고 반문하자 그 자리에서 편지 사본을 꺼내 전달해, 전 전 대통령은 이를 읽으면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일이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