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 날이면, 그리하여 온 세상이 하얗게 된 날이면, 세상이 환생을 한 것만 같아 짐짓 싱그러움을 느낀다. 얼마나 바뀌고 싶었으면, 얼마나 새로운 삶을 갈망했으면 며칠 가지도 못할 환생을 위해 저리 밤을 지새우며 세상을 바꾸었을까.

세상도 살아가는 것이 서툴게 느껴질 때가 있는 모양이다. 그러려니, 세상사 늘 그런 것이려니 하다가도 문득 어디론가 일탈을 하고 싶을 때가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못내 일탈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님을 향해 이 세상을 하얗게 만들어 달라고 빌었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리다가 실수를 하면 새 도화지를 찾듯이, 이 세상도 비록 겉모양이긴 하지만 하얗게 바꾸고 싶었던 모양이다.

눈이 펑펑 내려 온통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리면, 문득 읊조리는 시가 박남준 시인의 ‘흰 부추꽃으로’다. 절절한 표현도 표현이려니와, 시의 마지막 부분인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이라는 대목이 왜 그렇게 가슴을 저리게 하는지…. 흰재, 흰 부추꽃이란 시어를 접하며 세상을 뒤덮는 흰 눈을 연상하는 것은 기자만의 감상일까….

모처럼 서울에도 큰 눈이 왔다. 뉴스에는 기상청이 예보를 잘못해 교통사고가 늘어났느니 어쩌니 하면서 부산을 떨지만, 이 순간 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겐 세상이 흰 눈 덮인 지금처럼 확 바뀌었으면 하는 간절함도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 우울한 마음을 박남준 시인의 시 ‘흰 부추꽃으로’를 읽으며 털어내고 달래보면 어떨까. '환한 환생'을 염원하며 흰 재를 부추밭에 뿌리는 시인의 심정으로 세상의 온갖 역경을 헤치고 나가리라는 발원을 내었으면 한다.

흰 부추꽃으로 / 박남준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무를 하다보면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다 하루해가 저문다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한다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

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 더 활활 타오르며

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그건 상처다 상처받은 나무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꺾인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가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

타오르는 것들은 허공에 올라 재를 남긴다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