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 년 전에 큰 산에 커다란 바위가 살고 있었습니다. 바위는 멋진 소나무 한 그루와 자신을 감싸고 있는 이끼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 바위에는 호랑이도 머물다 가고, 아름다운 선녀도 다녀가고, 동네 사람들도 쉬었다 가고, 바람과 구름과 눈과 비도 들렀다 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5천년의 세월이 흐른 후 바위는 전각 예술가로 태어나 오랜 세월 동안 보아온 모습들을 돌에 새기는 큰 장인이 되었습니다. 바위와 함께 살던 소나무는 지금 장인과 함께 살며 무엇이든 돕는 아내가 되었고, 이끼들은 장인을 사랑하는 팬 클럽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장인과 함께 또 다른 5천년의 인연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오늘 ‘정고암을 사랑하는 이끼’라는 팬클럽이 출범한 것은 이런 길고 긴 아름다운 인연이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연예인도 아니고, 스포츠 스타도 아닌 한 전문 예술가의 팬클럽 ‘정고암을 사랑하는 이끼들’이 12월 22일 저녁 인사동 새김아트 갤러리에서 첫 번개팅을 갖고 출범했다. 이 팬클럽은 고암(古岩) 정병례 선생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문화의 세기라는 21세기에 제격인 모임이지만 장인의 팬클럽은 그동안 잘 들어보지 못했던 드문 모임이다.

팬클럽 이끼의 회장을 맡은 이는 김은애 엑스커버리 대표이사. 스토리 텔러와 스토리 북아티스트 분야에서 일하며 우리나라의 아름답고 교훈이 담긴 이야기를 영어로 이야기해주는 커리어우먼이다. 그녀는 스토리 텔러 회사의 대표답게 팬클럽 결성이야기를 5천 년 전의 바위이야기로부터 끌어왔다. 이야기를 들으니 그럴 듯하고, 실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고암 선생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각가로 ‘새김아트’라는 이름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있는 전각분야의 거목이다. 그가 평생을 바친 새김아트는 문자, 회화, 조각, 디자인의 예술적 특성이 집약된 전각에서 발전한 정신적 세계와 물질적 세계의 의미를 새기는 현대예술이다.

고암 선생은 그동안 개인전 및 단체전을 100여회 이상 해왔고, 올 베이징올림픽 타이틀 및 전각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그가 제작한 작품은 파주 헤이리의 로고를 비롯해, ‘왕과 비’, ‘오세암’ 등 방송 및 출판물의 켈리그라피, 조형물 및 설치 미술, 새김아트 작품을 애니메이션에 활용한 작품이나 영화 등 다양하다.

이날 모인 30여 명의 팬클럽 회원들은 무용, 출판, 문학, 스토리텔링 사업가, 화가, 성우, 시인,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 다채로운 직종을 가진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이도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고암 선생의 작품이 젊은이들로부터 나이가 지긋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연령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고루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회원의 구성에서도 알 수 있다.

이날의 팬클럽 출범을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한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삼성출판사 회장)은 축사를 통해 팬클럽의 이름인 이끼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순발력 있게’ 축사에 나섰다.

“이끼가 없으면 바위는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이끼가 있어야 바위가 벼락을 맞아 갈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또 커다란 바위가 버텨줘야 소나무도 잘 견디며 오래오래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그냥 있는 것이 없습니다. 불교에서 가르치는 인연, 연기의 가르침이 바위와 이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팬클럽의 이름을 이끼라고 지은 것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잘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축하합니다.”

김종환 <에세이스트> 발행인 등 지인들의 축사에 이어 고암 선생이 팬클럽 회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앞으로 이 모임을 통해 새김아트가 세계적 예술로 뻗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며 “특히 이 모임에 참여한 회원들이 함께 서로 돕고 함께 발전하는 모임이 되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또 독도를 주제로 춤공연을 벌였던 춤꾼 춤새 송민숙씨가 고암과 소나무를 주제로 한 잠깐 춤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고암 정병례 선생의 팬클럽 ‘정고암을 사랑하는 이끼’는 앞으로 고암 선생의 작품을 널리 홍보하고, 국제화하는 데 힘을 보탤 예정이다. 또한 회원들간의 상부상조에도 각별히 신경을 쓸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팬클럽에는 고암을 사랑하고, 새김아트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연락처 meg@excovery.co.kr(팬클럽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