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바람직한 것일까. 이에 대한 판단과 상관없이 종교의 정치권력화는 한국사회의 현실이 되고 있다.올해 4월 총선에서 통일교가 천주평화통일가정당을 내세워 전국 지역구 중 단 한군데도 빠짐없이 후보를 배출하자 개신교는 기독사랑실천당을 내세웠다. 두 정당 모두 국회 입성에는 실패했지만, 기독당의 경우 이전에 비해 훨씬 높아진 지지율에 차기 대선에서는 후보를 배출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이처럼 현실로 다가온 종교의 정치권력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일까.
한국종교문화연구소는 12월 19일 출판문화회관 강당에서 ‘최근 한국사회의 종교, 정치, 권력’을 주제로 하반기 정기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기독교 뉴라이트의 이념과 세계관’을 발표한 류대영 한동대 교수는 새로운 정치권력으로 급부상한 기독교 뉴라이트의 이데올로기를 집중 조명했다.
류 교수는 “한국의 기독교 뉴라이트는 좌파적 가치관과 정책을 위협으로 여기고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의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며 애국심에 호소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미국 기독교 우파와 일치한다”면서도 “그들이 지향하는 작은 정부가 반대한민국 세력이나 좌파들의 사상과 활동에 대해서도 자유를 보장해주기를 원하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류 교수는 이어 “한국의 뉴라이트는 문화와 사상면에서는 선악이원론에 기초한 전체주의적 요소가 농후하다”고 지적하면서 “신앙과 이념이 결합된 한국 기독교 우파의 이념화된 신앙, 혹은 신앙화된 이념은 자유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종교의 사회세력화 형태와 전망-한국 민주화이후를 중심으로를 발표한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윤승용 소장은 한국종교의 사회세력화의 형태를 시장 지향적 전략과 권력지향적 전략, 문화·이데올로기적 전략으로 구분해 진단했다.
시장지향적 전략이란 신앙대중에게 종교적 기본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자 종교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기본적인 대처방안이다. 이 전략은 주로 종교지형에서의 경쟁을 전제로 한다. 교파간, 종교간의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충돌과 갈등, 물량적 성장으로 인한 병리적 현상 등이 시장지향적 세력화 전략으로 인해 발생한다.
권력지향적인 전략이란 종교가 정치권력을 이용해서 종교시장을 선점하거나, 정치 권력자가 종교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를 드러내는 것, 또한 종교가 권력단체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여 공적 권력을 행사하는 등의 전략이다. 개신교의 뉴라이트운동, 종교정당의 건설, 유력 신도의 정치참여 등 종교가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사례들과 더불어 불교나 민족종교가 선거 때 자기네들의 이해에 맞춰 집중적으로 정교유착을 하는 것 등이 여기에 속한다.
문화, 이데올로기적 전략은 시민들의 삶에 종교적 이해를 접목시킴으로써 해당종교에 대한 지명도와 선호도를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학원, 의료 복지 등 각종 사회복지 사업에 참여하는 전략, 각종 시민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전략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윤 소장은 설명했다.
‘종교정당을 보는 두시각: 창당의 논리와 비판의 논리’를 발표한 호남신학대학 이진구 교수는 통일교의 평화통일가정당과 개신교의 기독사랑실천당, 그 중에서도 기독사랑실천당의 창당 논리를 집중적으로 진단했다.
이 교수는 “기독교 정당의 필요성을 주장한 세력들의 창당 명분은 대한민국의 도덕적 정신적 타락에 의한 사회병리적 위기를 치유하고 좌파의 확산에 의한 대한민국의 정체성 위기를 극복하고 통일교의 가정당 창당에 의한 의회 진출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동시에 정치권 복음화를 통한 선교 영역의 확장과 교회의 제도적 이익의 보호와 증진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이러한 창당논리 속에는 좌파와 우파의 이분법에 근거하여 좌파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배제하는 냉전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으며 정통과 이단의 이분법에 근거하여 종교적 타자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배제하는 근본주의 멘탈리티가 작동하고 있으며, 정치권 복음화라는 명분하에 교회의 제도적 이익을 끊임없이 확장하려는 팽창주의가 작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독교 정당 창당에 부정적인 입장을 개진한 진영은 정당 자체의 필요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하기보다는 현재의 개신교 문화에서 창당이 시기상조라는 입장에 가까이 서있다”며 “이들은 정당 창당보다는 기독교의 보편적 이념인 정의, 평화, 사랑의 덕목을 고도의 판단력을 요청하는 정치 영역에서 탁월하게 구현할 수 있는 기독교적 정치인을 양성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는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서구와 달리 한국사회는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다종교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데 과연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그들이 생각하는 기독교정당의 창당이 가능할 것인지는 의문으로 남는다”고 덧붙였다.
'종교의 권력화와 그에 대한 도전들'을 발표한 강인철 한신대 교수는 종교권력에 대한 비판적 담론들을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해 나갔다.
최근 10년간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안티기독교운동, 종교내부의 개혁세력들의 성장, TV 등 언론매체의 종교비판 등 한국사회 내 종교권력에 저항하는 세력이 확대되고 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최근 종교권력화에 저항하는 다양한 움직임들이 속출하는 데는 종교에 대한 공신력의 약화, 영향력 확대의 딜레마들이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강 교수는 또 “개신교와 불교에 공통적인, 가장 심각한 내적 문제는 분열주의, 그리고 그로 인한 교단 분열”이라고 진단했다. 기독교와 불교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교단들이 난립하고 있는 상황은 질 낮은 성직자의 과잉공급을 불가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개신교의 경우 분열주의가 ‘성장주의, 물량주의, 개교회주의’의 가치관, 문화, 관행들과 결합돼 있고 불교의 경우 사찰의 사유화(개인 소유 사찰) 관행과도 결합돼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는 경향을 보인다”며 “거대 종교들의 공신력 위기, 심지어 정체성 위기 상황은 종교조직 안팎에서 불만 세력이 광범위하게 누적되어 왔고 권력화된 종교와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도전·저항이 확산되기 쉬운 풍요로운 토양이 이미 존재함을 뜻한다”고 진단했다.
강 교수는 “종교의 ‘정치적 영향력 증가’와 ‘종교간 경쟁 압력 증가’는 서로 결합하여 우리 사회에서 갈등적인 성격을 띠는 종교정치가 활성화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며 “이런 현실은 종교권력과 그에 저항하는 세력간의 갈등이 앞으로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음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과연 종교지형 내부의 개혁세력들은 조직화와 공고한 연대에 성공할 것인가, 나아가 이들은 종교지형 외부의 각성된 시민사회와 성공적으로 결합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반종교권력 운동이 현재의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 심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이것이 수년동안 우리가 유의해야 하고 또 응답해야 할 질문”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