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을 강한 목소리로 비판해온 대표적인 불교계 지도자를 꼽는다면, 세 손가락 안에 법타 스님(은해사 주지)이 포함된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그런 법타 스님이 오늘(10월 7일) 청와대불자회(이하 청불회) 정기법회에 초청돼 청와대에서 법문을 했단다. 희유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오늘 낮 12시부터 한 시간 여 동안 열린 청불회 제2회 법회에서 법타 스님은 약 40분간 법문을 했다. 이 자리에는 청불회장을 맡고 있는 강윤구 사회수석과 부회장 김은혜 청와대부대변인 등 50여 명의 불자들이 동참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또 정장식 전 포항시장을 비호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에게도 쓴 소리를 거침없이 내뱉어온 법타 스님의 청와대 행은 그 사실만으로도 흥밋거리가 아닐 수 없다.

막 법문을 마치고 나온 법타 스님을 조계사 인근에서 만나 청불회 법회 이야기를 들었다. 까칠한 스님을 초청한 청불회 회원들의 ‘대담함’도 신선했지만, 더 궁금한 것은 법타 스님의 까칠함이 청와대 안에서도 계속되었는가 여부였다.

“무슨 이야기를 했냐구? 뭐 가서 한 마디 세게 해 주었지. 그런데, 다들 좋아 하더군. 본격적인 법문에 들어가기 전에 종교편향의 진원지인 청와대에 근무하는 불자들은 요즘 어떨까. 혹시 섬 같은 신세로 사는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왔는데, 의외로 많이 참석했다며, 정말 이래도 괜찮은 것이냐고 조크를 던졌지. 까칠한 중이 왔다는 소식에 다소 긴장도 했을 것 같아 분위기 전환용으로 한 말인데, 박장대소…. 어찌나 즐거워하는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미국생활에 익숙한 스님인지라 특유의 임기응변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는 장기를 가진 스님답게 조크 한 마디로 법회 분위기를 싹 바꿔낸 모양이다.

“서산대사 이야기를 했어. 나라가 위태로운데, 분연히 일어난 승병들의 이야기였지. 당시 스님들이 어떤 대접을 받았나. 7천의 하나로 죽어도 문제가 안 될 정도로 딱하고 비참한 신세였지. 그런데도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가며 교지를 내려 부탁을 하니까 서산대사가 일어난 것 아닌가. 당시 스님들이 당했던 것을 생각했다면 ‘잘 됐다. 이놈의 나라, 망해버려라’ 했을 것인데,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나 죽음으로 나라를 구했지 않았나. 종교란 바로 그런 것이야. ‘저 바다의 악귀들이 우리 조국을 무참히 짓밟고 무고한 백성들을 학살하는 광란을 벌이나니 이 어찌 사람이 할 짓이랴. 살기가 서린 저 악귀들은 독사금수와 다를 바 없도다. 조선의 승병들이여! 깃발을 치켜들고 일어서시오! 그대들 어느 누가 이 땅에서 삶을 얻어 받지 아니하였소. 그대들 어느 누가 선조들의 피를 이어받지 아니하였소. 의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바, 또 모든 중생을 대신하여 고통을 받는 바가 곧 보살이 할 바요 나아갈 길이라'고 서산 스님께서 호소하지 않았나. 그게 바로 종교인의 공적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준 것이지.”

그래서 스님은 제일 먼저 서산과 조선 승병의 이야기를 꺼냈다고 했다.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는 종교인의 태도가 어떤 것인가를 들려주고 싶어 서산대사의 ‘조선팔도 승병 총궐기 격문’을 낭독해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바로 지도자의 종교에 관한 자세를 불교의 이상적인 군주인 전륜성왕 아쇼카 대왕의 칙령(마애법칙 12장)을 통해 알려주었단다. 아쇼카 대왕의 칙령 내용은 ‘누구나 자신의 종교만을 숭상하고 다른 종교를 저주해서는 안 된다. 여러 가지의 이유로 다른 종교도 존경해야 한다. 자신의 종교를 포교하면서 다른 종교에도 봉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나 자신의 종교에 무덤을 파는 것이며, 다른 종교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이다.

법타 스님은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인다. '불교가 무려 2000년 가까이 이 땅에서 민족과 동고동락을 해왔는데, 이제 겨우 200년도 채 안된 기독교가 고맙다고 하지는 못 할 망정 이렇게 불교를 못살게 굴고 있으니 말이 되느냐. 늙었다고 시궁창에 쳐 넣으려는 무뢰배와 다를 게 무엇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더니 다들 수긍하는 표정이었다고 전한다.

“내가 이렇게 얘기했지. 여러분도 이런 힘 있는 자리에 있을 때, 힘이 있다고 위세를 부리면 그것이 가장 어리석은 짓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마하트마 간디가 말한 망국론 7가지를 들려줬어.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성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신앙이 횡행하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는 간디의 경고지. 그러니까 법회가 끝나고 법문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달라는 친구도 있고 그랬어. 반응이 괜찮았지.”

스님은 법문의 마지막을 선서인 <선림보훈(禪林寶訓)>에 나오는 지도자의 품성 10가지를 전해주는 것으로 택했다. 즉 자신을 먼저 바로 세워라, 진실과 신뢰감을 잃지 말라, 자신의 총명을 과신하지 말라, 대중의 이목을 중시하라, 어렵다고 도피하지 말라, 단점만 보지 말고 장점을 보라, 자비·지혜·용기를 갖춰라, 덕과 은혜를 쌓아라, 인물선택을 잘 하라, 때와 처지에 맞게 행동하라는 옛 선지식들의 가르침을 들려준 것이다.

“이 대표. 자 이것좀 봐봐, 내가 청와대에 있는 불자들로부터 명함을 많이 받았지.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 많이 달라지긴 했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어 걱정스럽긴 하지만, 종교편향의 핵심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 같은 사람이 하는 법문을 들으러 부담없이 찾아온 것을 보면 말이지, 허허.”

한 주먹 가득 명함을 살펴보며 스님은 미소를 짓는다. 이제 곧 은해사 주지에서 물러나 초야로 돌아갈 스님에게 오늘의 청와대 법문이나 며칠 후에 있을 은해사 개산대재가 주지로서는 마지막 행사다. 오랜 사판승 생활에서 물러나 수행승으로 돌아갈 스님에게는 하나하나 남아 있는 일정이 기억에 남는 것일 수밖에 없다.

“개산대재 법문의 말미에서 나는 이제 주지에서 회주로 되돌아간다고 불자들에게 인사를 할 생각이야. 회주로서 수행에 더 비중을 둘 생각이고, 또 평생 원력으로 해오던 통일불사는 계속해야겠지…”

오랜 주지직을 정리하고, 또 기타 맡고 있는 직함들도 정리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스님의 표정에서 연설무대에 서서 마치 사자처럼 ‘누구누구는 물러가라’라고 포효하던 때의 강렬한 표정은 도무지 찾아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