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전 퇴락한 미황사를 중창하겠다며 불사금 마련을 위해 청산도로 떠나던 군고단(풍물패) 40여명을 태운 배가 청산도 앞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침몰했다.

당시 미황사에 주석하던 스님은 모두 합쳐 40여명, 청산도 앞바다에 수장된 스님의 수 또한 40여명이었다. 해남 사람들은 스님들을 잡아먹은 부정(不淨)한 절이라 하여 미황사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터부가 많은 바닷가 사람들인지라 그 이야기를 입에 담는 것조차 꺼려했다. 미황사 스님 대부분이 풍랑에 목숨을 잃은 후, 미황사는 그야말로 땅 끝에 버려진 고찰이 되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뒤, 미황사에는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989년 지운 스님과 1992년 현공 스님이 잇따라 주지에 취임한 후, 미황사의 옛 건물들은 새 단장을 했고, 옛 건물터에는 새롭게 지어진 건물들이 하나둘씩 자리잡기 시작했다. 20여동의 건물들이 제자리를 잡아갈 무렵, 미황사에는 ‘금강’이라는 법명을 가진 젊은 스님이 새 주지로 왔다.

젊은 시절부터 광주에서 청소년 포교를 해오던 금강 스님은 미황사에 한문학당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어린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고, 동시에 불교문화와 사찰법도를 함께 전하는 이색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전국 최초로 만들어진 미황사 한문학당은 몇 년새 큰 인기를 끌어, 일찍 신청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어 못들어갈 정도가 되었다. 전국에 ‘한문학당’을 내건 사찰 어린이 프로그램이 여기저기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금강 스님은 2002년 월드컵 당시 전국에 템플스테이 사찰을 공모하자, 선뜻 지원을 했다. 당시 중앙의 템플스테이 담당자들은 콧방귀를 뀌었다고 한다.

“아니, 스님, 누가 땅끝까지 갑니까.”

“외국인들이 저 멀리서 한국까지 왔는데, 땅끝이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 그냥 해볼랍니다.”

그렇게 비웃음을 들으며 시작했던 미황사 템플스테이는 매년 4000명이 다녀갈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전국에서 골굴사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금강 스님은 템플스테이에서 불교를 맛본 불자들이 수행의 맛까지 느낄 수 있도록 ‘참사람의 향기’를 시작했다. 7박8일간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하루이틀 참선을 배운 초보불자들이 좀더 깊이있는 생활수행을 실천할 수 있도록 1주일간 수행에 전념하도록 만든 프로그램이다. 템플스테이까지는 놀러온 관광객들이지만, 참사람의 향기는 그들을 불자로 만드는 필수과정이라는 것이 금강 스님의 지론이다.

이밖에도 미황사의 부처님오신날을 동네잔치로 만든 ‘어르신 노래자랑’, 지역 음악가들을 초청해 여는 ‘작은음악회’, 보물 1342호로 지정된 미황사 괘불을 걸고 펼쳐지는 야단법석 ‘미황사 괘불재’ 등도 미황사를 대표하는 프로그램들로 꼽힌다.

미황사의 새로운 변화 중 하나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문화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늘 ‘새로운 꿍꿍이’를 하는 금강 스님을 취재차 찾아간 기자들이 문화인들에게 미황사 이야기를 전하고, 이들이 또 다른 知人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미황사는 문화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또 많이 찾는 절이 되었다.

이제 ‘땅끝마을’ 하면 미황사가 함께 떠오를 정도로 유명해진, 남도의 아름다운 절 미황사가 10월 18일 토요일 오후 1시에 120년만에 중창불사 회향을 기념하는 행사를 연다.

20여년에 걸쳐 약 20여채의 건물들을 복원, 개보수하고 산중사찰의 모델로 꼽힐만큼 미황사 중흥에 성공한 것을 자축하는 자리다.

괘불재, 군고단 천도의식, 천인 천불 그리기, 양은전의 들꽃그림전, 인도미술전, 정은하의 조각보 전시, 작은 음악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1박 2일에 걸쳐 진행된다.

특히 18일 오후 6시부터 열리는 작은음악회에는 ‘미황사군고 청산에서 돌아오다’는 타이틀로 120년전 청산도 앞바다에서 사라진 미황사군고단의 풍물공연을 재연하는 행사가 펼쳐진다. 문영숙 씨의 춤과 소리꾼 박동매, 박종숙 씨의 노래로 펼쳐지는 이 공연은 작은음악회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우스타드 우스만 칸, 가이카드 프라모드 프라바카, 프라카쉬 칸다사미 등 인도음악인들이 들려주는 인도 전통음악도 땅끝의 가을을 더욱 그윽하게 무르익게 해 줄 것이다.

이밖에도 시인 김경윤 씨의 ‘중창불사서시’, 소리꾼 박양희 씨의 ‘여는 노래’, 소리꾼 이병채 씨의 판소리, 심진 스님의 ‘산사의 노래’ 등도 마련돼 있다.

땅끝에서 돌아서면 시작이 된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그래서 자살을 꿈꾸는, 절망에 빠진, 혹은 새로운 도전을 원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 이들이 땅끝으로, 그리고 미황사로 찾아간다.

120년만에 중창불사를 회향한 미황사, 서울에서 보면 미황사는 땅끝이지만 미황사에서 바라보면 이곳에서 시작된 한문학당, 참사람의 향기, 작은음악회가 점점 더 북방한계선을 넓히며 위로, 위로 올라오고 있다.

2008년 가을, 달마산이 병풍처럼 쳐진 미황사를 찾은 이들은 또 무엇을 시작하게 될까.

“이 절에 들어오는 사람들 극락세계에 오듯 평화롭고 행복하여지이다. 저 멀리서 '미황사' 이름만으로도 용기와 희망을 주는 곳이 되어지이다. 꿈의 수행처,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가꾸어가겠습니다.” -금강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