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예수-우주적 그리스도에겐 배타성 없는데…

“영원히 함께 갈 수 없는가. 함께 할 길은 정녕 없겠는가. 첫 번째 예수인 역사적 예수에게도 배타성은 없고, 두 번째 우주적인 그리스도에게도 배타성 보다는 보편성이 있었는데, 한국 기독교 안의 이 견고한 배타성은 어디에서 왔는가. 역사적 예수에도 우주적 그리스도에도 없는 배타성이 어떻게 생겨났는가.”<이정배 감신대 교수·토론사회>

‘한국기독교의 배타주의-근원과 현상’을 규명하는 학자들의 토론이 지난 9월 30일 오후 기독교회관에서 3시간 동안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한국 기독교의 유별난 배타성의 근원과 현상을 진단하고 그 치유방안을 모색한 이번 세미나는, 기독교 안의 대화가 어쩌면 더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아이러니한 현상에도 불구하고 시종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돼 나름의 성과를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창배 교수는 “한국 기독교가 정치·경제적으로도 지배적 지위를 얻고 난 이후 정말로 오만한 의식이 생겨났다”며 “경제에서의 지배적 이득을 취득하고, 날로 그 기득권을 강화하는 지금까지의 배타성을 토대로 한국 기독교는 정당 건설 등 더 큰 기득권을 추구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 등에 대한 우려 등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토론의 서막을 열었다. 또한 “예수의 입장과는 달리 혹시 바울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면 어떨까 생각해봤다”며 발제 및 토론자들에게 열린 시각에서의 토론을 요청했다.

문자주의적 성서 이해-대속신앙에서 배타적 특성 나와

기조발제에 나선 서강대 길희성 교수는 “기본적으로 기독교가 배타적 특성을 갖고 있고, 특히 한국 기독교의 강렬한 배타성은 미국 근본주의 신앙의 문자주의적 성서이해와 대속신앙, 즉 예수를 믿지 않고 도덕이나 인간의 노력으로 죄를 씻을 수 없다는 십자가 신앙이 더해지면서 더욱 강화되었다”고 진단했다. 길 교수는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지, 예수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개신교 신앙의 구호는 자칫 이런 근본적 사실을 간과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그 어떤 교리도 사상도 아니며,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나 인간의 믿음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한국 기독교가 편협한 배타성을 극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이성을 중시해온 서구 신학의 전통을 충실히 이어 반지성주의를 청산할 것 ▲획일화되고 단순화된 근본주의 성서 신앙과 복음 이해에서 벗어나서 2000년 그리스도교 전통 속에 담겨진 풍부한 신학적 다양성과 깊은 영성의 전통들을 배울 것 ▲그리스도교의 울타리에 갇힌 하나님을 해방시킬 것 등을 제안했다.

배타주의 자체에 대한 심층적 성찰만이 해법

성공회대 이숙진 교수는 ‘기독교는 나와 너를 아우르는 종교가 아니라 끊임없이 타자를 만들고 그 타자에 대한 배타와 억압을 행사해온 종교가 아닌가’라는 전제로 발제에 나섰다.

‘한국 교회사에 나타난 기독교 배타주의’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폭력적 배타주의라는 종교현상은 기독교의 본성이 아니다”라고 지적하고, “십자군 전쟁이나 마녀사냥 등 역사 속에 등장한 폭력적 배타주의는 기독교가 특정한 사회문화적 환경과 만나면서 발생한 병리적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이숙진 교수는 “한국기독교는 선교 초기에 서구 근대문명을 선교의 도구로 삼았으며, 근대문명의 물질적 성과를 선교의 방편으로 삼아 개신교에 ‘문명의 종교’라는 후광을 입혔다”고 전제하고 “한국 개신교의 역사는 구습타파, 우상타파, 타종교 타파 등 끊임없이 자타인식의 바탕아래에서 타자화 전략으로 점철된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이처럼 무수한 타자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배제-억압하는 개신교 배타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으로는 개신교의 위기는 배타주의 자체에 대한 심층적 자기성찰을 통해서만 그 극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며, 자신의 경험을 절대화하고 나만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독선적 자의식을 성찰대상으로 삼는다면 배타주의적인 태도의 극복은 불가능한 것만을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계간 소통의 기회 늘리는 것이 장기적 해결책

이어 불교계를 대표해 발제에 나선 중앙승가대학교 유승무 교수(사회학)은 ‘종교사회적 관점에서 보는 기독교 배타주의’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종교편향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그동안 관행화 일상화된 편향적 태도가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함께 좀 더 공세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유 교수는 “공공의 역할을 담당해야 할 국가나 정부가 종교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기독교가 정치와 경제 권력까지 갖게 되면서 종교편향→배타→압박의 순으로 이웃종교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국가와 민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불행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 교수는 “종교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종교계가 종교적 신념의 노선을 따라 갈라진 균열을 일상적으로 봉합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치 경제 등 종교 바깥의 해결책이 일시적 해결책이라면 사회구조적 균열을 봉합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사회문화적 통합성을 유지함으로써 근원적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장기적인 해결책”이라고 덧붙였다. 유 교수는 이를 위해 “종교인들간의 대화 등 종교계가 스스로 소통의 기회를 더욱 활발하게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울이 공연히 예수의 메시지 복잡하게 만들어”

기조강연과 발제 발표에 이어 길희성 교수는 기조강연에 대한 부연 설명을 통해 “예수님의 메시지는 안 그랬는데, 예수의 메시지를 믿는 종교가 메시지를 절대화하면서 배타성이 생겨났다. 갈릴리 예수의 정신으로 기독교 운동이 새롭게 전개돼야 한다. 현대 기독교는 새로운 정신으로 거듭나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길 교수는 “예수와 바울의 문제는 대단히 핵심적 문제이고 많은 토론이 필요하지만, 간략히 말한다면 바울은 예수의 메시지를 공연히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저는 예수의 메시지와 바울의 메시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바울은 공연히 어렵게 만들었다고 보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믿음으로 의로움을 받는다는 등 대석신앙을 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그것은 예수님 사상과 반대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길 교수는 “조심스런 문제이지만 신학적으로 예수님의 의미는 대고(代苦), 즉 대신 고통을 받는다는 의미라고 본다. 예수가 모든 죄를 다 대신 받았다는 이야기는 저는 믿지 않는다. 예수의 죽음을 대가로 해서 인류의 죄를 용서했다는 식의 이론은 다 불필요한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문제라면 나는 예수교 신자가 될 생각이 없다. 이것은 소신껏 말씀드린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른바 ‘포괄주의’에 대해서도 길 교수는 “신앙적 입장에서 다원주의를 생각하면 포괄적 다원주의를 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며 “기독교인은 포괄적 입장에서 불교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가톨릭은 적어도 포괄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종교 간의 문제에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개신교는 포괄적 입장에도 미치지 못했다. 거꾸로 됐다. 가톨릭이 더 보수적인 것이 정상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언론의 비상한 주목을 받은 가운데 열린 이날 학술행사는 종교 간의 대화 못지않게, 기독교 안에서의 대화도 매우 중요하다는 또 하나의 공통분모를 도출한 채 열띤 토론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