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이 피기에는
별하늘 너무도
아득하였다
촛불처럼 고이 모은
꽃심지 한마음을
누구를 향해 받들까
조심스러웠다
김돈식 詩 <목련이 피기에는>
빛의 화가 방혜자 씨가 이번에는 꽃을 들고 나타났다. ‘빛을 입은 꽃’은 詩로 문자로 형상화됐다. 아름답지만 왠지 아득하게 느껴지던 방 씨의 작품이 훨씬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녀의 빛은 꽃이며, 空이며, 생명이며, 영혼이기도 하다.
샘터 갤러리가 개관 1주년 기념 초대전으로‘방혜자 ․ 김돈식 - 꽃과 빛’전시회를 9월 30일까지 개최한다.
재불작가 방혜자 씨는 수십여년간 순수한 빛의 숨결을 그려온 작가이다. 서울 미대를 졸업한 직후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간 방 씨는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한국의 빛으로 사로잡았다. 프랑스의 최고작가로 꼽히며 프랑스, 한국, 독일, 미국, 캐나다, 스웨덴, 벨기에, 스위스,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110여 회에 이르는 개인전과 단체전을 가져왔지만 그녀는 매해마다 한국을 찾아왔다. “이곳이 바로 나의 영감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조국이기 때문”이었다.
고독한 프랑스에서의 삶은 그녀의 작품세계를 오히려 풍요롭게 만들었다. 자신의 내면에 대한 탐구는 우주를 관통하는 빛의 세계, 여래장 세계에 대한 깊은 사색으로 이어졌다.
김돈식 詩 <그림 한 폭>
인생은 그림 한 폭
잘 그렸건 못 그렸건
보기 좋건 흉하건
또 길이 남건 말건
내 인생 내 멋대로
그려놓는 것
그녀는 프랑스에서 그녀의 삶의 두 축을 그림과 불교라고 소개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그녀는 한국 고승들의 선어록을 직접 불어로 번역해 자신의 그림과 함께 시화집으로 엮어내기도 했다.
그녀의 작품을 관통하는 빛은“영원으로 통하는 길이자 붓다의 자비심”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녀의 작품을 시로 표현한 김돈식 시인은 그녀의 외사촌 오빠이다. 어린 시절 남다른 감수성을 지닌 방혜자에게 사촌 오빠는 사물을 보는 방법과 자연에 귀 기울이는 것을 알려준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그 시절 냇가에서 누이에게 조약돌을 주워 주며 놀던 꼬마 시인은 50여 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꽃을 가꾸며 동심을 잃지 않은 노 소년이 되어 누이와 다시 만났다.
어린 시절 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던 미래에 대한 소박한 꿈들은 방 씨가 61년 파리로 떠난 후에도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영글어 가고 있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된 소녀 화가와 생업을 이루면서도 평생토록 시 쓰기를 그치지 않았던 소년 시인의 아름답고 싱싱한 유년의 모습이 이번 전시에는 그대로 살아 있다.
“시인은 시를 통해 만나고, 화가는 그림을 통해 알게 됩니다.”
이미 고희를 훌쩍 넘어버린, 세월의 아름다운 흔적들이 곳곳에 배어 있는 두 거목의 만남은 그래서 더욱 뜻 깊은 나이테처럼 느껴진다.
이번 연휴기간 동안 대학로를 들르게 되면, 소년의 꽃과 소녀의 빛을 꼭 한번 만나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