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해(知解), 즉 수선납자가 알음알이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선원에서 문자를 접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했던 한국 선문에 조사어록 등 선 관련서를 공부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월암(月庵) 선사의 주석처인 경남 함양의 지리산 벽송사가 주도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제1회 선회(禪會)를 연데 이어 2년 만에 연 제2차 선회에는 당초 모집 정원으로 정했던 50명을 훨씬 넘는 120여 명의 제방의 납자들이 몰려들었다. 9월 6일 열린 선회 벽송사 선회 입재식에는 사찰의 수용한계로 인해 다소 무리를 감수하면서 90명의 방부를 받아들였다. 30여 명의 납자들은 공부의 기회를 다음 해로 미뤄야만 했다.

청강을 신청한 10여 명의 납자 등을 포함, 모두 1백여 명의 스님들은 이날 입재식 고불문을 통해 “선교겸수(禪敎兼修)의 도량인 벽송사에서 제불보살님과 역대 조사님의 혜명을 계승하여 견성성불 요익중생의 원력을 다지고자 이곳에 모였다”면서 “안으로 수행과 교화의 약화와 밖으로 종교편향의 정치로 중차대한 위기에 직면한 한국불교를 벽송선회 정진의 공덕으로 극복하겠다”고 다짐했다.

선주(禪主) 월암 선사는 환영사를 통해 “앞으로 21일간 간절한 마음으로 참구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큰스님의 법문과 선이론 가르침을 통해 이론과 실천을 겸비하기 바란다”며 “간화선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의 공문은 선교겸수의 전통을 되살릴 때 간화선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이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월암 선사는 또 “벽송사 선회를 통해 우리의 자랑인 간화선을 활발발하고 생명력 넘치며 역동적인 수행으로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

이어 덕숭총림 수덕사 수좌 설정 선사는 법어에서 “무조건 참선 공부를 한다고 밀어붙이듯이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바로 알고 닦아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 선사들의 가르침을 모르고 공부하는 것은 마치 나침반 없이 항해를 하는 것과 같다. 그동안 한국 선문은 무조건적 정진을 강조하며 지내온 경향이 없지 않았다. 사교입선(捨敎入禪)이라는 것은 책을 무조건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다. 문자와 지해에 빠지지 말라는 경책이지, 공부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도를 익히기 위해 경을 보아야 하고, 선을 잘하기 위해 조사어록을 봐야 한다”며 선교겸수에 힘을 실어주었다. 설정 선사는 특히 “오늘 선회를 열어 바르게 공부하는 가풍의 재현이 이곳 지리산 벽송사에서 시작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같은 벽송사 선회에는 설정 선사 이외에도 한국 선문을 대표하는 고우, 혜국, 영진, 지환, 설우, 월암, 수불 선사와 선학자 법산 스님 등이 강사로 초빙돼 선교겸수의 가풍진작이 한국선문의 중대한 흐름으로 자리매김될 것임을 보여줬다.

선교겸수의 간화가풍 진작의 흐름은 벽송사 이외에도 몇몇 고명한 선사들에 의해 몇 해 전부터 가시화됐다. 고우 선사가 서울에서 <서장>과 <선요> 등 선 관련서를 꾸준히 강의해오고 있고, 백양사 운문선원장을 지낸 일수 선사도 서울 성북동 법천사 운문선원에서 달마 혈맥론 등 선 관련서를 강의해 재가 선납자들로부터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같은 흐름과 관련, 조계종 교육원도 오는 10월 24∼25일 봉화 축서사에서 ‘선원장과 선학자의 대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종단차원에서 실참을 중점으로 해온 수행현장의 선 지도자들과 대학에서 선학을 연구한 학자들이 모여 선교겸수, 이론과 실참을 겸비한 간화선 가풍의 진작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은 한국 선문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벽송사는 이른시일내에 재가 선수행자를 위한 선회를 열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돈오선을 전공해 베이징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등 선의 이론과 실참에 두루 정통한 월암 선사의 제창으로 시작된 한국 간화선풍의 변화가 궁극적으로는 한국 간화선의 대중화와 세계화라는 지향을 현실화해낼지 한국 선문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한껏 고조되고 있다.

지리산 벽송사=이학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