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불교라는 말은 불교가 장례식이나 기일 법회 등을 전문으로 한다는, 다소 비판과 야유가 섞인 표현이다. 일본불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불리던 장례불교가 최근에는 한국불교를 가리키는, 엄밀히 말해서 한국불교를 비판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불교의 주 수입원이 천도재 등의 의식이 되면서 사찰마다 각종 재의식이 넘쳐나는 현실 때문이다.
이러한 불교의 현실을 되짚어보고 진정한 불교의식의 의미를 모색하는 세미나가 열려 화제가 되고 있다.
9월 5일 동국대 다향관 세미나실에서 ‘생사의례(供養)의 문화비교 연구’를 주제로 열린 세미나는 한국과 일본 불교 속에 나타난 죽음과 장례의식, 그 속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자리였다.
이날 세미나에는 야마가타 대학 마츠오 겐지 교수, 정우서적 이성운 사장, 동국대 김호성 교수 등 세 명의 발표가 이어졌다.
‘일본 중세에 있어서 죽음과 불교’를 발표한 야마가타 대학 마츠오 겐지 교수는 “죽음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둔세승들의 활동이 일본 중세에 불교의 생사관이 일반에게 널리 퍼지게 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마츠오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에서 승려들이 보편적으로 장례의식을 담당하게 된 것은 2차대전 이후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승려, 그 중에서도 관승들은 인간의 죽음을 터부시했고 따라서 절에서 장례식을 담당하지 않았다. 대신 관승체계에 포함되지 않은 둔세승들이 장례를 주로 담당했다.
마츠오 교수는 “둔세승들이 장례의식에 종사한 것은 그들이 더러움의 터부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이라며 “죽음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둔세승들에 의해 일본 중세의 생사관이 일반에게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즉 죽음의 공포에 떨던 사람들에게 호넨은 염불하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각종 사회봉사활동을 펼쳐 보살승으로 불리던 에이존이 왕생론, 성불론을 펼치면서 일본불교의 생사관이 서민들에게 널리 퍼지게 됐다는 것이다.
마츠오 교수는 “중세의 둔세승들이 이 세상에서 죽음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함으로써 민중들은 비로소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우서적 이성운 사장(동국대 불교학과 박사과정 수료)은 시식의(施食儀), 즉 영가를 천도하기 위해 밥을 베푸는 의식이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지를 고찰하는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이성운 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시식은 대승보살의 실천행을 의식으로 만든 것으로 무변중생서원도(無邊衆生誓願道)의 일환이다. 시식의를 살펴보면 (有力者) 布施→聖化/加持→施食(=유력자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사회복지 실현의 한 행태이자 자타일시 성불이라는 불교수행의 목적을 구현하는 한 방법이라는 것이 이 사장의 설명이다.
이성운 사장은 “이러한 대승불교의 의례가 한국식으로 정착된 것이 국가수륙재와 영산재의식, 선가 시식의문 등”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같은 불교 시식의례가 19세기 이후 지나치게 형식화되고 분화되면서 의문 각구의 이해와 인식이 본의와 멀어지게 된다.
이 사장은 “이처럼 형식으로만 남게 된 불교의례가 불자들과 불교의식의 괴리로 이어졌다”며 “시식의례와 같은 불교의식이 형식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한문을 거의 배우지 않은 한글세대들에게 한글로 번역된 시식의문을 읽도록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국대 김호성 교수는 ‘불교화된 효 담론의 해체’를 통해 불교의 효가 중국의 유교와 인도의 힌두교와 어떤 연관을 갖고 있는지, 어떤 차이점을 띠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김 교수는 『바가바드기타』에서 보이는 아르쥬나와 크리쉬나의 대화를 통해 계급의 의무가 가족의 법도보다 더 우위에 있음을 들어보이며 “인도-힌두교의 효/다르마에 비해 중국-유교의 효가 갖는 의미가 훨씬 더 강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동일성 역시 존재하는데, 그것은 가족중심주의로서의 효의 강조가 가부장제와 결부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인도 힌두교의 경우 그것은 가문의 계승과 조상에 대한 봉제사(奉祭祀)의 강조에서 확인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불교에서는 효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김 교수는 “불교는 동체대비(同體大悲)를 말하면서 가족중심주의를 떠나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인도 불교의 효는 연기보다 무아보다 삼법인보다, 사성제 등의 근본교리 그 어느 것보다 더 크고 앞서는 가치라고 말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인도-=힌두교의 다르마 윤리와 중국-유교의 효윤리는 가부장제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불교에서의 효는 가부장제의 틀 속에서 논의되는 개념이 아니다. 불교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인간 해방을 지향하는 전통이기 때문이라는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최근 일본과 한국의 불교교단은 죽은 자를 팔아서 장사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사찰의 역할 중 상당 부분이 노년층 신도들의 장례나 천도재, 예수재 등 천도의례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조선시대 불교가 살아남은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불교가 민중들의 관혼상제 중 상례와 제례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숭유억불의 시대에서도 불교가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과 삶을 아우르는 유일한 종교가 불교였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중세 승려들이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도 이들이 죽음이라는 두렵고 불편한 문제들을 해결해주었기 때문이었다.
현재까지 전해져오는 불교의식들은 생사해탈의 문제들을 해결해온 중세 불교인들의 수행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상업적 목적으로 이루어질 때, 불교의 본질을 흐리는 장사행위가 될 때에는 장례불교라는 조롱어린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물론 불교는 장례의식을 위한 종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의례의 상당수가 장례와 연관돼 있다는 점은 불교에서 죽음이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죽음은 삶을 조명하는, 그리고 생사의 문제를 조명하는 가장 좋은 거울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불교의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전승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늘날 한국과 일본의 불교계가 당면한 화두임에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