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사 안의 빈 공간들이 특정 교회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미디어붓다가 처음으로 제보를 받은 곳은 지하철 2호선과 5호선의 환승역인 합정역. 기자가 처음 방문했던 8월 30일 합정역 개표구 앞쪽에는 사무용칸막이로 구획되어진 작은 공간에 서현교회쉼터라는 명판이 걸려있고 ‘하나님은’으로 시작하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합정역 서현교회쉼터는 약 15년전에 만들어졌으며 매주 2회 정도 전도팀이 파견돼 음료수를 나누어 주는 등 꾸준히 전도활동을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그 후 수차례 합정역 관계자와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역 직원들은 “우리는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 역장님과 해야하는데 역장님이 오늘 휴무다, 창립일이다라는 말로 답변을 회피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공공기관의 종교편향 문제를 의식한 탓인지, 이들은 극도로 발언을 아꼈다.

3일 뒤인 9월 2일 겨우 인터뷰를 하게 된 합정역장은 “역측에서는 쉼터를 교회 선교목적으로 운영하지 못하도록 방침을 정해놓고 있기는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뒤이은 발언은 그 방침과는 정반대의 내용이었다.

합정역장은 “교회측에서 얼마전 종교적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게시하기를 원했는데 내용이 종교적 색채가 강해 고민했지만 교회로부터 많은 후원을 받은 입장에서 쉽사리 거부하지 못했다”며 “혹시 문제가 발생하면 철거하기로 하고 게시를 허가했다”고 밝혔다.

또한 쉼터를 개설한 서현교회 측은 “시민들의 편의를 위한 순수한 목적의 봉사활동 영역일 뿐”이라며 “선교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쉼터 담당 목사는 “합정역 측에서 오히려 벽을 세우길 요청하는 등 쉼터를 더 꾸미길 요청하기도 했지만 오해를 살 수 있어 하지 않았다”며 “비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보아 오해를 일으킬 점을 지적해주면 고치겠다”고 말했다. 이어 담당 목사는 “오해를 일으킬 만한 교회명의쉼터 알림판과 종교적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바로 철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디어붓다의 취재 사실이 알려진 직후 합정역 쉼터에 게시된 현수막과 교회쉼터명판은 철거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하철 역에 마련된 교회의 쉼터는 합정역뿐만이 아니다. 신도림역, 문래역, 잠실역 등 서울 곳곳의 지하철 내에 교회 쉼터가 설치돼 있다. 이들 중에는 말 그대로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곳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교회를 홍보하는 곳도 다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래역장은 “운영주체에 상관없이 쉼터가 시민들의 편의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종교단체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가 단체의 홍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개신교의 지하철 선교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개신교계의 지하철 선교는 서울 지하철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개신교에서는 1985년 서울지하철 전 구간 완전개통당시 김재명 초대사장의 요청으로 개통기념기도회를 열었으며 서울지하철선교협의회를 결성해 조직적으로 지하철내 선교를 하고 있다. 협의회 소속 교회들은 인근 지하철역과 자매결연을 맺고 선교를 위한 각종 후원을 하고 있으며 현재는 교통문화선교협의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교통문화선교협의회 홈페이지에는 “수도권의 300여 지하철역과 자매결연을 맺은 교회들이 주축이 되어 지하철 이용승객 1천만 시대를 준비하는 비젼을 제시할 것이며, 기독교가 국민의 종교로 자리잡아 가도록 사회의 지팡이 역할 해 나갈 것”이라고 설립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또 한가지 논란이 되는 점은 개신교 신자로 구성된 지하철공사 직원들의 모임인 서울메트로신우회 사무실에 교통문화선교회가 입주해 있다는 점이다.

서울지하철공사는 각 종교별 신자모임들에게 별도의 사무실을 지급해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메트로신우회 사무실은 지하철공사의 기독교신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교인들의 선교모임인 교통문화선교회 등 외부단체까지 무상 입주해 있다.

서울메트로 측은 신우회 사무실에 타 단체가 입주해 있는 것은 알지 못했다며 외부단체가 사무실을 사용하는 것은 이의 제기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메트로 지침에 의하면 외부단체가 무상으로 사무실을 제공받는 것은 금지사항이다. 따라서 선교단체의 지하철역내 사무실 사용은 위법에 해당된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에서는 종교편향적인 지하철내의 특정종교 선교문구, 시설물들에 대해 지난 5월 지하철공사에 공문을 보내 종교중립을 요청한 바 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이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쉼터를 개설하고 선교활동을 펼쳐온 특정교회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하철 선교는 너무도 당연한 ‘하나님의 사역’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민들의 쾌적한 삶을 책임져야할 지하철 역사 측이 기독교의 종교강요 행위를 방조했다는 점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보다 시민이 더욱 우선시돼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의 작은 쉼터에서 쉬는 것보다 지하철 곳곳에서 ‘예수천국’을 부르짖는 이들을 만나지 않는 것이 시민들에게는 더욱 큰 휴식임을 지하철 관계자들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