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관통하는 비좁은 도로를 곡예를 하듯이 차를 몰아 당도한 해창 저수지. 눈앞에 펼쳐진 가시연과 마름 등으로 뒤덮인 저수지는 마치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늪을 떠올리게 한다. 제방을 따라 다가가자 방석을 펼쳐놓은 듯 가시연이 저수지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따금씩 쇠백로가 가시연과 마름을 헤치며 먹이를 찾고 있는 광경이 한가롭다.
2005년 9월 10일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해창리 해창저수지에서 국내 최대규모의 가시연 서식지가 발견됐다는 뉴스가 전국에 타전됐다. 이후 이곳에는 연을 연구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들,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붐볐다. 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고,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이곳의 신비한 장관을 전했다.
8월 31일 강진 백련사에 들렀다가 끽다도반들과 함께 해창 가시연지를 찾았다. 처음 찾는 곳이라 마음도 설렜지만 혹시 꽃이 다 지지는 않았을까 조바심도 들었다.
이곳은 가시연 집단 군락지로는 전국에서 가장 넓은 규모로 알려져 있다. 저수지 가운데 1만평 정도는 가시연으로 덮여 있고, 마름류 등과 섞여 있는 것을 더하면 족히 2만평은 넘는다. 일부러 구겨도 쉽지 않을 만큼 심하게 구겨진 잎사귀들은 지름이 족히 1~2m는 넘을 듯싶다. 만나기 쉽지 않은 초대형 연잎이다.
험한 세상에 홀로 나와 스스로를 지키려는 듯 연방석(연잎이 방석 모양이어서 생긴 이름)에는 곳곳에 가시가 돋았다. 혹여 개구리라도 모르고 폴짝 뛰어오르면 몹시 따가울 터이다. 거대한 잎을 뚫고 삐죽삐죽 고개를 내민 꽃봉오리들. 잎 사이를 뚫고 올라오는 것이 가시연의 특징이기도 하다.
예전엔 흔한 식물이었지만 지금은 멸종위기
가시연꽃은 좀처럼 그 자태를 드러내지 않는다. 7~9월에 피는 보랏빛 꽃은 낮에만 벌어져 있고, 밤에는 오므린다. 간혹 낮에도 벌어지지 않는 폐쇄화(閉鎖花)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래저래 가시연꽃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가시연은 예전에는 집 근처의 작은 연못 어디서나 볼 수 있던 흔하디흔한 식물이었으나 어느샌가 우리 주위에서 사라져 없어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환경부에서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해 보호할 만큼 그 개체수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가시연은 자연환경보전법에 의해 환경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급(기존 환경부 보호종)으로 보호되고 있는 종이다. 지금은 담양 탄금저수지를 비롯해 함평, 나주, 경남 창녕 우포늪, 전북 고창, 경북 구미, 경기 화성, 충남 홍성 등 전국 10여 곳에서 볼 수 있을 정도다.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와 인도 북부, 중국, 대만, 일본에 분포하고 있어 ‘동아시아 특산’인 셈이다.
철새나 동물 배설물로 옮겨진 가시연씨 자란듯
3만1천여 평의 해창 저수지는 지난 1968년 해창만을 가로막아 조성한 간척지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곳에 가시연이 자란 것은 채 5년여 안팎일 것으로 추정된다. 인근에 가시연 군락을 찾아보기 힘든데 이곳에 돌연 가시연이 자란 것에 대해 잘 모른다. 가시연과 마름이 뒤덮이면서 이곳을 찾던 낚시꾼들은 크게 줄었다. 대신 저수지에는 쇠백로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아마도 이곳까지 가시연이 오게 된 이동경로는 대해 철새나 동물들의 배설물에 의해 가시연 씨가 옮겨졌을 가능성이 크다. 씨앗에 의해 번식하는 가시연은 종피가 매우 단단하며, 발아까지 휴면기간이 있어 생육조건이 충분히 조성됐을 경우에만 싹을 틔운다. 특히 50년 만에 발아한 경우도 있단다.
해창 저수지 일대에는 물닭류와 쇠백로 등 20여종의 조류, 마름 등 수생식물과 곤충 등을 함께 볼 수 있어 천혜의 생태학습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이곳 해창 저수지의 가시연들은 최근 또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몇 해 전부터 누군가가 저수지 한켠에 홍련과 백련을 심어놓은 것이다. 이들이 세력을 넓히고 있다. 가시연보다 먼저 자라나 그늘을 지게 만들어 가시연들이 마음놓고 자랄 환경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곳에 일반 연꽃이 심어진 것은 꽃부터 뿌리까지 버릴 게 없어 농가의 새로운 재배품목으로 등장한 연꽃들에 비해 경제성이 없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와 가시연꽃이다! 시인의 외마디에 일행들 환호
와 가시연꽃이다! 연방죽가를 주섬주섬 헤치던 일행 중에 지리산 악양 동매마을에 사는 박남준 시인이 제일먼저 소리를 지른다. 연지로 이어진 정체된 수로 가운데 옹아리를 틀고 비좁게 자란 가시연이 화려한 연꽃을 피워낸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 표정이 마치 산삼을 찾은 심마니의 얼굴이다.
온몸에 솟아난 가시만으로도 충분히 자기보호가 가능했을 텐데도 무엇이 두려워 저리도 잡풀로 자취를 숨기려했을까. 부족한 사진솜씨로 열심히도 가시연꽃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직 이 아름다운 자태를 <미디어붓다>의 독자들과 함께 하기 위함이다.
독자님들 중 혹 강진이나 장흥 근처를 지날 기회를 가진 분이 있다면 해창 저수지 가시연 군락지 방문을 강력히 추천한다.
곡예 하듯이 찾은 연지는 마치 한 편의 그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