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이 소실되었을 때, 그리고 숭례문을 복원하는 공사가 시작되었을 때 문화재계를 비롯하여 학계와 정관계 인사들은 숭례문의 가치와 역사, 의미 보존 및 보전 대책, 복원대책 등에 대한 엄청난 양의 말과 글을 쏟아냈다. 그러나 정작 숭례문을 처음 건립하였을 때 이를 총 지휘한 도편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입에 올리는 이가 없었다.
다만 지금은 고인이 된 사학계의 거장 김상현 교수(동국대)만이 숭례문 건립 대목의 이야기를 공사석에서 거론을 했을 뿐이다. 김 교수는 참으로 납득이 안 되는 일이라며, 남대문의 정식 명칭이 숭례문이고, 6백년의 역사를 간직한 국보 1호라는 것. 그리고 제액의 글씨는 양녕대군이 썼다는 설 등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많지만 정작 이 건물을 세운 건축가(도편수)의 이름을 아는 이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이런 탄식을 불교계 한 매체에 기고하기도 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1962년 숭례문 해체․수리 시에 발견된 1396년 10월 6일자의 상량문에는 당시의 대목이 법륜사의 각희(覺希)라는 승려였음을 명기하고 있다. 대목이 설계로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건설 현장의 총체적인 지휘와 감독을 맡았던 점에 유의하면, 각희는 뛰어난 건축 기술을 가진 승장(僧匠)이었을 것이라고 김 교수는 토로했다. 각희는 설계도 한 장 가지지 않은 채 한 치의 착오 없이 거대한 건물을 세워 낸 뛰어난 장인이었음이 분명하다는, 그러나 그에 관한 자세한 자료는 없고, 다만 그는 고려 말의 고승 나옹의 문인이었음이 알려지고 있을 뿐이라는 김 교수의 추정은 그가 우리 역사, 특히 불교사의 석학이기에 그 신빙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김 교수는 숭례문의 대목이었던 승려 각희가 잊혀진 것과 같은 사례는 수두룩하다고 강조하곤 했다. 조선의 신도(新都) 한양의 건설에 노역으로 동원되어 약 30년 간 고통 받았던 역승(役僧)들의 아픔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노역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하는 인부를 참형에 처했다는 기사 중에, 태조 3년 2월 15일, 서소문을 고쳐 짓도록 명하고 석장승(石匠僧, 돌을 다루는 승려 장인)의 머리를 베어 그 위에 메달아 나머지 사람들을 경계했다는 실록 기사를 예시하기도 했다. 실록에 따르면 태조 3년 12월 4일 종묘와 궁궐터의 첫 삽질 때부터 승려들은 그 현장에 있었다. 억불정책의 강도를 차차 더해가던 이 무렵, 조정에서는 승려들을 거의 마음대로 동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술과 솜씨가 능숙할 뿐만 아니라, 처자식이 없어서 공사에 전념할 수 있고, 농사철에도 쉽게 일을 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상현 교수의 기고문에 보면 당시 승려들이 얼마나 많이 동원되고 고역을 치렀는지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석공과 목공과 화공, 그 어느 분야도 승려들의 기술이 앞섰다. 도성의 건설 중에서도 큰 문루를 세우는 일은 대목수가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었다. 숭례문 건설의 대목을 승장 각희에게 맡겼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밝혔다. 동소문을 무학대사가 세웠다는 기록도 있다. 태조 7년 윤5월 16일 동대문 위에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바라본 왕이 관원에게 물었다. 공역을 그만 두게 했음에도 아직 역사를 시키는 이유가 무엇인가고. 일반 백성들이 사역에서 풀려난 뒤에도 승려들은 남아서 기와를 덮고 있었던 것이다. 1392년 평양성의 대동문 공사도 승려들의 몫이었다. 건축 기술은 승려들이 앞서 있었기에 동대문이나 남대문 같은 큰 건축물을 세우는 일은 이들의 힘을 빌려야만 가능했다.
와장승(瓦匠僧), 의승(醫僧) 등도 도성의 건설을 도왔다. 새로 건설한 도성이었지만 백성들의 집은 모두 초가였다. 즐비한 초가를 기와로 바꾸려고 노심초사한 승려가 있었으니, 곧 해선(海宣)의 경우다. 화재를 예방하고 왕경의 격조를 높이고 미관을 아름답게 하려는 노력이었다. 해선이 200여 명의 승려를 이끌고 태종 6년부터 시작했던 이 사업은 몇 년 만에 기와집이 반을 넘을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 태조 5년 도승통 종림(宗林)은 판교에 원(院)을 세워서 도성 건설로 오가는 사람들의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환자들을 돌보기도 했다. 의승 탄선(坦宣)은 세종 4년 도성에 구료소를 설치하고 승려 300명을 인솔하여 축성으로 병들고 다친 군인들을 치료하기도 했다. 이처럼 신도 한양의 건설에는 승려들의 땀이 스며있었다. 강제로 사역 당한 경우든 백성들의 고통을 들어주기 위해 스스로 나선 경우든 간에”
남한산성 개원사의 모습. 사진=문화재청 제공
망월사의 모습.
남한산성 전경.
남한산성 성곽길.
화염 속에 무너져 내리던 숭례문이 다시 세워지고, 복원된 숭례문의 부실시공 여부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현실에서도 숭례문을 처음 설계하고 시공을 지휘했던 각희 스님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이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남 이야기는 할 것이 없고 우리의 불교사를, 우리 역사에서 불교와 승려들이 담당했던 역사들에 무관심한 불교학계, 특히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갖지 않고 그저 문화재를 사찰운영의 매개로만 여기는 현재 한국불교 종단의 천박한 문화인식에 기인한 탓이 클 것이다.
6월 22일, 남한산성(Nanhansanseong)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고 있는 제3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정부간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 6.15~25.)는 현지 시각 6월 22일(일) 우리나라가 등재 신청한 ‘남한산성(Namhansanseong)’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에 따르면 남한산성은 17세기 초 비상시 임시 수도로서 당시 일본과 중국의 산성 건축 기술을 반영하고 서양식 무기 도입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군사 방어 기술을 종합적으로 집대성하고 있음을 높이 평가됐다. 또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 단계와 무기체제의 변화상을 잘 나타내며, 지금까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평가됐다.
문화재청이 마련한 종합계획은 △유산의 중장기적 종합 발전 계획 수립 △정기 모니터링 체계 구축 △세계유산 전문 연구·교류 기능 강화 △지역주민 참여 촉진 등을 통해 남한산성의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보호·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된다. 문화재청은 “이번 등재 결정은 품격 있는 ‘문화국가’로서의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고, 우수한 우리 문화재를 세계적으로 홍보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자평했다.
그런데 남한산성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고,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국격을 높였다는 방대한 분량의 보도자료와 전문가의 설명자료 어디에도 이 ‘자랑스운’ 남한산성을 쌓고 지켜온 주체들이 바로 의승군(義僧軍)이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다.
청나라의 침략 위협이 고조될 무렵인 1624년, 전국 팔도에서 올라온 의승군들이 팔도 도총섭 벽암 각성 선사를 중심으로 나라를 수호할 호국의 진지로서 2년 5개월에 걸쳐 본격적으로 남한산성을 쌓았고, 그 안에 자신들이 머물 사찰을 지었다는 사실, 이 사찰들에는 전국 팔도를 상징하는 온 나라 백성의 나라 사상 염원이 응집되어 있다는 사실, 그 사찰들의 이름은 개원사, 국청사, 남단사, 동림사, 망월사, 옥정사, 장경사, 천주사, 한흥사 등 전부 9개 사찰로 ‘남한구사(南漢九寺)’라고 불렸다는 사실에 대한 기록은 사찰 사진 두어장을 제시한 것 외에 언급이나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남한산성 개원사에 승군 본영을 두고 벽암 각성 선사는 도총섭으로 전국의 승려들을 관장하고 개원사를 본영으로 남한산성 수축의 임무를 수행했다는 점, 조선 팔도의 사찰이 건립되었고, 호국 의승군의 정신적 도량이 되었으며, 산성이 완공된 이후에도 승려 370여 명으로 승군을 조직하여 산성의 수비를 책임지게 했다는 점 등 남한산성과 관련한 매우 중요한 언급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누구의 탓을 거론하기에 앞서 입만 떼면 호국불교를 말하며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종단 지도부와, 갈수록 주변으로 밀려나는 불교학계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불교를 종교로 가진 엘리트를 폭넓게 양성하지 못한 불교계 전반의 책임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의 국보 1호 숭례문을 세운 이가 조선 최고의 대목장 각희 스님이라는 점, 다양한 축성기술과 서양식 무기 도입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군사 방어 기술을 종합적으로 집대성된 세계 유일의 산성 축성을 총지휘한 이가 벽암각성 선사이며 그 후로도 성을 지킨 주류가 의승군들이라는 것을 남한산성 세계문화유산 지정에 즈음하여 우리 불교계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