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대운하는 멀쩡한 땅을 토막 내는 반자연적 사업입니다. 국민의 대다수가 운하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사전에 나서서 막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대운하는 국토에 대한 무례이자 모독입니다. 우리 시대가 이를 마냥 지켜보고만 있다면, 현 정권과 함께 국토의 씻을 수 없는 범죄자가 될 것입니다”

교계 원로 법정스님이 20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열린 봄 정기법회에서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1500여 명의 신도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법정스님은 “도시화로 인해 인성이 메말라 흙과 생명을 무시하니 어린아이를 이유 없이 죽이는 흉악한 범죄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육신은 죽일 수 있을지언정 그 영혼은 무엇을 가지고도 죽일 수 없다”고 말했다.

법정스님은 “이 세상은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며, 국토에는 비단 바위와 흙만 있는 것이 아닌데, 근래에 생태계가 위협을 받고 있다”며 “지금도 허물고 파헤쳐진 국토가 신음하고 있는데, 새로 들어선 정권이 은밀히 추진하는 한반도 대운하는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끔찍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법정스님은 “물류와 관광산업을 위한다는 두 가지 경제논리 때문에 운하를 만들겠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현 정권에서 주장하는 대운하 건설의 두가지 근거는 사실상 속임수”라고 지적했다.

스님은 또 “운하는 세계적으로 사양화하는 산업이고, 그 물류기능은 점점 떨어져 철도를 확충하는 것이 추세”라며 “우리나라 관광객이 감소하는 이유는 불친절, 높은 물가, 언어소통의 어려움 때문이지 운하가 없어서가 아니다. 대운하가 필요한 이들은 땅값에 관심이 있는 투기꾼과 일부 건설업자 뿐”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이어 “운하는 일정량의 물이 항상 고여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갑작스런 호우로 범람하기도 쉬울 뿐더러 날이 가물어 물이 필요해도 못 쓰는 사태가 온다”며 홍수와 가뭄을 운하가 해소한다는 정부의 주장 또한 속임수라고 거듭 비판했다.

“정치인 한 두 사람의 생각으로 자연을 파헤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 법정스님은 “국토는 조상대대로 이어온 영혼이요, 살이요, 뼈이며, 후손에게 물려줄 신선한 땅인 만큼 조상과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현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법정스님은 지난 6개월 동안 천식을 앓아 고생하면서 느낀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때가 되면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50일 동안 구토증세 때문에 거의 단식하다시피 했다”는 법정스님은 “이렇게 죽을만큼 앓고 나니 주위의 모든 사람, 모든 사물이 새삼스럽게 고마워진다”고 말했다. 또한 “하루하루 매 순간 모든 관계에서 마음을 활짝 열고, 온전하게 쓸 줄 알면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나를 받아들인다”고 당부했다.

한편 법정스님은 법회를 마친 후 설법전(명상수련관) 상량식에 참석, 상량의식을 집전했다. 이 설법전은 완공 후 템플스테이 공간으로도 이용될 것이라고 길상사는 밝혔다. 설법전의 개보수공사는 법정 스님의 뜻대로 불사모연은 일체 하지 않았으며, 자발적으로 불사동참의 뜻을 낸 몇몇 불자들의 시주로 진행됐다.

길상사=이지선 회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