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권력, 종교와 권력이라는 개별적인 두 단어가 합쳐진 이 말은 현대사회의 종교가 지닌 다의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종교내의 권력이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고, 종교가 지닌 사회적 권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종교가 지구상에서 생긴 이래로 종교는 항상 권력과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밀접한 연관을 맺어왔다. 제사장이 권력의 핵심이었던 제정일치 사회에서부터 교황이 왕권을 좌지우지했던 서양 중세사회에 이르기까지 권력과 종교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면서 종교와 권력의 분리가 요구되어왔고, 그것이 근대사회의 바람직한 방향인 것처럼 신봉돼왔다.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와 한국교수불자연합회가 4월 18일 성공회 서울대성당 프란시스홀에서 ‘현대사회에서 종교권력, 무엇이 문제인가’를 놓고 공동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기독교와 불교를 신앙하는 교수들로 구성된 두 학회가 공동으로 이같은 주제를 택했다는 점 자체가 최근 한국사회의 실태를 대변해주듯, 최근 한국사회 내에서는 종교가 권력화되는, 혹은 권력이 종교를 이용하는 행태들이 상당히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날 네 명의 교수가 불교와 기독교의 종교권력의 역사, 현대 한국사회에서의 불교와 기독교의 종교권력에 각각 발표했다.

‘현대불교와 종교권력’을 발표한 김경집 진각대 교수는 “94년과 98년에 전개된 종단사태로 인해 민주적인 방식으로 교단체제가 개선되었지만, 선거로 선출된 종회의원과 교구본사 주지가 새로운 교단 권력화의 중심이 되면서 불교권력은 다각화되었고 그 폐해를 지적하는 의견들이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또 “불교권력의 다각화 못지않게 금권화와 정치적 참여의 증대도 문제점”으로 꼬집었다. 김 교수는 “금권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부계층에만 권력이 쏠리면서 사찰경제의 공동체성을 급격히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기독교와 종교권력’을 발표한 이진구 호남신학대 교수는 교회 안의 종교권력이 지니는 문제점 등을 교회 내부 문제와 정치사회적 문제로 나누어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 교수가 지적한 교회 내부적인 첫 번째 문제는 교회안의 세습문제.

김 교수는 “오늘날 대형교회에서 일어나는 교회 세습은 ‘제왕적 권위’를 지닌 담임목사의 권력에 대한 뿌리 깊은 욕망, 그러한 절대권력자의 설교를 통해 강단에서 선포되는 권위주의적 담론, 그리고 그러한 권위주의의 바이러스에 쉽게 오염되는 교인들의 의식이 공모관계를 맺으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불투명한 교회재정은 돈과 권력의 변증법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비자금은 교권을 창출할 수 있고 교권은 다시 비자금을 축적할 수 있다. 이렇게 종교권력은 교회재정의 불투명성을 못자리로 하여 자기를 무한히 복제하면서 확장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세 번째 내부 문제는 “젠더의 위계화와 성폭력”이라고 지적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젠더의 위계화에 근거하여 제도적 법적 차원에서 여성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동시에 목회자의 권위를 악용하여 여성에게 심각한 심리적 신체적 폭력을 가하고 있다며 이러한 현상 역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집요하게 관철하려는 종교권력의 효과”라는 것이다.

또한 정치영역에서의 종교권력적인 현상으로 애국기독교와 거리의 정치, 기독교계 뉴라이트 운동, 기독사랑실천당과 같은 기독교 정당 만들기 등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최근 한국 개신교는 선교 120년 역사에서 최대의 위기 맞고 있다”며 “지금처럼 안티기독교 세력이 번성한 적이 없었고 지금처럼 시민사회에 의해 사회적 왕따를 당한 적이 없었고 지금처럼 교세가 감소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한국 개신교의 위치극복은 정치적 세력화를 통한 타자 공격이나 교회의 대형화를 통한 무조건적 자기팽창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을 통해 스스로를 무한 증식해 가는 종교권력의 해체 작업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종교권력의 약한 고리에서부터 균열의 지점을 찾고 권력의 질서를 교란하는 작업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개신교 내부의 문제점, 사회와의 충돌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신랄하고 뼈아픈 지적이 많이 제기된 반면 한국 불교가 처한 위기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문제의식이나 대안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날 학술대회에 참가한 한 종교 연구자는 “이는 분명 한국사회에서 불교가 기독교에 비해 훨씬 덜 정치권력화된 종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불교의 내부 구성원들이 스스로의 문제점을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한 청중은 “문제점을 지적해도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재가자들의 자정운동을 무시하는 불교계 내부의 폐쇄성이 불교개혁의 방향마저도 상실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