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無門關)〉은 중국 남송의 선승인 무문혜개(無門慧開) 선사가 48개의 화두를 모아 엮은 것이다. 〈선종무문관〉이라고도 하는 이 책은 옛 조사들로부터 내려오던 선어록 중 공안(公案) 48칙을 뽑고, 무문 자신의 선적 체험을 바탕으로 48개의 화두에 평창(平唱)과 송(頌)을 덧붙이고 있다. 이 평창과 송은 참선자들의 쓸데없는 지식과 그릇된 인식을 불식시키고 깨달음의 눈을 뜨게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으며, 공안을 바르게 참구하고 그 공안의 핵심에 다가가도록 지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무문관〉을 제주대학교 중문학과 안재철 교수의 정확한 번역과 상세한 문법 해설, 그리고 한국불교태고종의 대표적 학승 수암 스님의 선지를 꿰뚫는 강의가 어우러져 옛 선사들의 깨달음의 세계를 온전히 드러내 전해주고자 한 책 〈무문관〉(운주사)이 출간됐다. 이 책은 '무문관'이라는 책 이름 앞에 '수행자와 중문학자가 함께 풀이한'이라는 형용어귀가 붙어 있다. 다른 해설서와의 차별성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이미 다수의 〈무문관〉 번역서와 해설서가 나와 있지만, 대부분의 책들이 그 내용이 가리키는 종지에 치우치다보니 원문에 대한 정확한 문법적 이해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번역되고, 또 그에 근거한 해설이 이루어져 온 감이 없지 않다. 〈무문관〉은 선승과 학인의 대화가 대부분이며, 당대의 상황에 맞게 주고받은 말의 기록이다. 따라서 그 당시의 일상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전제되어야만 그 내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언어의 쓰임이 달라지고, 문자에 뜻이 첨가되었으며, 문법체계도 역사적으로 많이 변화해 왔다. 또한 그때의 상황마저 달라져 문자만으로는 그 적확한 뜻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선어록을 읽으려면 당시의 언어와 상황, 그리고 문화를 바탕으로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중문학계에서는 불교 자체에 대하여 별로 관심을 쏟지 않고, 불교학계에서는 그 연구의 대상을 주로 불교철학에 두고 있을 뿐 언어를 따지는 것은 마치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여겨, 중국언어학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제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대학원에서 ‘선시특강’, ‘선어록연구’ 등 불전(佛典)과 관련된 과목을 개설하여, 불교와 근대한어(近代漢語)의 사휘(詞彙)와 문법(文法) 등을 강의하고 있다. 이 책은 강의 중 텍스트로 사용했던 것으로, 문법에 관한 것은 중국 언어 전공자인 안재철 교수가 정리하고, 그 의미에 대해서는 수암 스님이 천착하여 해설하였다.

이렇듯 이 책은 선사들의 깨달음의 내용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문장의 정확한 해석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왜냐하면 원전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면 선사들의 뜻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문법에 따라 살피지 않으면 엉뚱한 해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의 선적 의미를 파악하기 전에 먼저 철저한 문법 해설과 예문 등을 통해 원문의 정확한 번역을 꾀하였다. 이 점이야말로 기존의 해설서들과는 차별성을 보이는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선이나 깨달음이란 문자에 의지하지 않으며, 마음의 법은 스스로 깨치는 것이므로 남에 의지해서 얻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깨닫는 일이야 주체적으로 해야 하지만 그것을 유발하는 계기는 있어야 한다. 선어록은 이러한 깨달음의 계기를 마련해준다. 선에서 왜 ‘화두’를 ‘공안公案’이라고 불렀겠는가? ‘공안’이란 말은 원래 법률 용어로서, 이른바 관공서에 비치된 판례 조문이다. 과거의 판례를 참조하여 지금의 문제를 푸는 데에 판례집의 쓸모가 있다. 선 수행의 판례집이 바로 선어록이다.

선사들이 말하는 1,700공안도 과거의 믿을 만한 선사들이 몸소 실천한 수행과 깨달음의 선례를 모아 놓은 판례집이다. 판례집은 해독되어야 제몫을 한다.

철저한 문법 해설을 통해 원문의 정확한 이해에 중점을 둔 이 〈무문관〉 해설을 통해 깨달음의 문을 연 선사들의 속내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역저자들을 바라고 있다. 496쪽, 23,000원

*저자 안재철은?
안재철(安在哲)은 광주일고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중국언어학을 전공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제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치문경훈(緇門警訓)의 문법적 이해〉,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의 문법적 이해〉, 〈본의(本義)로 이해하는 540부수한자(部首 漢字)〉, 〈수행자와 중문학자가 함께 풀이한 금강경〉(수암 스님 공저) 등이 있다.

*저자 수암 스님은?
저자 수암 스님(修庵, 김종식)은 선암사 강원을 졸업하고, 원광대학교 동양대학원에서 석사(종교학과),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중문과), 중앙승가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불교학과)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불교태고종 중앙교육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태고종 중앙 강원 대교과 강주, 금붕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